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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입력 2022-04-04 09:02 수정 2022-04-04 09:04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5)

'위험 심화' 산불벨트따라 늘어선 에너지벨트
"원전 보호하라" 소방력 집중에 도리어 위험에 빠진 원전
코앞의 LNG 기지 두고도 도시가스 못 쓰는 삼척 울진
'국내 최대 규모 탱크' LNG 기지에도 석탄발전소만 늘어선 에너지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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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5)

'위험 심화' 산불벨트따라 늘어선 에너지벨트
"원전 보호하라" 소방력 집중에 도리어 위험에 빠진 원전
코앞의 LNG 기지 두고도 도시가스 못 쓰는 삼척 울진
'국내 최대 규모 탱크' LNG 기지에도 석탄발전소만 늘어선 에너지벨트

지난달 초, 경상북도 울진과 강원도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무려 214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 불로 무려 2만 923ha가 잿더미로 변했죠. 여의도의 72배, 세종시의 절반 가까운 면적입니다. 기후변화로 강수량과 강수일수가 줄어들면서 산불 가능성은 해마다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강원과 경북 일대를 중심으로 해마다 크고 작은 산불이 이어지면서 자칫 '산불벨트'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보며 달릴 수 있는 7번 국도는 앞으로 어떻게 기억될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역대 주요 대규모 산불 가운데 대다수는 7번 국도를 따라 발생했습니다. 고성과 삼척은 특히 여러 차례에 걸쳐 '역대급 산불' 피해를 입었죠. 7번 국도를 따라 자리한 이들 지역이 산불에 취약하다는 점은 이러한 타임라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2020년, 전국 산불 피해면적의 거의 대부분이 이들 지역에 집중됐습니다. 2019년엔 전국 피해면적의 87%가 강원도 한 지역에 몰려있을 정도였죠.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문제는 이러한 산불이 갈수록 늘고 있고, 사는 곳이 '산불벨트'와 먼 곳이라고 해서 안심하긴 어렵다는 겁니다. 산림청이 집계한 최근 10년새 산불 발생 건수와 피해 면적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건수의 경우, 연도마다 증감이 있습니다만 장기적 추세로는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산불 위험의 심화를 이보다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는 바로 피해 면적입니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2018년 이후로 전에 본 적 없는 수준으로 피해 면적이 넓어졌습니다.


2020년 기준, 산불 발생 건수는 최근 10년 평균(474건)보다 31% 늘었고, 피해 면적은 최근 10년 평균(1120ha)보다 161% 증가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내용도 올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020년은 건조일수가 증가했고, 강수량과 강수일수가 대폭 줄어 산불위험이 지속됐다”는 겁니다. 특히, '봄철 산불'이 매서웠습니다. 전체 건수의 68%가 봄철에 발생했고, 한 해 피해면적의 95%가 봄철 산불로 불탔습니다.

#수일_전부터_이어졌던_경고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올해 울진·삼척 산불이 발생하기에 앞서 이미 여러 차례 '산불 경고'가 이어졌습니다. 3월이 찾아오기 전, 1~2월 동안 너무도 건조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강원 영동과 경북의 최근 10년간 1, 2월 강수량을 살펴봤습니다. 올해는 강수량도, 강수일수도 모두 10년새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산불 발생 이전인 지난 3월 2일부터, 기상청은 대형 산불의 위험성을 매우 강조해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날인 3월 4일엔 건조특보와강풍특보가 동시에 내려지면서 경고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오늘(4일)과 내일(5일) 경북북부내륙과경북동해안을 중심으로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 것으로 전망된다”, “건조특보가발효중인강원영동과 경상권 등을 중심으로 대기가 매우 건조한 상태다”, “대기가 건조한 가운데 바람도 매우 강하게 불어 작은 불씨가 큰불로 이어질 수 있으니 산불 등 화재 예방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란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이러한 경고는 비단 '오늘과 내일의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겨울철 전국의 강수량은 13.3mm에 그쳤습니다. 평년의 7분의 1 수준으로 역대 최저였습니다. 강수일수 역시 11.7일로 가장 적었습니다. 반면, 햇볕이 잘 들었던 시간은 605.5시간으로 역대 가장 길었죠. 인간에 의한 실화나 자연발화 등 '트리거'만 있으면 큰 불이 날 상황이었던 겁니다.


#7번국도의_또_다른_이름_에너지벨트
공교롭게도 대형 산불은 아름다운 해안도로인 7번 국도를 따라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7번 국도를 따라 늘어선 것은 '산불의 위험'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에너지의 '대동맥' 역시 7번 국도를 따라 흐르죠. 가히 '에너지벨트'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7번 국도의 위쪽 절반엔 석탄발전소가, 아래쪽 절반엔 원전이 늘어서있습니다. 지금도 이미 석탄화력발전소 6기, 원자력발전소 11기가 가동중입니다만, 강원엔 4기의 석탄발전소가, 경북엔 2기의 원전이 추가로 건설중입니다. 대규모로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들은 초고압 송전탑과 연결돼 도시로 전기를 보냅니다.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40%는 바로 이들 지역으로부터 오는 전력입니다. 최근엔 백두대간을 따라 풍력발전단지 등 여러 재생에너지 발전소도 들어서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에, 삼척엔 대규모 LNG 기지도 있습니다. 1986년 평택, 1996년 인천, 2002년 통영에 이어 내륙에서 지어진 마지막 LNG 생산기지입니다. 최신 기지인 만큼 국내 최대 규모인 27만 킬로리터급 저장탱크를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기지이기도 합니다. 이 역시, 수도권과 부산 등 대도시로의 안정적인 가스 공급을 위한 시설입니다.


#첫번째_아이러니_지키려다_위험에_빠진_원전
산불의 흔적이 여전한, 아직 복구조차 엄두내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은 울진과 삼척을 다녀왔습니다. 산불은 삼척 LNG 기지 턱밑까지 퍼졌습니다. LNG 기지로부터 불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울진 한울원전에선 담장 안쪽까지도 불길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시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소방력이 이 두 곳에 집중됐습니다. 불길이 경계선 안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소방차와 인력이 대기하고 있었죠.

문제는, 주요 에너지 시설을 지키려던 것이 정작 '위험'을 초래했다는 겁니다. 일례로, 한울원전 인근 마을들은 이번 산불로 초토화됐습니다. 워낙 산불의 위력이 컸던 탓도 있지만, 이 지역의 소방력이 '시설'에 집중되면서 정작 마을은 보호받지 못한 겁니다.

 
경북 울진의 산불 피해 현장. 겉잡을 수 없는 화염에 집과 시설들은 타버리고, 녹아버렸다.경북 울진의 산불 피해 현장. 겉잡을 수 없는 화염에 집과 시설들은 타버리고, 녹아버렸다.
울진군 산불 피해주민인 최무하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들내미가 소방대에 전화하고, 소방서에 전화하고 난리를 쳐도 공무원 하나 안 오고, 소방차 한 대 안 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소방차가 전부 다, 몽땅 LNG 기지하고 원전으로 다 가버린 거예요. 가보니까, 거긴 차가 빽빽해서 차 돌릴 데도 없어요. 너무 많이 몰려가서. 그러지 말고 차라리 이런 데에 와서, 불이 딱 올 때 껐으면, 우리 집도 불 날 일이 없어요. 우리 집은 원전이랑 LNG 기지 때문에 박살이 난겁니다.”

시설에 몰려있던 소방력은 최씨의 집만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을에 산불이 옮겨붙었다는 것은 곧, 원전과 연결된 대규모 송전선로도 불길에 휩싸였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곧, 원전의 안전과도 직결됩니다. 불길이 원전에 다다를 때까지 대규모 소방력이 부지 내에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인근 마을 등 주요 송전탑이 위치한 지역까지 사전에 방화선을 구축해야 했던 겁니다.

함께 현장을 둘러본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원전에 있어 송전선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원전 안전에 있어 외부 전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안전의 관건은 가동중인 원자로의 핵연료와 사용후 핵연료를 냉각하는 일입니다. 이 냉각을 위해선 전원이 필요한데요, 가장 기본적으로 쓰는 전원이 바로 송전선로를 통한 외부 전원입니다. 이 외부 전원이 실패했을 때엔 비상 디젤 발전기를 임시로 가동해서 전원을 공급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이번 산불로 인한 송전선로의 피해, 그리고 그로 인한 원전의 영향에 대해선 산불 발생 초기엔 그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안전의 컨트롤타워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한울 6호기의 비상 디젤 발전기가 자동으로 작동했다”면서도 “원전 안전엔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송전선로와 관련해서도 “한울 원전과 연계된 8개 송전선로 가운데 2개가 차단됐다”면서 마찬가지로 “원전 안전엔 문제가 없다”고 했죠.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살펴본 바, 선로가 2개만 차단됐을 리 만무했습니다. 이에 한국전력공사에 자세한 송전선로 피해 현황을 물었습니다. 한전 측은 “지역 내 총 3km 길이의 송전선로가 산불로 인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3km'에 해당하는 구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후 국회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국회 양이원영 의원실이 전력거래소로부터 제출받은 '송전선로 정지 세부내역'은 실제 현장에서 본 모습과 일치했습니다. 쉴 새 없이 온갖 송전선로에서 전기가 끊겼다 붙었다를 반복한 겁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산불이 한창이던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각 송전선로별 피해 상황을 시간 순서로 정리해봤습니다. 다음의 표는 한울원전과 연계된 송전탑 4개의 8개 선로가 각각 어느 시점에 전력공급이 정지되고 어느 시점에 다시 투입됐는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짧게는 1분 만에 끊겼던 전력이 다시 흘러갔지만, 길게는 수일 동안 전력 공금이 끊겼습니다. 8개 선로의 정지 횟수만도 33번에 달합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동시다발적인 정지' 여부입니다. 쉴 새 없이 전력 공급이 멈췄다, 재개했다를 반복하는 사이, 4개의 송전탑 가운데 3개가 같은 시간에 정지했습니다. 절체절명에 순간, 나머지 하나 남은 송전탑도 정지됐지만, 가까스로 다른 송전탑에 전력이 투입되면서 대정전, 이른바 '블랙아웃'은 면했습니다. 만일, 4개의 송전탑이 모두 멈췄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시 가동 중이었던 원전 5기분의 전력공급이 우리나라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블랙아웃입니다.

블랙아웃과 더불어, 핵연료 냉각 또한 중대 위협요소 중 하나입니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산불의 세기가 강해지고, 지속기간 역시 늘어나면, 이미 장기간 산불이 일상처럼 되어버린 캘리포니아처럼 '일 단위'가 아닌 '개월 단위'로 산불이 이어진다면, 지금의 '비상 디젤 발전기'만으론 안심하기 어려운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는 건물도 불안함을 키웁니다. 석 위원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우리가 과거엔 이런 기후변화가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재로 인한 외부 전원의 차단이라는 것을 거의 상상하지 못 했습니다. 산불로 원전 안전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상상하지 못 한 거죠. 이전까진 송전선로로 인해 이런 위험에 노출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엔 전쟁 과정에서 자포리자 원전과 연계된 송전선로가 차단됐습니다. 전쟁이 됐든, 기후재난이 됐든, 이전까진 '격납건물의 안전성'만 생각했죠.

그나마 우크라이나의 원전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가 원자로 격납건물 안에 들어가있는 설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다 일반 건물에 있습니다. 원자로는 두터운 콘크리트의 격납건물에 있어 방어가 되는데,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는 말 그대로 수영장처럼, 일반 건물에 들어가 있습니다.”

냉각에 실패했을 경우, 격납건물 내에 있는 원자로와 달리 사용후핵연료의 경우 말 그대로 '중대사고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는 지적입니다. 석 위원은 또 “불과 몇 년 전, 원전용 비상 디젤 발전기를 납품했던 공급 업체가 납품 비리로 구속된 사례도 있었다”며 “이번 산불을 계기로 지금의 비상 디젤 발전기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재차 점검해봐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산불이 발생한 울진과 삼척엔 한울원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에너지 벨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송전선로의 이름만 보더라도, 다른 발전소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 전체 송전선로의 상황으로 스케일을 키워보면, 당시 상황은 더 아찔했습니다. 산불이 이어진 200여 시간 사이, 이 지역 주요 송전선로에서 발생한 정지 횟수만도 55회가 넘습니다.

동해안, 그것도 이 중 일부인 울진과 삼척에 있는 송전탑에 문제가 생긴다고 왜 다른 지역까지 대정전이 일어나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력수급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부르게 됩니다. 그저 '한 동네의 일'이 아닌 것이죠. 전력의 공급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수요에 맞춰 늘어났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합니다. 한 번 발전소를 떠나 송전선로를 타고 보내진 전기는 수요를 충족시키고 남았다고 해서 다른 데에 저장되거나 다시 발전소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앞선 연재 〈[박상욱의 기후 1.5] 전력수급, 진짜 위기? 원전이 해결책? 동문서답에 허송세월하는 탄소중립〉에서 전력 수급을 '수도관'에 빗대어 설명해 드린 바 있습니다. 수도관을 따라 10개의 수도꼭지가 달려있다고 했을 때, 수도관에 투입되는 물의 양을 시시각각 조절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겁니다. 만약, 갑자기 10개의 수도꼭지가 모두 최대로 열릴 때, 이에 맞춰 수도관에 충분한 물을 넣지 못한다면 모든 수도꼭지에 물이 끊깁니다. 대정전입니다. 반대로, 모두가 수도꼭지를 잠갔는데 계속해서 엄청난 물을 부어대면 어떻게 될까요. 수도관이 버틸 수 있는 압력을 넘어서면 관이 터지겠죠. 이 역시 대정전, 블랙아웃입니다.


산불벨트로 변해버린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LNG 기지를 두고도 주민들은 LPG를 쓸 수밖에 없고, 인근엔 석탄화력발전소만 늘어서게 된 현실 등 이번 산불로 드러난 아이러니에 대해선 다음 연재를 통해 이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산불에 휘감긴 동해안 에너지벨트의 '아이러니' (상)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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