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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상) 미처 몰랐던 습지의 역할

입력 2022-06-13 09:30 수정 2022-06-13 09:3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35)

지구상 7%의 면적으로
멸종위기생물 100만종의 살 곳과
인구 10억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습지
전 세계 육상 탄소의 33%를 저장하는
'글로벌 탄소 저장고'이기도
'재생에너지 급' 탄소 감축 기여하는 자연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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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35)

지구상 7%의 면적으로
멸종위기생물 100만종의 살 곳과
인구 10억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습지
전 세계 육상 탄소의 33%를 저장하는
'글로벌 탄소 저장고'이기도
'재생에너지 급' 탄소 감축 기여하는 자연 환경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펀지처럼 물을 뿜어내면서 신발을 적시는 곳. 각종 식물도 많지만 벌레 역시 많은 곳. 그래서 선뜻 반가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걷기 어려운 곳. 흔히들 늪, '습지'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습지는 자연 속에 숨겨진 보물,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남겨준 선물과도 같습니다.

 
JTBC 취재진이 국립공원공단과 함께 오대산 국립공원 내 람사르 습지 두 곳을 찾았다.JTBC 취재진이 국립공원공단과 함께 오대산 국립공원 내 람사르 습지 두 곳을 찾았다.
지난달, 취재진은 국립공원공단과 함께 오대산 국립공원 내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소황병산늪과 질뫼늪을 찾았습니다. 두 곳 모두 시민들의 출입이 통제된, 자연 속 숨겨진 장소입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는 것은, 습지 내 생물다양성이 뛰어나고, 보전 가치가 크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통제된 장소인 만큼, 제대로 된 등산로조차 없는 깊은 산속에 위치한 소황병산늪과 한 때 목장으로 쓰이던 초지 옆에 드넓게 자리한 질뫼늪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흔히들 습지라고 하면 산의 둘레나 평탄한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소황병산늪의 해발고도는 1100m를 넘습니다.


물을 잔뜩 머금은 땅은 이끼로 뒤덮였고, 우리나라의 자생 식물인 꿩고비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습지와 일반 토양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분명 단단한 흙으로 된 땅이었는데, 불과 몇 걸음만 더 옮기면 토양은 어느새 스펀지처럼 변해버리는 것이죠. 처음 습지를 접한 이라면, 구분하지 못하고 걷다 두 발을 물에 적실 정도입니다. 바로, 이탄 습지의 모습입니다. 발로 밟는 것을 넘어 손으로 토양층을 눌러봐도 물이 새어 나오죠.

 
박홍철 국립공원공단 기후변화연구센터 박사가 이탄 습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박홍철 국립공원공단 기후변화연구센터 박사가 이탄 습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습지는 다른 산림지와는 다르게 수계에 걸쳐 있거나 지하수위가 풍부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토양이 수분을 굉장히 많이 머금고 있습니다. 이탄 습지는 일반적인 토양의 흙과는 다른 토양입니다. 동식물의 사체가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토양층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습지는 거의 사시사철 지하수위가 높게 유지됩니다. 일반적인 산림지는 건조기가 찾아오면 토양의 수분 함량이 굉장히 떨어지는데, 그에 반해 습지는 비가 오지 않더라도 수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됩니다. 물론, 비가 많이 오면 지하수위는 더 높아지고요.”
박홍철 국립공원공단 기후변화연구센터 박사

물이 풍부한 곳이다 보니 물과 친한 식물들이 주로 자랍니다. 각종 물이끼류나 산림에선 보기 힘든 양치식물, 버드나무류의 나무 등이 자리하고 있죠. 만약 산속을 거닐다 조금씩 이런 식물들이 눈에 띈다면, 근처에 '습지가 있다'고, 혹은 '이 땅 아래로 풍부한 물이 흐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물이 풍부한 만큼 각종 동식물의 '쉼터' 또는 '삶의 터전'으로써의 역할도 합니다. 오대산국립공원 내의 습지는 총 5곳. 면적은 44헥타르가량입니다. 이곳에선 58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넓은 면적에 걸쳐 펼쳐진 질뫼늪은 각종 야생동물이 즐겨 찾는 장소입니다. 군데군데, 유량이 많은 곳엔 물이끼와 풀들이 한데 뭉쳐 섬처럼 올라온 '초본 구조토'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멸종위기종인 기생꽃 역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민혁 국립공원공단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 계장이 오대산 습지 내 생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민혁 국립공원공단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 계장이 오대산 습지 내 생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습지는 동물들이 물을 구하기 좋은 곳이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물을 좋아하는 수달이라든가, 멸종위기종인 담비라든가 이런 동물도 습지에선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질뫼늪은 넓은 면적에 걸쳐 형성되어 있기 떄문에 검독수리와 같은 멸종위기 조류들도 자주 모이곤 합니다.”
이민혁 국립공원공단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 계장

이처럼 습지는 지구에서 멸종위기생물에 있어 중요한 안식처가 됩니다. 어쩌면, 서두에 언급한 습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으로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것이 야생생물엔 너무도 다행인 일일지도 모릅니다. 습지는 이처럼 '오롯한 자연'의 모습으로, 작지만 큰 역할을 합니다. 지구 면적의 단 7%밖에 안 되는 면적이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멸종위기생물만도 100만종에 달합니다. 이런 소중한 장소임에도 1970년대 이후, 지구상 3분의 1의 습지는 사라졌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선뜻 머릿속에 그려지기는 어렵습니다만, 습지 덕분에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무려 10억명에 이르죠. 그런데, 이러한 습지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역할이 있습니다. 이 역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큽니다. 7%의 면적으로 지구상 33%의 육상 탄소를 저장하는, 거대하면서도 자연 속에 숨어있는 '탄소 저장고'의 역할입니다.

 
강희진 국립공원공단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장이 습지의 역활과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강희진 국립공원공단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장이 습지의 역활과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습지는 유기물이 풍부하여 다양한 생물의 서식지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물을 저장하여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고, 수질 정화 기능도 합니다. 또한, 탄소저장과 같은 기후조절 기능도 있어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강희진 국립공원공단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자원보전과장

 
[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상) 미처 몰랐던 습지의 역할
앞서 박홍철 박사의 이탄층에 대한 설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동식물의 사체가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졌다는 설명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탄소의 저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나무가 광합성 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뱉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졌습니다만, 이러한 탄소를 '흡수'하는 것을 넘어 '저장'한다는 것은 조금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장한다는 것은 흡수와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것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나무의 목질의 형태로 저장을 하죠. 그 형태가 바로 탄소입니다. 그런데 습지 같은 경우엔 나무처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도 하지만,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의 사체 역시 탄소를 저장한 결과물이죠. 이 사체가 켜켜이 쌓여있다는 것은 곧 탄소가 켜켜이 땅 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홍철 국립공원공단 기후변화연구센터 박사

이산화탄소(CO2)를 흡수하고 산소(O2)를 내뱉는 과정을 통해 식물을 살아갑니다. 그럼, 그 식물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C, 바로 탄소입니다. 그렇게 식물은 자연스럽게 이산화탄소를 분리시키죠. 이는 우리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탄소를 축적한 식물을 먹고, 그러한 식물을 먹은 동물을 먹으며 탄소를 축적하죠. 지구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인 고래를 두고 '바다의 환경지킴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탄소를 축적한 생명체가 땅속 깊숙이 오랜 시간 묵혀져 있다가 석유나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가 되는 것이고요. 이 화석연료를 태우면, 화석연료는 다시 산소와 만나 이산화탄소를 뿜어내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탄소의 순환'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자연환경 속 살아있는 식생도, 죽은 식생도, 그 죽은 식생들이 쌓여 만들어진 토양도… 하나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식생은 계속해서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탄소로 분리해 탄소를 저장하고, 죽은 식생과 토양은 그 탄소를 고이 품어 격리시키니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상) 미처 몰랐던 습지의 역할
우리 지구의 숲이 해마다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156억톤에 달합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최고 배출 기록'이 세워진 2018년 수준의 최소 21.4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푸르른 식생이 품어주는 것이죠. 지구상에 대한민국만 21개 있다면, 그저 자연보전만으로도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이러한 자연을 파괴하고 있고, 지구상에 나라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죠. 어쩌면 이같은 통계는 우리가 자연이 받아줄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지구를 혹사하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탄소 저장량을 식생별로 구분했을 때, 꽤나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단위 면적당 저장량을 따져봤더니, 그 어떤 자연 환경도 습지만큼 탄소를 품지 못했던 것이죠. 습지 1헥타르당 무려 686톤의 탄소를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산림에 해당하는 온대림의 4.5배에 달하고, '지구의 허파'라고 부르는 열대림의 약 3배가량입니다. 습지의 탄소 저장량 중 대부분은, 그 켜켜이 쌓인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식생의 저장량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온대림 식생의 흡수량이 1헥타르당 57톤인데, 습지 식생의 흡수량이 43톤인 것이죠. 일반적인 산림과 습지에서의 식생이 겉으로 보여주는 '덩치 차이'가 꽤나 큰 것에 비춰보면, 습지 식생이 '상당한 선방'을 한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자연이 선물한 '보물' 습지 (상) 미처 몰랐던 습지의 역할
이 때문일까요. 지난 4월 발표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평가보고서(워킹그룹 III)에선, 이러한 자연의 감축 역할이 과학적으로 규명되고, 강조됐습니다. IPCC의 워킹그룹 III는 발전, 수송, 산업, 건물, 농림 및 토지 등 모든 부문에 걸친 여러 감축 옵션들의 감축 잠재량을 평가했습니다. 그 결과, 연간 감축량 측면에서 자연환경은 다른 그 어떤 감축 옵션들보다 뛰어난 감축량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체 옵션의 수는 43개에 달했는데, 이중 연간 4Gt 안팎을 줄일 수 있는 옵션은 단 4개뿐이었습니다. 발전부문의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 농림 및 토지이용 부문의 탄소격리 농법과 산림, 습지 등의 보전 및 용도 변경 지양만이 그 정도의 감축을 할 수 있는 선택지였던 것이죠. 이는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모든 과학자들과 회원국 모두가 만장일치로 동의한 내용입니다. 결국 국제사회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에 있어 과학기술적인 접근과 더불어 자연을 통한 대책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를 자연기반 해법(NBS, Nature-based Solution)이라 부릅니다.

이런 가운데, 이렇게 귀한 보물인 습지는 끊임없는 위협을 겪고 있습니다. 최소한 90%는 우리 인간의 활동 탓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습지가 훼손됐을 때 '훼손된 습지'는 더 이상 '보물'이 아닌 '재앙'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습지 훼손은 마치 절대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셈이죠. 습지가 얼마나 위협에 빠졌는지, 그로 인한 영향은 무엇인지, 또 이를 막기 위해선 어떻게 나서야 하는지… 다음 주 연재를 통해 이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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