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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스물일곱 장애인 유진우씨 목덜미를 할퀴고 간 건 누구였을까

입력 2022-06-28 11:00 수정 2022-06-2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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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썰] 스물일곱 장애인 유진우씨 목덜미를 할퀴고 간 건 누구였을까
지난 20일 아침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투블럭 머리에 링 귀걸이를 낀 젊은 남성이 눈에 띈다. 휠체어에 앉아 쇠사다리와 피켓을 목에 건 채 지하철 출입문에 멈춰 선 그는 스물 일곱살 유진우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 일한다. 그는 두달 전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머리카락을 죄다 밀었다. 지난 4월부터 매일 아침 이어져온 장애인 권리 예산 촉구를 위한 삭발식 행렬에 뛰어들었다.

 
[취재썰] 스물일곱 장애인 유진우씨 목덜미를 할퀴고 간 건 누구였을까
바짝 밀었던 흔적이 남아있는 투블럭 머리 끝자락, 목 뒷켠에 뭔가가 할퀴고 간 듯한 빨간줄 두 줄이 선명하다. 땀범벅이 된 목덜미에 몇시간 째 걸고 있던 피켓 줄이 살갗을 벗겨 핏물이 올라왔다. 진우씨는 "경찰이 문에서 끌어내려 하는 과정에서 쇠사다리가 계속 목을 스쳤다"고 했다. 쇠사다리는 장애인 단체가 마이크를 들고 호소문을 외치는 동안 지하철이 출발하지 못하도록 문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따금씩 칼날 같은 욕설이 날아든다.

목에 걸린 피켓에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T4를 아십니까?"라고 적혀 있다. T4는 나치 독일에서 1939년 자행된 장애인 생체실험 프로그램 이름이다. 당시 노동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 수십만 명이 생체실험에 동원됐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이름의 단편 영화에서 이 사건이 다뤄졌다.

 
[취재썰] 스물일곱 장애인 유진우씨 목덜미를 할퀴고 간 건 누구였을까
동료들은 목덜미 상처에 후시딘을 발라주며 진우씨를 위로한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밝다. 할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 절망 속 목소리를 냈다는 자부심이 읽힌다.
 
지난 3월 JTBC와 인터뷰 중인 유진우씨. 지난 3월 JTBC와 인터뷰 중인 유진우씨.

목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어쩌다가?

진우씨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자신처럼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는 목사가 되고 싶어 17년간 꿈 꿨다. 신학교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절망스러운 현실과 마주했다. 비장애인 중심의 질서와 구조는 신학교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었다. "장애인인데 되겠냐?"는 의심에 매번 스스로를 입증하려 애써야 했다. 도움의 객체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가 되고 싶었던 그는 목사 꿈을 접어야 했다.

거리로 나가기로 했다. 누구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헌법 상 권리를 장애인에게도 똑같이 보장해달라고 외치기로 했다. 투쟁가가 되었다. 지난 20년 쇠사슬을 두른 채 지하철 선로에 드러눕고, 최루액을 뒤집어쓰며 싸워온 선배들을 뒤따르기로 했다.

 
지난 4월 12일 삭발결의식에 나선 유진우씨. 〈사진 출처=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지난 4월 12일 삭발결의식에 나선 유진우씨. 〈사진 출처=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진우씨 목덜미에 빨갛게 핏물이 올라오도록 생채기를 낸 건 무엇이었을까. 일상의 매 순간 맞닥뜨린 차별이었을 것이다. 먼지를 들이마시며 지하철 바닥을 기어다녀도, 국회 앞과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 목이 터져라 외쳐도 꼼짝 않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장애인들을 지하철로 떠미는 순환논리

지난주 화요일 서울시의회에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됐다. 지난해 서울시가 일부 반대 목소리에 부딪혀 "연내 조례를 제정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 결국 시의회 의원들이 대신 조례안을 내서 통과시켰다. 시의회 내부에서도 치열한 토론이 오갔다. 반대 주장 중 하나는 "장애인 탈시설 지원과 관련한 상위법 마련이 안 됐는데 조례부터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상위법이란 것은 국회에 계류돼있는 장애인 탈시설지원법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회의록을 확인해보면 "사안이 복잡하니 TF를 꾸려서 좀 더 논의하자"며 매 회의 때마다 본회의 상정을 미루는 발언이 몇달째 되풀이되고 있다.

장애인 탈시설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지원법을 만들기엔 이르다고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법이 없기 때문에 조례는 위법하다고 주장한다. 지독한 순환논리에 갇힌 장애인들은 별 수 없이 또 출근길 지하철을 탄다. "장애가 벼슬이냐." 쏟아지는 경멸과 욕설 한가운데로 눈 질끈 감고 나아간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건 목덜미에 남는 상처도, 욕설도 아니다. 이 사회에서 잊혀지는 것, 외면받는 일이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 발목을 잡는 장애인들은 말한다. '시민들 볼모 삼는' '비문명인'이라고 욕해도 좋지만 잊지 말아달라고. "우리를 욕하셔도 좋지만, 열번 중 한 번만, 바뀌지 않는 정부를 향해 국회를 향해 쌍욕을 해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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