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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일자리 전환으로 시작되는 에너지전환

입력 2022-11-14 08:00 수정 2022-11-14 08:27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7)

'탈 화석연료'로 보는 정의로운 전환 (하)

정의로운 전환에 달린 에너지전환의 성패
하지만 누구도 관심 갖고 들여다보지 않는 현실

해외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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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57)

'탈 화석연료'로 보는 정의로운 전환 (하)

정의로운 전환에 달린 에너지전환의 성패
하지만 누구도 관심 갖고 들여다보지 않는 현실

해외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지난주에 이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에 대해 살펴봅니다. 에너지전환은 일자리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오늘날 에너지전환의 의미는 '탈 화석연료'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간 탄화수소에 기대왔던 우리의 에너지 시스템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파괴적 혁신' 과정에선 기존에 있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되죠. 무언가를 태워서 에너지를 얻던 시절이 끝나가면서 석탄, 석유, 가스와 관련한 일자리 다수는 위협을 받게 됐습니다.

에너지전환에 있어 '초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유럽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뤘을까요. 유럽은 전 세계적으로도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어디보다 앞선 곳으로 꼽힙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노동자 보호에 나서는 한편, 노동자 스스로도 강력한 조합을 구성해 그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일자리 전환 없이는 에너지전환에 있어 한 걸음을 떼기 쉽지 않은 겁니다. 유럽에 이어 에너지전환의 패권을 거머쥐고자 뛰어든 미국의 상황은 또 어떨까요. 이번 주엔 세계 각지에서 내놓은 해법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덴마크의 사례입니다. 덴마크의 에너지 산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기업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덴마크의 에너지 공기업 동에너지(DONG Energy)는 이름(Danish Oil And Gas)에서 알 수 있듯 '덴마크 석유·가스 에너지공사'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석유공사와 가스공사가 합쳐진 것과 같습니다. 덴마크의 앞바다, 북해에 펼쳐진 석유와 가스 자원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 공급하는 것이 주 역할이었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일자리 전환으로 시작되는 에너지전환
그런 동에너지는 돌연 2017년 사명을 오스테드(Ørsted)로 바꿨습니다. 석유와 가스를 버리고, 재생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취지에서 였습니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2007년 3분기, 동에너지의 영업이익(EBITDA 기준)은 17억 크로네였습니다. 이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7%에 불과했습니다. 나머지 93%의 이익은 화석연료와 전력망 부문에서 나왔습니다. 사명을 오스테드로 바꾼지 약 4년만인 2021년 3분기, 영업이익은 30억 크로네로 급증했습니다. 이중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이제 98%나 됐죠. 이들이 생산하는 에너지의 탄소배출량 역시 급감했습니다. 2007년 평균 424gCO2e/kWh였던 탄소배출량은 2021년 3분기까지 평균 64gCO2e/kWh로 85% 줄어들었습니다.

이같은 급격한 변화에 있어 정의로운 전환은 이들의 제1 관심사였습니다.

 
잉그리드 라우머트 오스테드 수석 부사장이 오스테드의 전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잉그리드 라우머트 오스테드 수석 부사장이 오스테드의 전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키워드는 바로 '정의로운 전환'입니다. 이를 통해 전환의 과정에서 소외되는 노동자가 없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전환의 과정에서 업무가 대동소이한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이에 자금을 투입해 재교육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회사의 자산을 매각했을 때, 해당 분야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했죠. 사실 고용 전환을 준비하고, 전환을 한 기간은 매우 짧았습니다. 하지만 전환에 대해 직원들의 지지가 컸던 만큼, 신속한 고용 전환이 가능했습니다.”
잉그리드 라우머트 오스테드 수석 부사장

과거 석유 및 가스 시절부터 줄곧 한 회사에서 근무해온 노동자의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국내 화석연료 관련 노동자들이 탈석탄, 탈화석연료 등 에너지전환에 대한 걱정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그는 과연 어떤 조언을 했을까요.

“전환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여러분에게 수많은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이 기회는 그저 신규 채용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철제강업 종사자, 기계 기술자, 전기 기술자 등 기존 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옌스 뉘보 옌슨 오스테드 시니어 어드바이저가 일자리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옌스 뉘보 옌슨 오스테드 시니어 어드바이저가 일자리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에너지전환을 발빠르게 이행하려면 숙련된, 이미 그 실력이 입증된 노동자들의 일손이 절실합니다. 이미 에너지 업계에 몸담았던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해야만 하는 것이죠. 저를 비롯해서 화석연료 산업에 종사하던 제 동료들에게도 에너지전환은 위기보다 기회였습니다. 석탄발전소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한 발전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작게는 발전단지의 건설이나 운영 과정에 쓰이는 각종 도구를 이미 능숙히 다룬다는 점에서도, 또한 회로도, 설계도 등 전기 설비와 관련한 전문 문서를 잘 해석할 줄 안다는 점에서도 말입니다.”
옌스 뉘보 옌슨 오스테드 시니어 어드바이저

에너지전환은 또 다른 층위에서의 일자리 전환을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석탄의 도시'가 '재생에너지의 도시'로, '조선업의 도시'가 '재생에너지의 도시'로 바뀌면서, 지역 내 일자리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이죠.

덴마크의 항구도시 에스비에르는이같은변화를 잇따라 겪은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과거 항구를 중심으로 어업 사회를 형성했던 에스비에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석유 및 가스 산업의 중심으로, 또 해상풍력발전단지의 중심으로 변모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일자리 전환으로 시작되는 에너지전환
“해상풍력발전단지가 바다에 건설된다는 것은, 이와 관련한 각종 밸류 체인이 항구에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O&M(운영 및 유지보수) 서비스, 터빈 및 발전기 구조물의 생산 및 설치, 각종 대형 부품 및 설비 등 물류 창고 등 다양한 역할이 지역에 새로 부여되죠.

이 과정에서, 과거 수산물 경매시장으로 이용됐던 시설은 이제 해상풍력발전단지의 O&M 시설로 쓰이고 있습니다. 또, 바다 위 발전기의 유지보수를 위해선 다양한 특수목적 선박이 필요한데, 이 선박을 점검하고 보수하는 인력에 대한 수요도 점차 늘고 있죠. 해상풍력 기술이 발달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선박이 개발되는 등 산업이 성장하고 기술이 새롭게 개발되다 보니 교육 수요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지자체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항구를 비롯한 지역내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이는 그저 민간 기업에게만 기대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아직 관련 산업이 자리잡지 않은 지역에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 리스크를 안고 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리스크를 대신 안고, 기초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은 바로 지자체, 지방 정부의 몫입니다.”
예스퍼 뱅크 에스비에르 항만청 CCO(최고사업책임자)

 
[박상욱의 기후 1.5] 일자리 전환으로 시작되는 에너지전환
이같은 변화는 부문별 일자리 수의 변화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60년간 에스비에르의 일자리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1980년대, 전통의 어업 도시였던 에스비에르에서 석유 및 가스 부문 노동자는 어업 노동자의 수를 뛰어넘게 됐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접어들고선 풍력과 각종 에너지시스템의 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비에르가 해상풍력발전 설치의 전진기지, 덴마크 국내외로 판매되는 풍력터빈의 생산 기지, 점차 확대되는 북해의 해상풍력발전으로 인한 그리드 및 P2X, ESS의 연구 개발 및 생산 기지로 변모한 겁니다.

 
풍력발전 전진기지로 변모한 덴마크 에스비에르항.풍력발전 전진기지로 변모한 덴마크 에스비에르항.
항구도시의 주민들은 이같은 지역사회의 변화와 일자리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물어봤습니다.

“지역 주민 모두 '굉장히 신선한 산업'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지역 내 엔지니어들은 '신기술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분야가 재생에너지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용접공들의 경우 '이런 새로운 선박은 처음 작업해본다', 선원들 역시 '이런 새로운 구조의 선박은 처음 몰아본다' 등 흥미로운 변화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풍력과 관련한 일자리 수가 2000년대 접어 급증하다 최근 정체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현시점에선 신규 발전단지 건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를 운영하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30년까지 관련 일자리가 급등할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들이 많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일자리 수의 정체를 넘어 감소세에 접어든 석유 및 가스 일자리 수를 곧 추월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예스퍼 뱅크 에스비에르 항만청 CCO(최고사업책임자)

 
풍력발전 기반 확대를 위해 에스비에르 항은 부지 확장을 추진중이다.풍력발전 기반 확대를 위해 에스비에르 항은 부지 확장을 추진중이다.
이는 곧, 에스비에르 지역 경제의 더 큰 발전, 더 큰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터빈의 대형화, 발전단지의 추가 건설, 수출 수요의 증가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항만의 확대까지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항만 부지 확장이 마무리되고 나면, 풍력발전만을 위한 면적은 무려 200만㎡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서울 여의도의 윤중로 제방 안쪽 면적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려면 중앙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정부, 의회 모두에서 노동시장에 신뢰할 만한 시그널을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에너지전환 정책의 일관성과 실효성 있는 재교육 정책의 이행이 그 신호입니다.

 
라스무스 헬비 피터슨 덴마크 국회 기후에너지유틸리티위원회 위원장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라스무스 헬비 피터슨 덴마크 국회 기후에너지유틸리티위원회 위원장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 일자리 전환에 대한 걱정은 현재 석탄발전의 비중이 높은 곳이라면 어느 나라에서도 겪는 공통된 문제일 겁니다. 환경오염, 온실가스 배출 등 사회적 비용이 점차 석탄화력발전의 발전비용에 매기게 되면, 석탄의 발전단가는 높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비용이 오르면 결국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겠죠. 그럼 석탄화력발전과 관련한 전체 일자리는 줄어드는 결과를 부를 것이고요. 결국,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든, 기업이든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기존 노동자들이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또, 재교육 못지않게 충분히 매력적인 임금을 제시하는 것 역시 중요한 부분입니다. 덴마크에서도 풍력터빈 업계는 녹색 일자리를 창출함과 동시에 강력한 유인책으로 좋은 임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자리 전환의 문제를 덜 겪게 됐죠.

덴마크 정부 차원에선, 2030년 에너지 계획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최소 일자리의 수가 2만개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면 녹색 에너지전환은 생각보다 굉장히 노동집약적이고, 투자집약적이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저희는 인력 부족을 걱정하고 있지, 실직 문제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라스무스 헬비 피터슨 덴마크 국회 기후에너지유틸리티위원회 위원장

이러한 정책적 접근은 비단 덴마크와 같은 유럽 국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설계한 존 번 델라웨어 대학 바이든 스쿨 석좌교수 역시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주연재는 존 번 교수의 설명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기후 정책을 설계한 존 번 델라웨어대 바이든 스쿨 석좌교수가 미국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바이든 행정부의 에너지 기후 정책을 설계한 존 번 델라웨어대 바이든 스쿨 석좌교수가 미국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에너지전환에 있어 선도 기술이 무엇인가, 앞서 나가기 위한 정책이 무엇인가를 놓고 많은 고민과 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의 과정에서 화석연료와 같은 일부 에너지 부문의 경우 일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죠. 솔직히 말하자면,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일자리 상실에 대해서도 계획을 세워야만 하는 겁니다. 일자리 창출과 상실이 모두 함께 벌어질 일들이니까요.

이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에선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석탄 광산 노동자와 같은 채굴업의 경우, 광산 지역의 안정을 챙기는 것을 넘어 그 지역이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유치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찾는 것이죠. 석탄 관련 노동자를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있는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소 그 자체를 기존 지역에 유치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좀 더 균형 있고 공정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죠.


아마, 한국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미국의 제철업은 한때 매우 강력한 산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패권을 넘겨주게 됐죠. 이 과정에서 정말 문제였던 것은, 미국이 제철소와 철강산업의 의존했던 지역들을 내버려 뒀다는 겁니다. 그렇게 '러스트 벨트'가 만들어진 것이죠. 표현 그대로, 해당 지역의 경제는 더 이상 활력을 찾지 못 하게 되면서 곳곳이 녹슬어갔습니다.

이는 미국이 다음 전환을 맞이할 땐 절대로 다시 감수해선 안 될 리스크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는 정책 계획자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협력해야 하는 것이죠. 에너지전환과 그린뉴딜로 어느 지역의 일자리가 사라지려 한다면, 그러한 전환과 뉴딜을 그저 진행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해당 지역에 새로 도입 가능한 다른 종류의 산업을 유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이든 행정부가 내놓은 정의로운 전환 전략입니다.”
존 번 델라웨어 대학 바이든 스쿨 석좌교수


 
[박상욱의 기후 1.5] 일자리 전환으로 시작되는 에너지전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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