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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입력 2022-05-09 09:00 수정 2022-05-09 09:1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30)

그래픽으로 보는 탄소중립의 '마지막 열쇠'
발전, 산업, 수송 부문만 노력하면 될까?
이들보다 배출 비중은 적지만
감축 난이도 높고, 체감 큰 두 부문
탄소중립 '마지막 열쇠', 건물과 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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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30)

그래픽으로 보는 탄소중립의 '마지막 열쇠'
발전, 산업, 수송 부문만 노력하면 될까?
이들보다 배출 비중은 적지만
감축 난이도 높고, 체감 큰 두 부문
탄소중립 '마지막 열쇠', 건물과 산림

2030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40%로 강화할 때에도,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 때에도, 감축의 정도와 방법을 이야기할 때에도… '주요 논의 거리'는 전환(발전), 산업, 수송으로 꼽힙니다. 이들 부문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클뿐더러,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목소리 역시 큰 편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대선 과정에서도,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 주요 의제로 떠오르지 못했음에도, 발전믹스를 두고 기호 1번 후보와 2번 후보는 확연한 견해 차이를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5년간 기후 정책을 이끌 새 정부도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의 퇴출을 꾀하고 있죠.

탄소중립과 관련한 논의가 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온실가스가 뿜어져 나왔던 2018년, 전체 배출량 가운데 대부분이 이 세 부문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발전(37%), 산업(36%), 수송(14%)… 거의 90%에 육박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세 부문만 잘해서는 '2050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그해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210만톤에 달했습니다. 전체 배출량의 7.2% 수준입니다. 제아무리 발전과 산업, 수송에서 '넷 제로'를 달성한다 할지라도, 이 5210만톤을 줄이지 못한다면 '탄소중립'을 실패인 셈이죠. 2030 NDC에도 건물 부문에 대한 야심 찬 감축 목표가 담겼습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2.8%를 줄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꽤나 높은 목표입니다. 폐기물(46.8%)과 발전(44.4%), 수송(37.8%)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입니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자원순환을 잘해야 한다(폐기물)', '탄소배출이 적은 발전원으로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발전)', '내연기관이 아닌 전기차나 수소차를 타야 한다(수송)'… 탄소중립 선언 전후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건물 부문의 야심 찬감축목표와 달리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을 해야 한다'와 같은 방법론을 들어본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분명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부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발전소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직접 눈으로 볼 일도 없지만, 건물은 매일같이 마주하고, 이용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저 역시도 건물 안에 있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도 대부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집, 학교, 회사 혹은 지하철역, 기차역, 터널 등 건축물을 이용 중일 테니까요. 이렇게 우리의 일상 곳곳에 스며든 건물의 변화인데, 왜 정작 우리는 그 변화가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 잘 모르는 것일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지난해 여름, 연재를 통해 6주에 걸쳐 상세히 설명드렸던 IEA(국제에너지기구)의 '2050 넷 제로 로드맵'의 일부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각 부문별 배출량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현재 기준, 발전〉산업〉수송〉건물〉기타 순인 탄소 배출량은 각고의 감축 노력 끝에 2050년 '0에 수렴하는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결과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2050년엔 부문별 배출량 순위가 수송〉산업〉건물〉발전〉기타 순으로 뒤바뀌어 있습니다. 다른 부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배출량이 많던 발전 부문은 어느새 '배출량이 가장 적은 부문'으로 거듭났고, 건물 부문은 그 어떤 부문보다도 감축의 양이 적습니다. 그만큼 건물 부문의 감축이 까다롭다는 것입니다. 현재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해서 감축 노력을 게을리하거나 '아직 감축 방안을 논의하기까지 시간이 충분하다'며 여유 부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도대체 건물 부문에선 어떻게 탄소 배출이 발생할까요. 거의 대부분은 '에너지'에서 비롯됩니다. 집에서 잠을 잘 때에도, 요리할 때에도, 씻을 때에도. 회사에서 일하고, 화장실을 갈 때도. 항상 에너지가 투입됩니다. 2020년 현재 기준, 건물 부문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 일은 난방입니다. 가전제품이 다양해지면서, 그 제품이 사용하는 에너지 역시 엄청납니다. 온수나 냉방을 위해 쓰는 에너지보다도 많을 정도죠. 그렇다면, 건물에서 우린 어떤 형태의 에너지를 이용할까요. 건물에서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에너지는 전기입니다. 난방과 조리를 위해 사용하는 석유나 LNG를 합친 것과 맞먹을 정도입니다.

IEA는 위의 로드맵을 통해 '두 가지 해결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감소와 전기화(Electrification)입니다. 당장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을 지금보다 20% 가량 줄이고, 석탄과 석유, LNG 등 화석연료의 이용 역시 40% 가량 줄이는 겁니다. 2050년엔 이러한 화석연료의 이용을 거의 안 할 정도로 줄이고요. 보일러를 켜고, 요리를 하는 데엔 대신 전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 IEA가 내린 결론입니다. 이렇게 전기를 쓰는 것들이 많아지는 데에도 전기 사용량 자체는 2020년이나, 2030년이나, 2050년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기를 쓰는 제품 자체의 효율 역시 좋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전기와 효율은 건물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쓰는 에너지의 양을 줄이고, 새어 나가는 에너지 역시 줄이는 것이죠. 바로 '패시브 건축'이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패시브 하우스'라는 표현은 리모델링 시장 등을 통해서 일반 시민에게도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써 라기보다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절약하는 방법으로써 말이죠.

이런 가운데 '패시브'를 넘어 '액티브'의 개념까지 도입되면서 '제로에너지 건축'이 탄소중립 대안으로 나와 실제 적용에도 이르렀습니다. 단순히 에너지를 지키고, 아끼는 데에 그치지 않고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발전소로써 에너지(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미 우리나라도 제로에너지 건축을 의무화했습니다.. 지난 2020년 면적 1000㎡ 이상의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시작된 제로에너지 건축 의무화는 앞으로 공공에서 민간으로, 대형 건물에서 소형 건물로 점차 확대될 예정입니다. 이러한 노력과 관심의 결과일까요. 건물 부문의 전력 효율은 대체로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건물이 이용하는 전력과 관련한 통계들을 살펴봤습니다. 건물의 수에 따라 전력 사용량 역시 크게 달라지는 만큼, 각각의 통계를 모두 동일하게 '단위 면적당 사용량'으로 정리해봤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사용량의 감소세가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3년 주기로 실시됐던 대형건물 부문 전력 사용량 통계에선, 교육용을 제외하곤 업무용과 상업용 모두에서 뚜렷한 감소가 있었습니다. 또한, 최근 3년간 건물별 에너지 사용량 가운데 전력 사용량만을 떼어내 살펴봤을 때에도 거의 모든 시설에서 감소세가 나타났습니다. 다만 공동주택과 교육연구시설의 경우, 다른 종류의 건물 대비 감소세가 더딘 편이었습니다. 최소한 '새어 나가는 에너지를 잡는' 데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앞으로 더 신경 써야 할 것, 바로 집과 학교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다른 종류의 건물보다 '빠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한번 지어지면 오래 쓰고, 그 사이 대대적인 개보수가 잘 이뤄지지 못합니다. 뚝딱뚝딱 새집, 새 학교가 지어지기도 어렵죠. 집집마다 어딘가 꼭 한 곳은 있는 '외풍 센 방', 겨울철 후끈하게 곳곳에 난방을 잘 틀어줘도 유독 '냉골 같은 학교 화장실', 아무리 에어컨을 세게 틀어도 여름철 열기에 '뜨끈뜨끈한 중앙도서관 벽'… 모두, 속절없이 새어나가는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건축물 현황 통계를 살펴봤습니다. 준공된 지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은 과연 얼마나 많을까요. 전국의 건축물 10개 중 4개꼴로 노후 건축물이었습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보다는 그 외 지역에서 노후 건축물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그렇다고 '대도시'라고 해서 무조건 이 숫자가 낮은 것은 아닙니다. 부산의 노후 건축물 비율은 무려 58%에 달했고, 서울 역시 절반 이상의 건물이 지어진 지 30년 이상 된 건물이었습니다. 광주의 노후 건축물 비율도 전국 평균을 상회했고요.

건물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발전이나 산업 등 다른 부문보다 적은 것은 분명하지만, 감축의 난이도는 비슷하거나 더 어려운 축에 속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전환과 산업, 수송 부문에선 시장의 원리로, 수출경쟁력과 같은 이유로 감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건물 부문은 그럴 유인책이 부족하죠. '기후변화를 막자',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이유만으로 노후 건축물의 즉각적인 개보수를 추진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이유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봐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누군가 지어놓은 집을 '내 집'으로 만드는 일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 내 가게의 월세를 내는 일도…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는데 돈을 들여 '그린 리모델링'을 하라고 하면, 누가 선뜻 나설까요. 세입자가 아무리 요구해도 집수리도 잘 안 해주려는 집주인이 발 벗고 나설까요. 당장 리모델링 기간 '살 집'이나 '생업을 이어갈 공간'이 없는 세입자가 먼저 요청할까요. 전기나 가스와 같은 에너지 요금이 비싸서 '차라리 리모델링하는 것이 돈을 아끼는 셈'이 된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이행에 나서겠다고 밝힌 곳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다른 건물들에 비해 단위 면적당 전력 사용량이 좀처럼 줄지 않는 교육기관에서 말이죠. 고려대학교는 지난 6일 세미나를 열고,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목표 시점은 국가 차원의 탄소중립보다 앞선 2045년입니다. 지난 2020년 기준, 고려대 서울캠퍼스와 세종캠퍼스, 안암과 구로, 안산병원에서 뿜어낸 온실가스 배출량은 10만톤에 육박했습니다. 전체 배출량의 22%는 직접배출, 73%는 간접배출이었죠. 2021년 기준, 이들 시설이 전기와 가스, 수도를 이용하는 데에 쓴 금액만도 122억원에 달했습니다.

정진택 총장은 세미나에서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국가 R&D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기후위기의 당사자인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이 모범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대학의 선도적인 탄소중립 이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관리처장인 현승훈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탄소중립 선언 이전인 2019년부터 스마트캠퍼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이미 에너지 사용에 있어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왔던 것”이라며 “통합 제어시스템을 통해 각 건물의 비효율을 모니터링하는 한편, 비품의 사용 연한도 연장함으로써 탄소 저감에 나서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고려대학교는 이행 계획을 크게 두 단계로 나눴습니다. 1단계는 오는 2030년까지로, 개교 120주년을 맞는 2025년까지 20%, 이후 2030년까지 40%의 감축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이후 자체적인 마이크로그리드를 구축하고, 태양광과 수소연료전지 등의 신기술을 도입한 2단계 기간, 나머지 감축을 이어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이 과정의 핵심은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에너지 발전에 있습니다. 쓰는 에너지의 양을 줄이고, 그렇게 쓴 에너지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을뿐더러,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든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 고려대학교 OJERI(오정리질이언스연구원)는 캠퍼스 총 62개의 건물을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특히, 건축 중공 시점과 창호의 구조, 건물 외부 면적에서 창호가 차지하는 비율, 재실자의 이용 시간과 밀도 등에 따른 사용 용도를 중심으로 건물 유형을 나눈 겁니다. 또한, 이들 건물의 가스와 전기 등 에너지 사용 현황과 효율을 분석했습니다.

개선책으로는 창호 교체뿐 아니라 조명 교체, BEMS(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 히트펌프, 배열(폐열)회수장치 등, 현재 적용 가능한 다양한 대책들이 고려됐습니다. 그 결과, 에너지 효율 개선만으로 최고 70%(법학관 구관)에서 최저 27%(로봇융합관)까지, 평균 43%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자연기반해법에 의한 대응도 강화할 계획입니다. 서울캠퍼스(28.9ha)를 비롯, 양평(553.5ha), 철원(441ha), 괴산(226ha)에 위치한 학술림과 덕소 농장(39.6ha)에서의 적극적인 산림경영을 통해 나무 심기와 숲 가꾸기 등을 통해 기존 생태흡수원의 흡수능력을 20% 이상 높인다는 것이죠.

감축과 흡수뿐 아니라 자체적인 에너지 발전에 대해서도 세부 계획이 공개됐습니다. 서울캠퍼스 기준, 현재 4개 건물에 태양광발전시설이 설치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4개의 지열발전시설, 1개의 수열발전시설도 설치되어있죠. 추가적인 발전을 위해 학교 측은 건물 지붕을 활용한 태양광발전 확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우균 OJERI 원장은 “서울캠퍼스 건물 지붕면적의 50%를 태양광 발전에 활용했을 때, 연간 12GWh(발전효율 20% 기준)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국내외에서 활발한 R&D와 실증사업이 진행중인 BIPV(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 건물일체형태양광) 역시 적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원장은 “BIPV는 2030년 이후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 시점에 맞춰 이를 설치하는 방안 역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고대에서 연구 중인 3세대 태양전지 '페로브스카이트' 역시 캠퍼스에서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실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전기 외에 가스 등의 수요를 대체하기 위한 수소 연료전지의 실증 연구도 시행할 방침입니다. 가격 경쟁력이 약하고, 캠퍼스에 대규모로 적용하기엔 기술적인 준비가 더 필요한 만큼, 산학 협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실증에 나서고, 이 과정에서 제한적이지만 실제 캠퍼스 내 건물에 설치를 추진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탄소중립 계획은 '캠퍼스 울타리 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캠퍼스 내 발전시설과 발전량이 늘어나는 만큼, 수급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제주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선 재생에너지의 한낮 발전량이 일시적으로 수요를 초과해 강제로 발전을 멈추는 커테일(Curtailment)이 비일비재한 상태입니다. 이에 OJERI는 캠퍼스 내 초과 발전량을 버리기보다 지역사회에 공급하는 '프로슈머'의 역할에 나서겠다는 계획입니다. 각 건물의 수요는 BEMS와 스마트 수요관리 시스템 등을 통해 실시간 파악 및 예측이 가능한 만큼, 발전량이 얼마나 넘칠지도 예측하기 수월해 집니다. 이를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저장장치)에 저장하거나 지역사회로의 그리드로 송전하거나 여러 대안들을 택해 안정적인 전력망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계획 가운데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 외엔 그 어느 것도 쉬운 일은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지금의 기술로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뛰어넘는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탄소중립 계획을 주도한 황석태 OJERI 특임교수는 6일 세미나에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인 것은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연구 역량과 투자 촉진 등을 통해 대학이 먼저 이행에 나서야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호주 시드니대학은 각각 지난 3월과 4월,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했다. (자료: 각 대학 홈페이지)미국 스탠퍼드대학과 호주 시드니대학은 각각 지난 3월과 4월,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했다. (자료: 각 대학 홈페이지)
하지만 '불가능하다'고만 여기기엔 이릅니다. 아일랜드의 더블린 시립 대학교는 RE100 캠페인의 '첫번째 스텝'이라고 할 수 있는 CDP(Carbon Discolusure Project, 탄소공개프로젝트)의 2021년 평가에서 B등급을 받기도 했습니다. 더블린대는 당시 제출한 보고서에서 대학의 전체 전력소비량 2만 7866.94MWh 가운데 79.2%인 2만 2060.53MWh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기 외의 에너지원을 다 포함하더라도,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대학이 사용한 전체 에너지의 48.96%나 됐습니다. 지난 2020년 4월, 〈[박상욱의 기후 1.5] '그린 뉴딜', 에너지 전환=일자리 전환〉에서 전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한 그린뉴딜 시뮬레이션과 관련해 JTBC와의 단독 인터뷰에 나섰던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교는 올해 3월, 88MW급 태양광발전 시설을 추가로 가동하며 '100% 재생에너지 공급'에 나섰습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역시 지난달을 기해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했고요.

고려대학교가 발표한 이번 탄소중립 계획은 지역 단위 탄소중립의 '미니어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탄소중립 대상이 되는 캠퍼스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시설들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나 교직원의 입장에선 업무 공간이기도, 기숙사에서 지내는 학생의 입장에선 거주 공간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프랜차이즈 카페나 음식점도, 마트도, 은행도 있습니다. 운동이나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일부 녹지도 있죠. 대형 병원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표의 달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작게는, 가장 더딘 변화를 보이고 있는 '건물 부문'의 감축에 있어. 더 작게는, 그 건물 부문에서도 효율 개선이 가장 더딘 '교육시설'과 소비량이 가장 많은 '의료시설'에 있어 감축의 시도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지역 단위 탄소중립의 '미니어처'로써, 이행 과정의 성과와 실패 모두가 하나의 선행 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계획의 발표보다 더 중요한 이행, 그 이행 과정의 모니터링 결과에 앞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발전소와 자동차만 바꾸면 될까? 탄소중립의 '숨은' 열쇠 (상)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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