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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입력 2022-09-12 08:00 수정 2022-09-14 09:21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8)

그래픽으로 보는 '기후변화와 태풍'

태풍의 위력, 나가사키 원폭의 1만배

기후변화로 해마다 달궈지는 바다
한 해에 늘어난 해양 열용량,
'히로시마 원폭' 1분에 31.7개 터진 것과 같아

기후변화로 달궈지는 지구
태풍의 수는 줄어도 강도는 더 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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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48)

그래픽으로 보는 '기후변화와 태풍'

태풍의 위력, 나가사키 원폭의 1만배

기후변화로 해마다 달궈지는 바다
한 해에 늘어난 해양 열용량,
'히로시마 원폭' 1분에 31.7개 터진 것과 같아

기후변화로 달궈지는 지구
태풍의 수는 줄어도 강도는 더 세진다?

2022년에 접어들어 태평양에서 만들어진 10개의 태풍은 한반도를 비껴갔습니다. 하지만 11번째 태풍,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피하지 못했습니다. 9월 5일 제주를 시작으로 한반도는 점차 태풍의 직·간접 영향권에 접어들기 시작했죠. 지난 8월 8일부터 17일까지, 수도권을 시작으로 중부지방 일대를 강타한 집중호우의 피해를 채 추스르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태풍 힌남노의 피해를 채 추스르지 못한 지난 8일, 12번째 태풍 무이파가 만들어졌습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해 한반도를 빠져나갈 때까지의 위성영상 (자료: 기상청)제11호 태풍 힌남노가 북상해 한반도를 빠져나갈 때까지의 위성영상 (자료: 기상청)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빠져나간 후인 지난 7일, 8월 집중호우의 물적 피해규모가 확인되고, 이를 위한 피해 복구계획이 확정됐습니다. 도심 저지대에서 침수 피해를 입은 주택만도 2만 7262세대에 달했습니다. 1만 6842곳에서 공공시설 피해가 발생했고, 농작물 피해 면적은 4449헥타르에 달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와 양천구의 면적을 합친 것보다 넓은 면적입니다. 집중호우로 인한 전국의 피해액은 무려 3155억원에 달했습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경기도 한 곳의 피해액은 1476억 4400만원. 전체의 절반에 가까웠고요. 그 밖에도 서울(683억 300만원), 충남(590억 8200만원), 강원(356억 2800만원)에선 수백억원의 피해가 집계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피해액만큼만 돈을 투입하면, 피해를 입기 전의 상태로 복구할 수 있을까요. 복구엔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합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가 확정한 복구계획의 규모는 7905억원에 달합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기후변화 대비 재난관리체계 개선 범정부 추진단'을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집중호우일수의 급증하는 등 우리나라 기후의 변화 정도가 갈수록 더 커지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의 범위가 넓은 만큼, 단일 부처가 아닌 범정부 차원의 대응 역시 필요하고요.

이런 대책을 발표하기도 전, 태풍 힌남노는 집중호우에 이어 한반도를 강타했고, 곳곳에 강풍을 불어넣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자동관측장비(AWS)에 측정된 데이터를 살펴봤습니다. '순간적으로 얼마나 강한 바람이 불었나' 알 수 있는 '일 최대 순간풍속', 그리고 순간을 넘어 '10분간 얼마나 강한 바람이 지속됐나' 알 수 있는 '일 최대풍속'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먼저 일 최대 순간풍속을 살펴보겠습니다.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전인 지난 4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일 최대 순간풍속이 기록된 곳은 강원도 인제군입니다. 순간적으로 30.7m/s에 달하는 강한 바람이 불었죠. 하지만 태풍이 한반도에 가까워짐에 따라 5일엔 전남 가거도에서 분 42.3m/s가 '그날의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태풍이 동해안으로 빠져나간 6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바람이 기록됐던 곳은 경로 부근에 있던 울릉도(43.4m/s)였습니다.

강원 산지에서 순간적으로 불어닥친 강한 바람이 아닌, 10분간 지속됐던 강한 바람은 어땠을까요. 지난 4~6일의 일 최대풍속 최고치는 태풍의 영향을 받았던 장소들에서 기록됐습니다. 4일엔 전남 가거도(22m/s), 5일 제주 고산(36.1m/s), 6일 경남 매물도(37.4m/s)에서 매우 강한 바람이 지속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태풍 힌남노는 한반도에 엄청난 양의 비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위의 지도는 9월 5일 0시부터 9월 7일 0시 사이, 한반도에 내린 비의 양을 색으로 나타냈습니다. 파랑보단 보라, 보라보단 빨강이 더 많은 강수량을 의미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남부지방이 보랏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었을뿐 아니라, 수도권과 강원 역시 마찬가지 색으로 뒤덮였습니다. 이 기간, 우리나라의 남쪽과 북쪽에 공히 많은 비가 내렸지만 그 이유는 조금 달랐습니다.

태풍이 부산을 지나던 9월 6일 새벽 6시, 강풍반경은 400km에 달했습니다. 부산과 서울의 직선거리는 320km 가량. 얼핏 태풍의 강풍반경 이내에 들어갔을 것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태풍의 '예외반경'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강풍반경이 항상 태풍의 중심으로부터 정확한 원의 모양을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강풍반경을 발표할 때엔 예외반경을 함께 공개합니다. 강풍반경은 400km였지만, 예외반경은 북서쪽으로 240km 가량이었습니다. 즉, 수도권과 강원도의 호우 지역은 강풍반경 밖이었던 것이죠.

태풍은 남에서 북으로 움직이며 남쪽의 덥고 습한 공기를 몰고 옵니다. 당시 우리나라 북쪽엔 차고 건조한 공기가 자리해있었죠. 결국, 서로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두 공기가 부딪히면서 수도권과 강원엔 세찬 비가 내리게 됐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도대체 태풍의 힘이 얼마나 강하기에 집채만한 파도를 만들고, 가로수를 부러뜨리며, 엄청난 비바람을 몰고 오는 것일까요. 태풍의 에너지를 1이라고 했을 때, 나가사키 원폭의 에너지는 1만분의 1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태풍의 에너지는 나가사키 원폭의 1만배, 역대 최악의 화산 폭발로 손꼽히는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의 10배에 달한다는 것이죠. 그럼, 이같은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요. 답은 바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다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 오랜 세월, 태양으로부터 오는 열에너지를 받아오고 있고, 우리 인간이 뿜어낸 온실가스로 대기가 뜨거워지면서 그로 인한 추가적인 열에너지 역시 품어내고 있죠. 사시사철 꽁꽁 얼어붙어있던 극지방의 해빙이 녹아 해수면을 높인다는 이야기, 해수면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우리나라 남해안에 열대어종의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는 이야기…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뿐 아니라 다양한 보도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통해 접해보셨을 겁니다. 이처럼 달궈지는 바다엔 그만큼의 에너지가 축적됩니다.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바로 해양 열용량입니다.

해양 열용량은 수심과 밀도, 비열을 통해 구해지는 값입니다. 즉, 바닷물 표면의 온도(해수면 온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이 어느 깊이까지 데워졌는지를 나타내는 것이죠. 제아무리 해수면의 온도가 30도 안팎으로 높다고 할지라도 그 속까지 데워지지 않았다면(해양 열용량이 크지 않다면), 태풍은 큰 힘을 받을 수 없습니다. 태풍의 '에너지원'이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살펴보려면, 그저 해수면의 온도만 볼 것이 아니라 해양 열용량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것이죠. 이는 에너지인 만큼, J(줄) 단위로 표현됩니다.

계속해서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 달궈지는 것은 비단 땅과 공기만이 아닙니다. 바다도 계속해서 뜨거워지고 있죠. 다음의 그래프는 1955~2006년 평균 전지구 해양 열용량을 기준(0)으로 했을 때, 해마다 열용량이 얼마나 늘거나 줄었는지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파란색으로 음의 방향으로 그래프가 그려진 해는 평균보다 해양 열용량이 적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붉은색으로 양의 방향으로 그래프가 그려진 해는 평균보다 해양 열용량이 늘어난 것을 의미하죠.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그 결과, 1955년 이래로 지구 전체의 해양 열용량은 무려 337ZJ(제타줄) 가량 늘었습니다. 2020년에서 2021년으로 넘어가는 1년 사이에만 14ZJ이 늘었고요. J도 ZJ도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위가 아니기에, '엄청난 에너지'와 비교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ZJ은 히로시마 원폭 1666만 6667개의 에너지와 맞먹는 힘입니다. 최근 1년새 바다에서 늘어난 에너지의 양은 14ZJ, 즉 히로시마 원폭에 쓰인 폭탄이 1분마다 31.7개씩 터진 것과 같은 정도인 것이죠. 특히, 아시아 지역의 바다엔 더 많은 에너지가 집중됐습니다. 지난 138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폭염과 폭우, 정반대 같은 둘 사이 공통점은? (상)〉에서 설명드렸듯, 아시아 바다의 주요 '체크포인트'인 아라비아해와쿠로시오해류의 경우, 이 해양 열용량의 증가율이 지구 전체 평균의 3배에 달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자칫 '먼 일'이라 여겨질 수 있기에,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던 지난 5일, 북태평양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지도는, 바다 면적 1㎠당 얼마나 많은 해양 열용량이 집중되어 있는지를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붉은 색이 짙어질수록 열용량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지도에서 가장 검붉은 지점의 값은 175kJ/㎠입니다. 이는, 1㎢ 면적에 히로시마 원폭 29개가량의 에너지가 집중됐다는 것을 의미하죠.

제11호 태풍 힌남노와 제12호 태풍 무이파가 각각 필리핀 앞바다에 위치한 당시 북태평양의 해양 열용량 현황 (자료: NOAA)제11호 태풍 힌남노와 제12호 태풍 무이파가 각각 필리핀 앞바다에 위치한 당시 북태평양의 해양 열용량 현황 (자료: NOAA)
제12호 태풍 무이파가 생겨난 시점에서 이러한 검붉은 지점의 면적은 더 넓어졌습니다. 한반도 영향 여부를 단정 짓기 어려운 지난 주말서부터 태풍 무이파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주목할 수밖에 없는 북태평양의 해양 열용량은 꾸준히 늘어오고 있습니다. 다음의 그래픽은 1993년부터 2021년까지 동아시아 지역의 해양 열용량의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파란색이 짙을수록 해양 열용량이 낮고, 갈색이 짙을수록 높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갈색이 짙어지고, 그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풍이 힘을 낼 수 있는 연료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이죠.

태풍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북태평양 해양 열용량의 1993년부터 2021년까지 추이 (자료: NOAA)태풍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북태평양 해양 열용량의 1993년부터 2021년까지 추이 (자료: NOAA)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태풍의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보다 정확히 상황을 바라보려면, 뜨거운 지구와 태풍의 상관관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는 땅과 바다, 공기 모두를 달굽니다. 이렇게 되면,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기온감률'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곧 대기의 안정화로 이어집니다. 태풍이 만들어지는 열대 지역에서 대류활동이 약해지는 것이죠. 이 활동이 격해져야 태풍이 만들어지는데, 태풍이 만들어지기엔 대기가 너무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이는 곧 태풍의 발생 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부르고요.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그런데 왜 기후변화가 심해질수록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커진다고 하는 걸까요. 땅과 바다, 공기 모두가 데워지면서 열대 대류권 하층에선 바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늘어나게 됩니다. 비록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기 상태라 할지라도, 어쩌다 태풍이 한번 만들어지면 높은 수온과 그로 인한 높은 해양 열용량, 대기중에 풍부한 수증기가 더해져 강력한 태풍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커집니다.

제아무리 10개의 태풍이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그 10개의 태풍 모두 강도가 약하고, 금방 열대저기압으로 변질된다면 우리에게 별다른 피해를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 5개의 태풍이 만들어지더라도, 그중 4개의 태풍이 강력한 태풍으로 발달한다면 우리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이런 모습은, 당장의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역대 태풍들의 통계를 살펴봤습니다. 일 최대풍속 Top 10에 해당하는 태풍 중 9개는 모두 금세기 들어 발생한 태풍이었습니다. 태풍 그 자체의 세기를 나타내는 '최저해면기압'이 가장 낮았던 10개의 태풍 중 7개 역시 21세기에 발생한 태풍이었고요.

이는 앞선 연재에서 집중호우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의 상황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역대급 태풍'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우리는 거의 해마다 이 표현을 듣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록은 거의 매년 깨질 테니까요. 태풍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과거만을 바라보며 준비한다면, 그 대비는 매번 '부족한 대비'가 될 것입니다. 집중호우도, 태풍도. 계속해서 과거를 뛰어넘는 악화를 거듭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요 온실가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만 놓고 보더라도, 한번 뿜어져 나오면 200년간 대기 중에 머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적어도 우리나라는 2018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고요. 우리가 한 일을 놓고 보더라도, 앞으로의 각종 극한 기상현상은 한동안 악화일로일 것이 분명한 상태입니다. 정부가 운영한다고 밝힌 '기후변화 대비 재난관리체계 개선 범정부 추진단'의 어깨가 한없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달궈진 지구, 태풍은 줄고 강도는 세진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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