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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입력 2022-05-02 09:00 수정 2022-05-02 18:0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9)

RE100 달성의 필수조건, 재생에너지 확대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현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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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9)

RE100 달성의 필수조건, 재생에너지 확대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현황은?

현대자동차가 RE100 가입을 마쳤습니다.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번 가입엔 현대차그룹 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그룹 주요 4사가 함께 나섰습니다. 지난해 7월, RE100 가입을 선언한 지 9개월 만입니다. 삼성전자 역시 RE100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내 재계 순위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탄소배출량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있는 기업의 결정은 앞으로 에너지전환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다른 기업들의 생각에도 변화를 부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1월, 116번째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ESG, RE100은 이미지 메이킹? 엄혹한 실전!〉에서 RE100에 가입하고, 이미 달성을 끝마친 글로벌 기업들의 소식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2021년 기준, 가입 기업 수만도 349개에 달하며, 이들 기업이 쓰는 전기 가운데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벌써 45%에 달했습니다. 이중 RE100 달성을 선언한 기업은 61곳에 이르고, 29곳은 RE100 달성을 공식 인증받기까지 했죠.

한때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엔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쏟아졌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2020년 기준, 가입기업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제조, 원료 및 자재, 인프라 관련 기업들이었습니다. RE100에 가입한 제조업 기업의 평균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32%에 달했고, 원료 및 자재 관련 업종은 기업이 쓰는 전기 가운데 48%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RE100에 가입은 할 수 있겠지만, 이를 달성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그저 '지구를 위해서', '북극곰을 위해서'만이 아닌 '산업 경쟁력의 강화'를 위해서도 필수인 셈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요.

영국의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엠버, RE100 캠페인을 운영하는 CDP, 그리고 각 기업들이 공개한 전력 사용량 데이터를 살펴봤습니다. 글로벌 탄소중립 트렌드에 가장 취약한 기업 8곳이 지난 2020년 한 해에 쓴 전력량은 84.6TWh에 달했습니다. 그 해 우리나라 태양광 및 풍력 발전량의 4배에 달합니다. RE100에 가입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달성 가능성이 희박한 셈입니다. 이 기업들의 업종은 전자,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으로 RE100에 대한 압박이 특히나 큽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이들 기업의 전력 사용량을 기업별로 보다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탄소배출 1위' 포스코의 전력 사용량은 3.2TWh로, 전력 사용에 있어 상위권은 피했습니다. 제철업의 특성상 전기를 쓰는 과정보다 제조 공정 자체에서의 탄소배출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RE100 가입이 승인된 현대차의 경우, 3.34TWh의 전기를 사용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위의 기업들 가운데 RE100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SK 하이닉스는 일찍이 RE100에 가입했죠. RE100에 가입하기 전부터 SK 하이닉스는 재생에너지 이용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플이 자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에게 '재생에너지 100%'를 요구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완성품의 판매뿐 아니라 협력사로서 부품을 공급하는 입장에서도 위의 기업들은 재생에너지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저감이나 탄소중립 달성을 떠나, 이들 기업이 RE100 걱정 없이 수출 시장에 뛰어들려면 재생에너지는 지금보다 몇 배나 더 늘어나야 합니다. 게다가, RE100 가입 및 이행이 필요한 기업은 이들 8곳 외에도 많습니다. 태양광과 풍력의 대대적인 확대가 시급한 이유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이처럼 재생에너지 확산의 배경엔 그저 '지구를 위해서'라는 대의 혹은 도덕적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전기 가운데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는 이제 천연가스를 넘어 석탄으로 만든 전기보다 많아졌습니다. 발전비중은 무려 37.9%에 달합니다. 여러 재생에너지 가운데 '친환경 논란'이 전혀 없는 풍력과 태양광만으로도 벌써 10% 넘는 전기를 만들고 있는 오늘입니다. 갑자기 전 세계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구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그저 '도덕적 우위'에 오르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인력과 자원, 자금을 투입할 나라나 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RE100의 핵심인 풍력과 태양광은 그럼 지금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을까요. 국가별로 살펴보겠습니다. 벌써 풍력과 태양광만으로 전체 전력의 40% 이상을 공급하는 나라도 있었습니다. 남반구와 북반구에 한 곳씩, 덴마크와 우루과이가 각각 51.9%, 46.7%로 이미 크게 앞서나간 것이죠.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선두권이 있다면 중위권, 10~40% 사이에 있는 나라도 많았습니다. 중위권의 선두는 리투아니아로, 36.9%의 전기를 풍력과 태양광 발전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 밖에도 유럽에선 스페인(32.9%), 독일(28.8%), 영국(25.2%), 네덜란드(24.6%), 이탈리아(16%) 등이 중위권에 포진했고, 아시아 및 오세아니아에서도 호주(21.7%)를 필두로 터키(13.3%), 중국(11.2%), 베트남(10.7%), 일본(10.2%) 등 여러 나라가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나라는 하위권에 자리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손꼽히며, '한·중·일' 아시아 Top 3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지만, 에너지전환 측면에선 결코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했습니다.

엠버는 특히, 중·하위권 가운데 네덜란드와 호주, 베트남에 주목했습니다. 최근 2년 새 네덜란드에선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에서 39%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태양광 발전의 비중은 4%에서 10%로 크게 늘었죠. 호주 역시, 같은 기간 태양광 발전의 비중이 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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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인 곳은 바로 베트남입니다. 태양광 발전의 비중이 2년 만에 2%에서 10%로 무려 5배가 됐습니다. 베트남은 우리나라에서 탄소중립과 그린뉴딜을 한창 논의하던 때, 한전이 서둘러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던 나라입니다. 마치 '개도국엔 아직 화력발전이 더 필요하다'며 선의로 사업에 나서는 듯한 뉘앙스를 보였지만, 정작 베트남의 생각은 조금 달라 보입니다. 2020년과 2021년, 불과 1년 사이 석탄화력발전소의 발전량은 5TWh 줄었고, 가스화력발전의 발전량은 10TWh나 줄었습니다.

“우리나라의 ODA(공적개발원조)에서 기후환경 분야 비중을 높이고, 개도국의 녹색성장을 지원하는 GGGI(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에 연 500만 달러 가량의 '그린뉴딜 펀드 신탁기금'을 신설하겠다.” 지난해 5월, 우리나라 대통령이 P4G 정상회의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의 석탄발전이 아니라, 이렇게 급성장 중인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 여기에 국내 기업이 진출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기술개발에 투입할 재원을 확보했다면 어땠을까. 짙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베트남의 녹색성장에 기여하기는커녕, 정반대로 향하는 사업을 추진하고야 말았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이처럼 급증하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모습은 G20 국가 대부분에서 목격됩니다. 엠버는 2015년과 2021년, 20개 나라에서 이들 발전의 비중이 얼마나 달라졌나 살펴봤습니다. G20 회원국 가운데 태양광 발전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는 호주였습니다. 2015년, 태양광 발전비중 2%로 당시 중위권에 머물렀던 호주는 2021년, 그 비중을 12%까지 끌어올리며 선두를 차지했죠. 일본 역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습니다. 6년 새 태양광 발전의 비중은 3.5%에서 9.3%로 배 이상 늘었습니다. 2015년 당시, '태양광 불모지'와 같았던 멕시코는 0.1%였던 비중을 같은 시간 5.3%까지 끌어올리며 EU 평균에 버금가는 수준이 됐습니다.

풍력 발전은 이제 '주요 발전원'의 지위를 노릴 만큼 그 비중이 커졌습니다. 세계 평균 태양광 발전의 비중이 3.6%로 늘어난 사이, 풍력 발전의 비중은 6.6%로 늘었죠. '2015년 1위'였던 독일은 2021년 19.9%로 발전비중을 크게 끌어올렸으나 순위는 한 계단 내려갔습니다. 6년 전 2위였던 영국이 더 큰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죠. 12%였던 풍력 발전의 비중은 21.1%에 달했습니다. 2015년 기준, 풍력 비중 0.4%로 '풍력 불모지'였던 아르헨티나는 이제 전체 발전에서 8.9%를 바람으로 만들어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태양광은 0.8%에서 4.1%로, 세계 평균과 비슷한 수준으로의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일본과 이탈리아 등 위도가 비슷한 나라와 비교해선 턱없이 부족한 모습입니다. 풍력은 더 처참합니다. 2015년 0.3%에서 2021년 0.5%. G20 중에서도 하위권일 뿐 아니라 세계 평균과 비교해서도 크게 모자랍니다. 우리보다 풍력발전 비중이 낮은 G20 회원국은 러시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뿐입니다. 여기서 다시금 COP26에서 인도와 중국이 부른 '몽니'가 떠오릅니다. 왜 이들의 막판 어깃장을 선진국들이 이해해줬을까. 풍력과 태양광의 성장세가 세계 평균을 상회할 만큼 빨랐다는 점은, 두 나라가 '이미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주요 근거 중 하나였을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그런데, '전기를 무엇으로 만들어 내는가'의 문제인 에너지전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전기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노력입니다. 발 빠르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나서고, 사용량을 줄인다면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배가할 수 있습니다. 실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트렌드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1인당 전력 사용량은 G20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많습니다. 2015년과 2021년 사이, 1인당 전력 사용량이 1MWh 이상 늘어난 나라는 회원국 중 단 두 나라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달리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뒤처졌는데, 전력수요 관리에도 실패한 셈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문제는 또 있습니다. 똑같은 1kWh의 전기를 만들 때 뿜어져 나오는 탄소배출량에서도 우리나라는 상위권에 머물렀습니다. 2015년에도, 2021년에도 모두 말이죠. G20 회원국 가운데 8번째로 높습니다. 2015년 대비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그 폭은 너무도 작았습니다.

엠버는 원전 발전의 변화 역시 들여다봤습니다. 우리나라의 원전 비중은 G20 회원국 가운데 프랑스 다음으로 가장 높습니다. 엠버는 2050 탄소중립을 위해 2030년까지로의 여정에 있어 원전의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 소개했습니다. 엠버가 소개한 내용은 앞서 연재를 통해 상세히 전해드린 바 있는 IEA(국제에너지기구)의 로드맵이었습니다. 원전의 발전 비중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10% 선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빠르게 줄어드는 화석연료의 비중을 대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재생에너지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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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원전 비중의 유지'는 결국, 늘어나는 전력 수요로 인해 '원전 발전량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안 그래도 전력 수요가 급증할 텐데, 비중을 높이려면 원자로는 더 빠르게 늘어나야 하는 것이죠. 전력 수요는 2050년 지금의 배 수준이 될 전망입니다. 지금과 동일한 발전비중을 유지하려 해도 원전의 발전량 역시 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발전비중마저 10%가 아닌 20%로 높이겠다고 한다면… 원전은 지금의 4배로 늘어나야 합니다. 그걸 어디에, 어떻게 지을지는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 하는 상황에서 말이죠. IEA도, IAEA(국제원자력기구)도 함부로 '원전 비중의 증가'를 이야기하지 못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앞서 설명해 드린 대로 기업들의 RE100 달성에 원전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재생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이죠. 이런 과정에서, 몇 년 전 일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2020년 일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 직후, 우리의 전경련 격인 게이단렌은 정부에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했습니다. 게이단렌은 자국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 이전부터 '챌린지 제로'라고 하는, 일본 자체적인 RE100 시스템을 구축해둔 상태였죠.

일본 재계에선 150여 기업이 모여 JCLP(일본 기후 리더스 파트너십)라는 단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들 기업은 당시 정부에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50%로 설정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비용에 '국민 부담'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말 것”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기업의 PPA를 가능케 하고, 송전망에 투자하는 방안 등을 코로나 19에 따른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추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단순히 재생에너지의 확대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에 걸맞은 송전망의 구축까지 이야기한 겁니다. 2020년의 일입니다. 또, 환경단체가 아닌 기업들이 요구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경련은 2030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강화하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줄곧 '기업의 어려움'과 '원전 확대'만을 이야기했죠. 과연 일본 재계가 우리 재계보다 유독 지구를 걱정해서, 도덕성을 따져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중요시해서 그런 것일까요. 현대차의 가입과 삼성전자의 가입 예정 소식이 반가운 한편,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들 기업의 '역할' 때문입니다. RE100 가입의 주체는 각 기업이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발전믹스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입니다. RE100 이행을 위해서라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정부와 전력시장에 더 많은 목소리를 내어주길 바라봅니다. 또, 정부 역시 이러한 기업들의 입장과 글로벌 트렌드에 귀 기울이길 바라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현대차 이어 삼성도? RE100, 핵심은 선언보다 이행 (상)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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