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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면]무겁지 않게, 슬프지 않게...페더러가 이별하는 법

입력 2022-09-22 17:15 수정 2022-09-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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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의 마지막은 유쾌합니다. 일주일 전 은퇴 소식을 내걸었던 인스타그램엔 레이버 컵에 출전하는 선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렸습니다. 그 속에서 페더러는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축제에 나선 사람처럼. 마지막을 앞둔 선수가 이래도 될까 싶게 해맑습니다. 당부도 잊지 않습니다. 영국 언론 '더 타임스'와 인터뷰에선 “괜찮냐고 묻지 마라. (마지막은) 위로가 아니라 축하받을 일”라고 말했습니다. 슬픈 이별보다는 재미난 작별을 꿈꾼다면서.
페더러는 레이버컵 출전 선수들과 찍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페더러 인스타그램)페더러는 레이버컵 출전 선수들과 찍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페더러 인스타그램)

마지막 무대 역시 무거움을 뺐습니다. 단식이 아닌 복식에 출전합니다. 그리고 그 파트너로 나달을 선택했습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적으로 마주했던 맞수가 이젠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한 팀으로. 나달과 얽힌 숱한 희비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마지막만큼은 같은 길을 걸어온 동반자로 함께 서고 싶다는 의미겠죠. 서로를 향한 존중과 서로에 대한 애착이 느껴집니다.

페더러는 23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레이버컵을 끝으로 은퇴합니다. (사진=EPA연합뉴스)  페더러는 23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레이버컵을 끝으로 은퇴합니다. (사진=EPA연합뉴스)
앞서 나달의 코치이자 삼촌인 토니 나달은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토니가 기억하는 페더러의 잊히지 않는 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잔혹한 경쟁을 이어온 라이벌이었지만 그 이면에 숨겨둔 애정과 연민이 담겨 있었습니다. 토니는 2011년 런던에서 열린 ATP투어 파이널 대회를 잊지 못했습니다.
'당시 페더러는 나달을 상대로 1세트 6대3, 2세트 6대0으로 이겼습니다. 1시간 만에 끝내버린 뒤 페더러는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눈도 바닥만 내려봤습니다. 그리고 악수를 하면서 나달의 등을 토닥여줬습니다.'
승자로서 환호가 필요할 때, 패배를 떠안은 상대를 생각하며 위로해주던 페더러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유럽팀과 세계팀의 대결로 펼쳐지는 레이버컵에선 나달과 짝을 이뤄 복식에만 나섭니다. (사진=EPA연합뉴스)유럽팀과 세계팀의 대결로 펼쳐지는 레이버컵에선 나달과 짝을 이뤄 복식에만 나섭니다. (사진=EPA연합뉴스)

그렇다면 페더러가 생각하는 은퇴는 무엇일까요. 페더러의 말을 듣다 보면 인생의 지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더 타임스'는 '은퇴 이후 가장 그리워할 것'을 물었습니다. 페더러는 사랑과 증오, 즉 애증이라 답했습니다. “테니스를 준비하는 그 시간을 사랑하는 만큼, 또 한편으론 그걸 겪지 않아서 행복하다”고 복잡한 심경을 이야기했습니다.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오래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라 답했습니다. “기복이 있었던 선수였지만 꾸준하게 자리를 지켰던 것이 나를 놀라게 한다"면서 ”15년간 우승을 놓고 경쟁할 수 있었던 건 특권이자, 특별한 의미였다“고 말했습니다.

페더러는 마지막 무대에선 위로가 아니라 축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진=페더러 인스타그램) 페더러는 마지막 무대에선 위로가 아니라 축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진=페더러 인스타그램)
'뉴욕 타임스'는 2019년 페더러의 인터뷰 내용도 다시 한번 회고했습니다. '성공을 위한 전략'을 묻자 페더러는 “닥친 일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는 것만큼, 또 매우 느긋하게 처리하는 것”이라 답했습니다. 더불어 “이기는 것을 즐겼고, 지는 것을 배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맞수였던 나달과 조코비치를 여러 번 이겼지만, 여러 번고통스러운 패배를 당하면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이야기한 겁니다. 영광에 오래 취해 있지 않고 절망은 빨리 잊었다는 거죠. 또 자신만의 방식대로 압박을 풀어 헤치고 긴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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