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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뉴스] 대면수업 시작됐지만 학교앞 복삿집은 돌아오지 못했다

입력 2022-04-30 18:51 수정 2022-04-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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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버스정류장 앞 가판대, 구둣방처럼 시대가 흐르며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곳들이 있죠. 코로나가 그 시기를 더 앞당기고 있는데요. 대면수업이 시작되면서 다시 학생들로 북적이게 된 대학가에서도, 각종 수업자료를 복사하던 복삿집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발품뉴스 윤정식 기자입니다.

[기자]

서울 회기동 경희대 앞, 30년 터줏대감 복삿집.

문화사라 불리는 이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문을 열고 보니 텅 비었습니다.

쉴 틈 없이 돌아가던 복사기는 온데 간데 없습니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여기는 후문인데요.

이 후문 바로 앞에 여기 40년 넘게 있었던 문화사가 두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둘 다 없어졌네요.

여기가 어떤 걸로 변한 건지 들어가서 물어보겠습니다.

지난해 말 복삿집 보람문화사를 사들인 안윤관씨는 출판사로 업종을 바꿨습니다.

수지타산이 안 맞아 어쩔 수 없었고 합니다.

[안윤관/꽃피는 청춘 출판사 대표(보람사 인수) : (복사 한 장에 얼마예요?) 50원요. (한 장에 50원요?) 원가가 300원쯤 돼요. 복사 하나 하려면…]

단가가 너무 낮아 대량 주문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유행이 이것도 막았습니다.

[안윤관/꽃피는 청춘 출판사 대표(보람사 인수) : (하루 매출이 얼마예요?) 5만원도 뜨고 1만원도 뜨고요. 울고 싶은데 누가 때려주면 좋겠는데 코로나가 때린 거예요.]

대면수업 재개로 상황이 나아졌을까.

[A문화사 관계자 : 태블릿PC 들고 다니니까 복사도 안 하고 필기도 안 하고 출력할 일도 없고 제본할 일도 없죠.]

그러면 요즘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하는지 물어봤습니다.

[배현준/대학생 : (혹시 필기류는 없이 공부하세요?) 네. 노트북이랑 태블릿만 있으면 돼요.]

[김승현/대학생 : (그러면 글자도 작아서 안 보이잖아요.) 확대 가능해요. (밑줄은 안 되잖아요.) 가능해요.]

[안정환/대학생 : (필기가 다 되는군요. 그럼 대학 생활 중에 문화사 안 가봤나요?) 얘기는 들어봤는데 가보지는 않았어요.]

복삿집 추억은 교수들이 더 많습니다.

역사학자 이익주 교수는 아직도 복사책을 갖고 있습니다.

[이익주/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 (학창 시절) 제가 우연히 운 좋게도 이 책을 구해 복사했어요. 그리고 학교 앞 복삿집에 제본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복삿집에서 다시 복사해 책을 만들어준 거죠. (이게 복사한 책 같지 않아요.) 그런데 잘 보면 한 페이지가 이렇게 생겼어요. (크게 (종이) 한 장을 복사해서 접은 거군요.)]

양면복사가 안되던 때 추억의 복사 기술입니다.

[이익주/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 {듣고 보니 불법 책으로 공부하셨네요?} 네, 불법 맞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그 당시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공부를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대학 앞 복삿집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학문이 이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말고도 복사집 추억은 다양합니다.

[하일식/연세대 사학과 교수 : 나는 필기 잘 못해요. 더 잘하는 똘똘한 친구들 신세 져서 복사해 같이 공부했죠. ((복삿집이) 교수님 졸업을 도와준 데네요?) 졸업뿐 아니라 공부 자체를 의존했죠. (복삿집 주인들이) 인심이 좋아서 단골손님들한테 외상을 해줬어요. (정이 있었네요.) 나중에 교수 되고 나서 갚은 사람도 있다고 하고요.]

수십년 동안 대학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던 복사집.

기술 발달과 전염병이 앞으로 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지 관심이 쏠립니다.

(취재지원 : 신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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