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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하)

입력 2022-04-11 09:00 수정 2022-04-11 09:0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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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6)

지난달 초, 경상북도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무려 214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 불로 무려 2만 923ha가 잿더미로 변했죠. 여의도의 72배, 세종시의 절반 가까운 면적입니다. 기후변화로 강수량과 강수일수가 줄어들면서 산불 가능성은 해마다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강원과 경북 일대를 중심으로 해마다 크고 작은 산불이 이어지면서 자칫 '산불벨트'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리고, 이 산불벨트를 따라선 우리나라의 '에너지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벨트가 늘어서 있습니다.

 
경북 울진의 산불 피해 현장. 겉잡을 수 없는 화염에 집과 시설은 타버리고, 녹아버렸다.경북 울진의 산불 피해 현장. 겉잡을 수 없는 화염에 집과 시설은 타버리고, 녹아버렸다.
이번 산불을 계기로 이 에너지벨트에 숨겨져 있던 온갖 아이러니가 드러났는데요, 지난주엔 주로 원전과 송전탑에 관한 아이러니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번 산불로 한울원전과 연계된 송전탑 4개 중 3개가 동시에 정지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들로의 전력공급에 '원전 5기분'의 커다란 공백이 생기며 블랙아웃이 벌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강력한 산불이 더욱 길어졌다면 자칫 핵연료의 냉각에도 차질이 있을 수 있었죠. 송전선로를 잃게 되면 벌어지는 일입니다. 원전을 지키려 부지 안에 소방차가 아무리 많이 대기하고 있다 한들, 송전선로를 잃으면 원전과 우리 사회의 안전에 심각한 타격을 미치는 겁니다.


#에너지벨트의_또_다른_아이러니_LNG
현장을 둘러본 결과, 또 다른 아이러니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지역의 산불 피해를 키운 또 하나의 요소이기도 하죠. 바로 '가스'입니다. 가가호호 놓인 LPG 통은 산불에 폭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산불 피해를 입은 울진 주민 김무하 씨의 집에 있던 LPG 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다 못해 녹아버린 김씨의 집에서 단단히 콘크리트 기초에 고정되어 있던 통은 본래의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10m가량 떨어진 곳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에선 다 LPG 통을 놓고 쓴다는 거 아닙니까. 산불에 이 통에 연결된 선이 타면서, 가스가 새면서 집 건물 쪽으로 쏘아댄 거예요. 우린 대피해서 몰랐는데, 이웃 할머니가 들어보니까, 터지는 소리가 막 난리도 아니더래요. 벼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래요.”

하지만 이 지역의 주요 에너지 시설들을 돌아본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코앞에 LNG 기지를 두고도 집집마다 LPG 통이 놓인 겁니다. 이 지역의 도시가스 보급률은 10%대에 그칩니다. 왜 울진과 삼척 주민들이 도시가스를 쓰지 않는지 물었습니다. 김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LNG 이런거 안 넣어줘요. 돈 많이 들어간다고. 도시가스 쓰려면 한 집에 400만~500만원 달라는데, 이걸 어떻게 넣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LPG 통을 여기다 두고, 그러고 쓰는 거예요. 이건 완전 독바가지 쓴 거예요 우리가.”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하)
삼척 LNG 기지에 근무하는 관계자는 이렇게 부연했습니다.

“여기는 수도권으로 가스를 보내기 위한 시설이예요. 배관을 통해서 수도권과 주요 수요 지역으로 이송시키는 거죠. 사실, 강원도 지역에 수요처가 별로 없어요. 여기서 200km 거리를 따져봤자 포항시 정도? 그런데 그 거리 안에 LNG 화력발전소도 없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규모 저장 시설이 들어서있는 것 자체가 의아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어쨌든 이건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었고, 정부가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을 발전시키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렇게 와서 보셨겠지만 지역 발전은 거의 없어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삼척에서도 신규 아파트를 빼고는, 기존에 있던 아파트도 LPG를 쓰고 있어요. LNG 기지가 들어왔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값싸고 편리한, 안전한 가스로 취사와 난방을 하는 게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라고 하는 건 사실 서울 좋자고 하는 얘기지, 지역을 진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LNG기지_두고_석탄발전소만_짓는_아이러니
27킬로리터급, 국내 최대 규모의 탱크가 위치한 LNG 기지가 있음에도 이 지역에 있는 화력발전소는 모두 석탄발전소입니다. 이미 6기가 가동 중인데, 현재 추가로 건설 중인 4기의 화력발전소 역시 석탄이 연료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발전소의 이름엔 대부분 '그린', '블루', '에코' 등의 표현이 들어가 있습니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최소화한 최신 시설'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역 사회의 자연환경을 '더 좋게' 만드는 데엔 아무런 일조를 하지 못함에도 말입니다.

LNG 기지에 근무하는 관계자는 이러한 아이러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가스공사와 화력발전소가 떨어진 거리가 500m도 채 안 됩니다. 그런데도 거기서 석탄을 떼고, 또 그 전기를 서울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건 아이러니죠. 효율을 생각하더라도 그래요. 석탄 대신 LNG를 쓴다고 하면, 지금 삼척블루파워가 하고 있는 부두 항만 공사가 필요 없어요. 또, LNG가 탄소 배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석탄보다 적은 양을 배출하기도 하고요.”

 
삼척 LNG 기지 뒤로 보이는 화력발전소(빨간 동그라미). LNG가 아닌 석탄을 연료로 쓰고 있다.삼척 LNG 기지 뒤로 보이는 화력발전소(빨간 동그라미). LNG가 아닌 석탄을 연료로 쓰고 있다.
삼척에서 건설 중인 석탄화력발전소의 경우, 배를 통해 들여오는 석탄을 하역하기 위한 항구를 짓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피해를 불렀습니다. 이미 익히 알려진 맹방해변의 문제입니다. 항구를 건설하면서 해변의 모래가 쓸려나가자 정부는 복구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사업자는 모래사장을 복구했지만, 직접 밟아본 모래사장의 질감은 유별났습니다. 아무리 뛰어도 발이 빠지질 않는 겁니다. 성원기 강원대학교 명예교수는 이 모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침식된 이곳을 모래로 다시 채우는 '양빈'을 해야 하는데, 이 양빈을 제대로 된 모래로 했으면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았겠죠. 항만 설치를 하느라 준설하면서 나온 흙을 여기에 채워둔 겁니다. 그냥 흙도 아닙니다. 오십천 하구 인근에서 공사를 하다보니 거기서 나오는 오니(하수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침전물), 뻘이 뒤섞인, 항만 건설하면서 퍼올린 폐기물을 여기에 깔아둔 것이죠.”

성 교수는 이러한 복구 행위가 명백한 불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폐기물로 처리됐어야 할 흙더미가 모래사장에 놓여버렸다는 겁니다.

“준설 과정에서 나온 오니 뻘은 관리가 필요합니다. 내륙에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서, 오폐수가 새어나오지 않게 관리해야 할 존재죠. 이렇게 관리해야 할 오염물질을 이렇게 모래사장에 그대로 펼쳐둔 겁니다.”

최소한, 지척의 LNG 기지에서 파이프를 통해 가스를 공급받는 발전소였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입니다.

 
석탄 하역을 위한 삼척블루파워 항만 공사 현장. 맹방해변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석탄 하역을 위한 삼척블루파워 항만 공사 현장. 맹방해변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산불_취약지에_늘어만_가는_불쏘시개
산불의 대형화, 장기화의 요인은 기후변화입니다. 발화 원인이 우리 인간의 실수라 할지라도 기후변화로 건조한 봄이 계속되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피해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해외에서만 보던 '자연 발화 대형 산불'이 한반도에서도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바로 이산화탄소, 온실가스입니다.

그럼에도 백두대간 동편, 산불 취약지엔 계속해서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입니다. 현존하는 발전원 가운데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석탄화력발전이지만 녹색성장을 외칠 때에도, 탄소중립을 선언했을 때에도, 건설 사업은 아무런 차질 없이 진행됐습니다. 위의 지도엔 현재 가동중이거나 건설중, 혹은 건설 예정인 발전소만 표시되어있습니다만, 강원도에서 발전을 멈춘 화력발전소 역시 마찬가지로 석탄화력발전소였습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산불 취약지에 불쏘시개만 놓이는 셈인 겁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하)
최소 30년은 가동되는 것이 일반적인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명입니다. 이는 곧, 사업성을 따져볼 때엔 '30년 동안 원활한 가동'을 염두에 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 '30년'은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내적으로도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했을뿐더러, '국제 공인 선진국'인 한국이 이 시점까지 석탄화력발전소를 가동한다면, 대외적인 압박도 가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압박은 국가 간의 압박이기도 하지만, 수출을 해야 하는 기업에 대한 압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국내 최대 규모 저장탱크'를 보유한 LNG 기지를 두고도 이 지역 도시가스 보급이 더딘 것 또한, 산불의 주요 불쏘시개입니다. 산골 마을 곳곳의 LPG 탱크는 문자 그대로 불쏘시개일 수밖에 없습니다.

#재생에너지에서_답을_찾다
'그래서 온실가스 걱정 없는 원전을 여기에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의 중앙집중형 발전 방식은 산불로 인한 블랙아웃 위험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취재진과 함께 울진과 삼척의 산불 피해현장과 에너지벨트를 살펴본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다음과 같이 집중형 발전 및 송전 체계의 위험성을 설명했습니다.

“산불이 났을 때, 화재와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하겠지만, 유럽이나 미국을 보더라도 이렇게 빈번해지는 산불을 우리가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미국의 경우에도, 캘리포니아 산불로 광역 정전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산불이 발생했을 때 정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제로 가야하는 것이죠.

우리의 경우, 현재 345kV나 765kV 같은 고압 송전선로들은 강원과 경북 일대에 몰려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형 산불로 인해 광역 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과거의 집중형 전원 구성에서 보다 유연하고 분산화한 전원 체계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규 원전을 추진해야 한다는, 이런 단순한 접근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분산형 전원이면서도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발전 형태는 무엇일까요. 재생에너지가 거의 유일한 답일 겁니다. 적어도 산불 취약지에서만큼은 말입니다. 실제 대형 산불에 따른 복구 프로젝트에서 재생에너지가 전면에 등장한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2019년부터 발전을 시작한 현종산 풍력발전단지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하)
2007년, 금강송이 가득했던 현종산엔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34시간 동안 이어진 산불에 200ha가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당시 울진군이 택한 복구 방법은 풍력발전소와 함께 다시 자연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산불 피해지를 중심으로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도입하는 것이죠. 2012년 울진군과 SK D&D는 MOU를 맺고,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2019년, 바람과 함께 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발전시설이 차지한 면적은 불과 5ha. 이 면적엔 총 15기의 풍력발전기가 들어섰습니다. 연간 약 9.3만kWh, 3만여 가구가 이용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하는 중입니다.

산불이 발생한 지 약 1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현종산은 본래의 모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성인 남성의 무릎 혹은 가슴 높이에 불과한 어린나무들이 열심히 자라고 있습니다. 산불로 사라진 나무들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종산 풍력발전단지 전경. 산불로 사라진 나무를 채우는 일은 15년째 계속되고 있다.현종산 풍력발전단지 전경. 산불로 사라진 나무를 채우는 일은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산 능선을 따라 발전기 자체가 노출된 만큼 산불의 피해로부터 자유롭진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집중형 발전소들에 비하면, 피해의 정도는 확연히 다릅니다. 블랙아웃을 야기할 만큼 발전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풍력터빈들이 서로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는 만큼, 피해가 분산되는 것이죠.


또한, 각 발전기 사이에 놓인 폭 4m의 도로는 비상시 소방도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지난 2019년, 외부인의 담뱃불로 인해 3호기 인근에서 산불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로 덕분에 소방차가 신속히 접근했고, 추가 피해는 없었습니다. 여전히 산림 복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 도로는 녹화사업을 돕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겹겹이 쌓인 철조망으로 시민들의 접근을 막지도 않으면서, 기후변화를 심화하는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생하며, 당분간은 더욱 악화할 산불에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해결책은 그리 '먼 나라'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하)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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