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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슬럼프 털어낸 유선 "'이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입력 2022-07-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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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유선
배우 유선(46)의 연기 열정은 20대 못지않았다. 13년 만의 연극과 tvN 수목극 '이브'는 슬럼프를 극복한 결정적 돌파구가 됐고 다시금 연기에 대한 고민과 집중의 시간을 가지게 했다. 두 작품의 병행이 쉽지 않았지만 체력적 한계를 딛고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왔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맡겨준 사람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달려왔던 유선. '이브'에서 정재계 최고의 권력자 한판로의 딸 한소라로 분한 그는 악녀지만 때론 천진난만하게 때론 안쓰러움으로 연민을 자극하는 열연을 펼쳐 몰입도를 높였다.

-호평 속 작품을 마쳤다.

"연기를 한 21년 정도 한 것 같은데 소라 역할을 하면서 사실 너무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개인적인 연기에 대한 슬럼프가 있었다. 연극을 통해 연기 기본으로 들어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연극 '마우스피스'를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했다. 13년 만의 연극이었다. 그것도 큰 결심이었는데 연극하기로 하고 얼마 뒤 '이브' 대본이 들어왔다. 정말 선물 같았다. 연극을 하기로 큰 마음을 먹은 시점에 '이브'까지 주어져서 동시에 해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몰려왔다.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연기에 대한 고민과 집중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열정과 집중을 쏟아부었다."

-슬럼프는 어떤 이유로 온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 내 연기가 답답해지는 시점이 오더라. 배우란 직업은 주어진 역할 안에서 내 역량이 이 정도인가 확인하게 되는 직업이다. 지금까지 그 역량을 뚫고 나갈 수 있을 만큼의 캐릭터를 못 만난 것일 수도 있고, 여태까지 맡았던 것에서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 들더라. 주변에 연기 잘하는 사람, 신선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데 난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선배님들 만나면 어떻게 연기를 준비하는지 묻기 바빴다. 그런데 '이브' 한소라라는 역할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게 펼쳐져 너무 새롭고 신선했다. 이런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잘 해내느냐 못 해내느냐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한 신뢰도 달라질 것 같았다. 정말 중요한 지점에서 만난 작품이다."

-그 중요한 지점을 되돌아보니 어떤 시간을 보낸 것 같나.

"후회와 아쉬움을 남기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를 믿고 맡겨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 나의 가능성을 봐준 사람들에게 그걸 증명하고 싶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노력해야 그런 연기가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죽을 둥 살 둥 해보자고 생각했다. 예전엔 감정신이 있다고 하면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나면 현장에서 그 감정이 안 나올 수 있어서 이해와 분석해놓고 현장에서 했었는데 이번엔 감정신도 사전 리허설을 엄청나게 했다. 눈물을 펑펑 흘리고 나면 현장 가서 눈물이 안 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신을 준비한 시간들이 있어 되더라. 확신을 가지고 모든 감정신들을 사전 리허설했다. 연극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극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드라마에 접근했다. 수많은 리허설을 해본 게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만큼 다 하니까 시청자들이 그만큼 공감하고 나와 만나지는 지점이 있더라. 그걸 확인한 것 같아 많은 용기를 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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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두 작품의 병행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촬영하고 공연하고 그런 날이 많았는데 그 시간들이 내게 많은 텐션을 준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연기의 확장을 경험한 것 같다. 연극은 2인극이라 하는 내내 감정적으로 에너지를 엄청 썼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큰 용기를 줬다. 소라를 소화해내는데 자신감과 힘을 실어준 것 같다."

-체중도 줄고 몸도 더 탄탄해진 것 같다.

"예민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젠 살이 잘 빠지는 나이가 아니다. 걷는 걸 좋아해서 9, 10km씩 걸었는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양쪽을 오가며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하다 보니 4kg이 빠졌다. 여태껏 드라마에서 봤던 얼굴 중 가장 다른 얼굴이 나온 것 같다. 오래 전의 몸무게로 돌아가니 새로운 얼굴이 보이더라."

-한소라를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타 작품들의 상류층 악역들과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까 이 부분이 제일 겁나고 고민되더라. 그래도 감사한 건 일단 대본에 한소라라는 캐릭터만의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었다. 바로 천진난만함이 있다는 것이다. 지능적이고 교활한 악녀이기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앞만 보고 최고가 되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해서, 비뚤어진 인간관계 때문에 이 같은 인격이 형성된 것이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그런 부분을 살리고 싶었다."

-결말에 대한 만족도는.

"아무리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했기에 처절한 응징이 맞다고 생각한다. 찍는 내내 '어떤 비참한 말로를 맞이할까' 궁금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었다. 배우들도 16부 대본을 받기 전까지 결말에 대한 힌트를 얻지 못했다. 사고로 기억을 잃고 정신병원에 있는 모습은 내게도 충격적이었고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 역시 마음이 아팠다. 퇴장신이 마지막 촬영이었다. '이브'의 마지막 날 한소라의 마지막 신을 찍어 가슴이 먹먹했다."

-이제 한소라를 떠나보냈나.

"촬영이 끝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이제는 보내야 할 것 같다. 차기작 때문에 헤어 스타일을 바꿨는데 아직도 소라의 감정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다. 소라와 헤어지기 싫었다. 인물 자체에 가지는 애착과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커서 아직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던 것 같다. 마지막 방송을 보고 비로소 보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주변 지인들 반응은.

"가까운 친구들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는지가 보인다는 얘길 해줬다. 연락한 지 꽤 된 사람들의 연락도 많이 받았다. '이브'에 빠져 한소라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아서 연락한 것이라고 하더라. 그 마음 자체가 고마웠다. 대학 동기인 황석정 언니와 개인적으로 연락 안 하고 지낸 지 오래됐는데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힘이 나는 칭찬을 많이 해줬다. '동기로서 배우로서 좋은 길을 가고 있는 모습에 힘을 받는다'라는 말에 눈물이 펑펑 나더라. 연기에 대해 같이 고민하던 동기에게 받는 피드백이라 굉장히 큰 격려가 됐다."
유선유선

-가족들 반응은.

"제일 좋아하는 건 남편이다. 유튜브나 짤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올라오는 건 알았지만 유튜브에 다시 보기 채널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복습 채널이 많더라. 복습 채널이 나올 때마다 한소라 장면들의 조회 수가 어마어마하더라. 남편이 보라고 본인이 한껏 신이 나서 보내주는데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 집은 아이랑 아빠랑 같이 잠을 잔다. 나 혼자 쓰는 방이 있다. 아무래도 결혼하고 나선 식구들이 자러 들어가면 대본을 보러 밤늦게 들어가니 대본을 보는 시간이 적고 연기를 준비하는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연극과 드라마를 병행하니 이에 따른 부담감과 불안함이 있었다. 이번엔 정말 대본을 보는 시간이 많아야 할 것 같다고 남편한테 도와달라고 했고 남편과 아이가 배려 모드로 전환해서 요리 빼곤 거의 아무것도 안 했다. 모든 집안일을 남편이 하고 아이도 놀아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고마운 마음에 더 잘해야지 했는데 이런 반응과 리액션이 오니 남편이 너무 좋아했다."

-후배 서예지와의 호흡은 어땠나.

"서예지 씨의 경우 전작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친구라 극 중 이라엘과 잘 어울리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서 직접 만나보니 이미 열정적으로 역할에 대한 남다른 각오로 참여하고 있어 좋았다. 좋은 호흡을 맞출 수 있어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배우 박병은 씨가 자기 신이 아니어도 늘 같은 에너지를 유지해줘 좋았다고 하더라.

"배우로서 갖춰야 할 덕목이 배려, 예의라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나를 찍을 때만 100% 연기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할 때도 똑같이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눈물이 없는 눈으로 대사 한다면 상대방이 어떻게 감정 연기를 하겠나. 나 또한 받는 감정의 깊이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서 나라도 그 선을 지키자는 신념이 있다. 내 신이 아니더라도 똑같은 감정, 에너지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우리 갑순이' 등에서 맏딸 역을 많이 했었는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영화에서는 사실 다크한 역할이나 악역도 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이미지가 고착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웃음) 근데 영화는 관심 있는 사람만 찾아가서 보지 않나. 보는 사람이 한정돼 있고 드라마는 TV로 접하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본다. 맏딸에 대한 이미지가 훨씬 지배적이겠구나 하는 걸 느꼈다. 날 아직도 조용하고 참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한소라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큰일이겠구나 싶었는데 3회부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집중해서 봐주더라. 감사했다."

-베드신도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어깨까지만 나와 수위가 세지는 않았는데 본 분들이 장면에서 오는 분위기와 느낌 때문에 파격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 대본에 나와있을 때는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서 감독님과 논의를 많이 했다. 감독님은 사전에 콘티를 다 만들어서 배우가 부담스러워할 수 있는 걸 덜어내고 편안하게 찍을 수 있는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줬다. 촬영 역시 최소한의 인원만 참여해 배우가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일사천리로 계획된 콘티 안에서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돼 막상 찍을 때는 편하게 찍었는데 방송의 파급 효과는 예상보다 커서 깜짝 놀랐다."

-사고를 일으키고 욕을 하면서 도주하는 엔딩신이 있었는데 그건 대본에 있던 대사인가.

"원래 대본에 있는 대사인데 방송에 나갈 수 없다고 해서 하나는 '이런 썅' 하나는 '18' 두 버전으로 해서 찍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18' 만큼 임팩트가 있는 게 없어서 결국 묵음으로 해서 소화를 했다. 근데 사람들이 묵음으로 해서 더 웃겼다고 하더라. 이걸 희화화하고 싶어서 달려갈 때도 전력 질주하면 더 웃기겠다 싶어 그런 지점들을 염두하고 연기를 했다. 근데 그렇게 반응이 빵 터질지 몰랐다. 캡처해서 톡방에도 올리고 계속해서 회자되더라. 잘 살면 재밌겠다 싶었는데 시청자들이 크게 공감해줘 찍은 나로서도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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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신이 있다면.

"16회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붙잡으려고 하는데 결국 이혼이 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절벽 끝에 서 있는 한소라에겐 모든 게 다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광기의 화장을 하지 않나. 대본으로 봤을 때도 너무 강렬한 신인데 리허설 때도 눈물이 너무 나더라. 그 신을 찍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사람들이 '조커소라' '처키소라'라고 붙여서 불러줬는데 앞선 감정들이 응축되어 있는 최종화라 마음이 아팠고 기억에도 많이 남았다."

-배우로서의 목표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한 도전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일단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배우인지 잘 모르겠다. 물 만난 물고기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이 있는데 난 아직 그렇게 놀아본 적이 없어 내게 잘 맞는 옷은 뭘까 그걸 계속 찾아 헤맨 과정인 것 같다. 어떤 역할까지 가능한지 끝없이 알 수 없는 모험을 떠나는 중이다. 그걸 알고 싶어서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 같다."

-차기작 계획은.

"작품을 선택할 때도 역할을 봤을 때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면 끌린다. 최근 '종이달'이란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밝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좀 더 가벼워진, 경쾌한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사진=블레스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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