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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23번째 가입 기업' 나오고서야 화두로 떠오른 RE100

입력 2022-09-19 08:00 수정 2022-09-19 09:5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9)

그래픽으로 보는 RE100과 대한민국 (상)

RE100에 가입한 23번째 한국 기업, 삼성전자
연간 전력 사용량, 기존 Top 3 기업 합친 것보다 많아

이미 미국, 유럽 사업장에선 RE100 달성한 삼성전자
국내 재생에너지 조달은 어떻게?
RE100, 기업이 돈만 내면 가능?
RE100 달성의 열쇠 '재생에너지 조달'은 결국 정부 정책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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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9)

그래픽으로 보는 RE100과 대한민국 (상)

RE100에 가입한 23번째 한국 기업, 삼성전자
연간 전력 사용량, 기존 Top 3 기업 합친 것보다 많아

이미 미국, 유럽 사업장에선 RE100 달성한 삼성전자
국내 재생에너지 조달은 어떻게?
RE100, 기업이 돈만 내면 가능?
RE100 달성의 열쇠 '재생에너지 조달'은 결국 정부 정책의 몫

RE100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쓰겠다'는 약속입니다. 지난 대선 시즌, 대통령 선거 후보 토론회에서 RE100이 등장한 직후 '반짝' 검색어 상위권에 있던 RE100이 최근 다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한 국내 기업이 RE100에 가입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이 기업이 '국내 최초'로 RE100에 가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22개 한국 기업이 RE100에 가입한 상태였으니까요. 어째서 23번째 가입이 큰 반향을 부른 것일까요.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것인 만큼, 각 기업의 전력 사용량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RE100에 가입한 23번째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의 전력 사용량은 타 기업을 압도하는 수준입니다. 아직 2021년 전력 사용량을 공개하지 않은 기업들이 많기에 2020년을 기준으로 각 기업의 전력 사용량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삼성전자의 2020년 전력 사용량은 22.9TWh에 달합니다. 기존 22개 가입사 가운데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SK 하이닉스(9.9TWh)의 배를 훌쩍 넘을뿐더러, 기존 전력 사용량 Top 3 기업의 연간 사용량을 합친 것보다도 많습니다. 삼성전자의 RE100 가입이 갖는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3번째 가입 기업' 나오고서야 화두로 떠오른 RE100
이렇게 RE100에 가입한 기업 23곳이 2020년 한 해에 사용한 전력은 61.5TWh에 달합니다. 서울시의 모든 가정에서 쓴 전력량(14.6TWh)의 4배가 넘을뿐더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총량(43.1TWh)의 1.43배에 이릅니다.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이들 23곳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 활동을 벌이는 기업 중엔 해외 글로벌 기업도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RE100에 가입한 회사들이 있죠. 2020년 기준, 국내에서 활동 중인 'RE100 가입' 해외 기업의 수는 40곳에 이릅니다. 또한, '한국형 RE100'에 가입한 기업의 수는 64곳이나 됩니다. 이들 역시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곳들입니다.

'기업들이 보여주기 식으로 선언하는 것에 괜한 호들갑 떠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합니다. RE100은 기업의 '자발적 약속'으로 시작했지만 '민간차원의 규제'로 작용한 지 오래입니다. 어떤 면에선, 국가나 정부의 규제보다 더 강력하고, 빠른 확산을 부르는 것으로 보일 만큼요.

2020년 8월 3일, 37번째 연재였던 〈[박상욱의 기후 1.5] 사과 발(發) '탄소중립' 도미노의 시작〉을 통해 이같은 변화를 자세히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미국의 애플이 RE100에 가입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자체적인 전력 사용량은 전량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으며, 그저 재생에너지 전환에만 멈추지 않고, 기업 전체의 탄소배출을 '넷 제로'로 만드는 준비를 마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019년 기준, 애플의 온실가스 배출 가운데 76%는 폭스콘 등 협력사의 제품 제조 과정에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애플이 직접 뿜어내는 것은 이미 4%가 채 되지 않았고요.

결국, 애플이 2020년에 한 '2030년 탄소중립' 선언은 애플 스스로의 RE100과 탄소중립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거나 애플의 제품을 생산하는 협력사들에 RE100과 탄소중립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일이기도 했죠. 실제, 당시 SK 하이닉스와 대상 에스티는 애플의 '협력업체 청정에너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5일, '신 환경경영전략' 선언을 통해 RE100 가입 사실만을 공표한 것이 아닙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도 했죠. 애플과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기업과 협력관계를 맺는 만큼, 이는 삼성의 제품에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의 RE100, 탄소중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3번째 가입 기업' 나오고서야 화두로 떠오른 RE100
결국,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삼성전자는 2021년 전력 사용량도 공개했습니다. 25.8TWh로, 전년 대비 3TWh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계속 늘리고 있죠. 앞으로도 전력 사용량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RE100 가입 기업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 RE100에 가입하는 대신, 생산량을 줄여 매출액이 떨어지더라도 RE100 달성 가능성을 높이거나 그 시기를 당기려는 기업은 없을 테니까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은 RE100에 가입하며 달성 시점을 2025년으로 잡았습니다. 아모레퍼시픽과 LG 에너지솔루션, SK 아이이테크놀로지, LG 이노텍은 2030년, (주)SK와 KB 금융그룹, 롯데칠성음료, 인천국제공항공사, 현대모비스, 기아, 네이버는 204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했습니다. 전체 가입 기업 23곳 중 절반이 2041년이 오기 전 '재생에너지 100%'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겁니다.

이것을 어떻게 실현하는가. 그 답은 기업에게서만 찾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 발전원에서 얼마만큼 전력을 생산할 것인지, 앞으로의 계획을 정부가 결정합니다. 새 정부는 과연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까요. 정부는 지난달 30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여기엔 재생에너지의 2030년 계획이 담겨있죠. 정부가 제시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32.3TWh, 발전비중은 21.5%였습니다. 이전 정부가 정권 말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하면서 내놨던 계획인 185.2TWh(비중 30.2%)에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3번째 가입 기업' 나오고서야 화두로 떠오른 RE100
물론, 재생에너지 목표를 낮춘 현 정부만의 책임만 물을 수는 없습니다. 2012년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2.5%에 불과하다 2021년 7.5%까지 증가했습니다. 얼핏 '크게 늘었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OECD 평균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중은 같은 기간 20.9%에서 31.06%로 10%p 넘게 늘었죠. 이 기간, 우리나라엔 녹색성장을 외친 정부도 있었고, 탄소중립을 선언한 정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2018~2021년, 최근 3년새 새로 설치된 풍력발전기의 규모를 살펴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제자리걸음을 이어갔습니다. 우리가 0.4GW 규모의 발전설비만을 늘린 사이, 옆 나라 일본은 1GW를 추가했고, 전 세계에서 원전에 가장 의지하는 나라로 손꼽히는 프랑스조차 3.8GW 규모의 풍력발전기를 더 설치했습니다.

결국, RE100에 가입한 한국 기업들은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대규모 공급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수출 경쟁력을 뺏기지 않고자 절실한 마음에 가입했는데. 끌어다 쓸 재생에너지는 턱없이 부족하니 말입니다.

통상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방법은 인증서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이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설치해 전력을 생산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또, 우리가 콘센트에 전원 코드를 꽂았을 때, 그 전력의 '출생지'를 알 수 없는 만큼, 가장 손쉽게 재생에너지 이용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에선 한국에너지공단의 거래 플랫폼을 통해 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 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RE100 가입과 함께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부족, 정부의 재생에너지 목표 하향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한 가지 궤변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이 어떻게든 돈을 들여 REC만 구입하면 RE100을 달성할 수 있다. 해외 기업들도 화석연료나 원전 기반의 전력을 쓰지만 인증서를 구매해 RE100을 달성하는 것이다. RE100을 달성하면, 기업의 이미지를 챙길 수 있다보니 이미지를 챙기려 가입하는 것이다.”

반은 맞지만, 정작 핵심인 '나머지 절반'이 틀린 이야기입니다. REC든EAC든 인증서는 돈을 주고 구매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인증서의 수량은 정해져 있습니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면, 그 사업자는 REC를 발급받게 됩니다. 전력을 써야 하는 기업은 이 REC를 구매하는 것이고요.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REC를 필요로 하는 기업만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인증서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오르게 될 테고, 결국 누구는 REC를 구매하고, 누구는 구매하지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RE100과 탄소중립이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보는 시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통상적인 사회공헌활동과 RE100, 탄소중립은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 인력의 측면에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큽니다. 이미지 메이킹만을 위해서 벌이기엔 기업의 본래 목적인 '이익 창출'에 미치는 영향 역시 매우 크죠. 'ESG 경영'은 그저 '대외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담아야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나름의 틀이 만들어졌을 뿐더러, 이는 투자기관이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채점표'로써의 역할을 합니다.

ESG 경영을 '그거, 어디 가서 봉사활동 좀 하고, 쓰레기 좀 주으면 되는 일'로 치부하는 CEO가 이끄는 기업이라면, 그 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ESG 경영은 대외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한 경영활동이라기 보다는, 기업 스스로의 리스크를 분석하고, 그 리스크를 줄이는 경영활동에 더 가깝습니다. 이에 대해선 별도의 연재를 통해 보다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3번째 가입 기업' 나오고서야 화두로 떠오른 RE100
한편, 최근 재생에너지 조달 트렌드에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바로,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입니다. 기업이 직접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사와 전력 공급 계약을 맺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 입장에선 '우리 회사 콘센트로 들어오는 전기는 100% 재생에너지다' 명확히 보여줄 수 있게 되죠. 또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이 우리나라처럼 정권마다 뒤바뀌는 경우, 기업의 입장에선 재생에너지의 공급을 확실히 약속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발전사와의 직접 계약인 만큼 전기요금 또한 계약을 통해 '기업이 관리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게 되죠.

지난 연말,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는 〈2021년 RE100 연간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엔 RE100에 가입한 한국 기업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한국에서 RE100을 이행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기업들은 한목소리로 “재생에너지 조달 방법이 부족하다”고 답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신 환경경영전략'을 선언한 자리에서 “핵심 반도체 사업장이 자리잡은 한국은 재생에너지 공급여건이 상대적으로 안 좋아 목표 달성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며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위한 전 사회적 노력이 필수”라고 지적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단순히 에너지 구매자로서의 기업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동종 업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1년 전, 95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중립, 한국만 유별? 재생에너지는 비싼 에너지?〉를 통해 석탄과 원전, 재생에너지 등의 글로벌 발전단가(LCOE)를 분석해드린 바 있습니다만, 삼성전자 역시 이날 “미국과 중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석탄과 원자력 대비 비슷하거나 낮다”며 정부와 산업계, 시민사회 각각에 필요한 노력을 명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공급 확대 및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하며, 산업계는 “효율성 높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의 개발 및 보급”을 해야 하고, 시민사회는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의 지역별 RE100 달성 목표 시점은 제각각이었습니다. 미국과 중국, 유럽 내 사업장에선 이미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한 상태입니다. 베트남을 비롯한 서남아시아 지역에선 연내 RE100 달성을 목표로 합니다. 삼성전자는 중남미(2025년), 동남아시아, CIS(러시아 인근 독립국가연합), 및 아프리카(2027년) 등 5년내 모든 해외 사업장에서 RE100을 마무리 할 계획입니다. 해외에서의 RE100 달성 목표 시점과 비교해 국내 사업장에서의 목표 시점(2050년)을 보면, 마치 국내의 더딘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삼성전자 전체의 RE100 달성 시점이 늦춰지는 것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전력시장의 '대형 고객'으로서, 주요 온실가스 배출 주체로서, 삼성전자의 이러한 선언이 갖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부분도 남아있습니다. 국내 23번째 RE100 가입 기업의 등장이 앞으로 한국의 에너지전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에 대해선 다음 주 연재를 통해 보다 상세히 풀어보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23번째 가입 기업' 나오고서야 화두로 떠오른 RE100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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