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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카메라] 카메라도 먹통 된 더위…'더 뜨거운' 길 위의 노인들

입력 2022-07-07 20:38 수정 2022-07-0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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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무더운 날씨를 더 힘겹게 보내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하는 이야기는 여름철마다 많이 들으시죠. 오늘(7일) 밀착카메라는 조금 다르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카메라가 먹통이 될 만큼의 더위보다 더 뜨거웠던 어르신들의 삶의 온도를, 이예원 기자가 길 위에서 담아왔습니다.

[기자]

햇볕이 뜨거운 대낮에 서울 시내로 나와 봤습니다.

기온은 31도인데, 체감 온도가 훨씬 높은 거 같습니다.

제 신체를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을 해보니까 표면 온도가 40도 넘게 올라갑니다.

실내는 파랗고 밖은 온통 빨갛습니다.

길 표면은 50도 넘게 오릅니다.

여든을 앞둔 할머니는 하루 10시간, 매일 앉아있습니다.

[A씨/78세 : (무슨 잎이에요?) 고구마순. (어떻게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이거? 할머니가 껍질 벗겨놨으니까 볶아서 먹으면 맛있어.]

손도, 무릎도 성치 않습니다.

[A씨/78세 : 다 여기 퇴행성 관절염. 뼈가 굵어져 버렸어. 일만 하고 운동 안 하고 그러니까.]

허기지면 보온병에 싸 온 밥을 먹습니다.

[A씨/78세 : 얼마나 돈 번다고. 밥 한 끼 사려면 5000원이야. 한 숟가락 먹으면 안 먹은 것보다 나아. 걱정 말아.]

할머니의 삶의 터전은 늘 바깥이었습니다.

[A씨/78세 : 지금은 다 여자고 남자고 가르치지만, 우린 학교 문 앞에도 나가보지 못했어. 계산을 할 줄 알아, 은행에 가서 뭘 할 줄 알아? 그러니까 포기하고 이것만 하는 거야.]

혼자 사는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다고 말합니다.

[A씨/78세 : 약값하고 먹고 싶은 것 좀 먹고. 징하게 더워, 말도 못 하게. 물 한번 먹고 가. (괜찮아요, 많이 먹고 왔어요.) 먹고 왔어? 고생했어.]

저희가 촬영하던 카메라가 갑자기 멈췄습니다.

경고등이 떴는데, 표면을 재 보니 50도까지 오릅니다.

밖에서 촬영한 지 한 시간 만입니다.

급히 다른 카메라를 구해와서 취재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제가 서 있는 도로 측정해보겠습니다.

48도까지 올랐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길 위엔 각자의 이유로 더위를 견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B씨/64세 : (다른 일) 하고 싶지만, 나이도 있지만 장사하러 가다가 교통사고 나서 한쪽 눈은 안 보여요. 수도요금 나가고 병원비 얼마 나갈지 모르고…]

[C씨/83세 : 친구가 맨날 뭐라 하거든. (왜요?) 힘든 거, 이런 거 한다고. 나 생각해서 그렇지.]

누군가는 가장입니다.

[D씨/69세 : 살기 위해서 하는 거지. 제가 생계를 해야 되니까. 가장이에요.]

손주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D씨/69세 : 관리비라도 내야 하고 반찬 해 먹고 해야 하니까. 뽕잎도 내가 따가지고 말려서 파는 거예요. 몇 푼 벌겠어요? 이것도 내가 따가지고. (오디요?) 네.]

오늘의 점심은 집에서 싸 온 도토리묵 무침.

그마저 취재진에게 건넵니다.

[D씨/69세 : 가져가서 잡숴요. 두 분 앉아요. (같이 드세요.) 아니야. (먼저 드세요.) 아니야. (어머니 안 드시면 안 먹어요.) 저분 잡수라고 해. 촬영하지 말고.]

할머니의 주변은 뜨거운 아스팔트 길.

건물주의 배려로 그나마 계단에 앉을 수 있게 됐습니다.

[D씨/69세 : (다른 일) 뭐 할 게 있나요? 나이가 있는데. 써주지도 않았지만.]

덥고 지치는 하루를 견디는 건, 손녀가 휴대폰에 다운받아 준 음악입니다.

[D씨/69세 : 음악이 친구예요. 세상 아무 생각이 없어지잖아.]

인터뷰에 응한 노인들 모두 얼굴 노출은 거부했습니다.

전부 가족들이 볼까 걱정된다는 이유였습니다.

묵묵히 홀로 밖으로 나온 이들의 자리는 오늘도 가장 낮은, 또 가장 뜨거운 이 길 위입니다.

(VJ : 김대현 / 인턴기자 : 이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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