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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역사 알리는 사람들…"김순호, 스스로 고백하길"

입력 2022-08-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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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순호 국장 의혹처럼 군사정권의 프락치 공작에 동원된 인원은 확인된 사람만 2천여 명입니다. 일부는 극단적 선택으로 저항했고 의문사란 이름으로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남은 사람들도 평생 진상규명 활동을 하며 부끄러운 마음을 삭여왔습니다.

임지수 기자가,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정보공개청구'로 얻어내 세상에 알린 이들을 만나봤습니다. 김순호 국장을 향해 "스스로 고백하라"고 외쳤습니다.

[기자]

40년 전 일이지만 양창욱 씨는 아직도 이곳에 오면 등골이 서늘합니다.

전두환 군부 때 보안사 안가로 쓰인 서울 퇴계로의 아파트입니다.

[양창욱/전두환 군부 녹화공작 대상자 (고려대 80학번) : (문을) 안에서 열 수 있는 게 아니고, 완전히 잠겨져 있었고요.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게…감금된 거죠.]

양씨처럼 1983년 군에 끌려간 운동권 학생들 대부분이 거쳐 간 프락치 양성소였습니다.

과천 대공분실에서 욕 듣고 매 맞은 뒤 이곳에 오면 휴가를 나가 동료 동향을 파악해오란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양창욱/전두환 군부 녹화공작 대상자 (고려대 80학번) : '시위를 주동할 만한 사람들을 찍어라' 옆방에서는 몽둥이로 맞는 소리, 악 소리가 나고 그러니까.]

양씨는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협조하기 시작한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했습니다.

[양창욱/전두환 군부 녹화공작 대상자 (고려대 80학번) : 가장 두려웠던 게 '이게 죽을 수도 있다, 친구를 배신하고 가야 하나'…]

보안사의 강요는 군 제대 후 민간인이 돼서도 이어졌고, 양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떠나 도망치고 나서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양씨는 1987년 고 박종철 열사 사건 관련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됐습니다.

과거 지시를 거부하다 숨진 김두황 씨 등 동료 9명 사인을 밝히는 일에 수십년 몸담아왔습니다.

[양창욱/전두환 군부 녹화공작 대상자 (고려대 80학번) : 김두황의 삶과 죽음은 그 시절 우리 모두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긴 160여쪽 보안사 자료를 스스로 확보해 진상규명에 쓰고 있습니다.

군 제대 이후까지 보안사와 경찰로부터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던 권혁영 씨도 과거 자료를 스스로 얻어내 공개했습니다.

[권혁영/전두환 군부 녹화공작 대상자 (서울대 80학번) : 진술을 강요받는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양심이 세상에 알려져야 하지 않겠나.]

이들은 김순호 국장이 피해자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권혁영/전두환 군부 녹화공작 대상자 (서울대 80학번) : 먼저 죽은 사람들 앞에 살아남은 자로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창욱/전두환 군부 녹화공작 대상자 (고려대 80학번) : 김순호는 스스로 자기 고백을 하길 바란다.]

수십년 간 의심 속에서도 끝까지 그를 믿고자 했던 사람들도 김순호 국장의 사죄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김란희/성균관대 심산연구회 3대 회장 : (김순호 국장은) 가장 따랐던 분이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것을 마주하는 저희의 심정은 굉장히 고통스럽고…]

[최숙희/고 최동 열사 동생 : 김순호는 오빠 무덤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사죄하길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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