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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에 '진심'인 대한민국

입력 2022-02-28 09:00 수정 2022-05-11 16:07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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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120)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국내 금융기관 112곳이 탄소중립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기준, 이들의 운용 자산 규모만도 5563조 5천억원에 달했죠. 2021년 3월 9일의 일입니다. 그로부터 두 달 반이 지난 2021년 5월 28일, '글로벌 석탄 투자 큰손' 국민연금 또한 탈석탄 선언에 나섰죠. 글로벌 주요 '기후 악당'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외 석탄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던 한국전력공사는 이보다 훨씬 앞선 2020년 6월 “해외 석탄화력 사업의 신규 추진을 지양한다”고 했고요.

이같은 움직임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요 근거였습니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 그룹뿐 아니라 '글로벌 온실가스 주범'으로 꼽히는 중국과 인도까지 가히 급진적으로 보일 만큼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제 몫을 다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말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소집한 기후 정상회의에서도, 이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P4G 정상회의에서도, 영국서 열린 COP26에서도 '한국의 성과'로 빠지지 않고 소개된 내용이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22일, 영국의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인 알록샤르마 COP26 의장과 한정애 환경부 장관의 화상회의에서도 이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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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26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샤르마 의장은 우리나라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한국이 적시에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의 동참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해냈고,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이 담긴 2030 NDC상향안을 발표한 것에 감사하다”고 이야기한 겁니다. 이러한 샤르마 의장의 평가에 한 장관은 “우리나라가 지난해 4월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 전면 중단 선언'을 통해 중국과 일본의 동참을 이끌어냈다”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국제사회에서 기후 리더십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이러한 감사와 다짐의 훈훈함이 무색하게 숫자는 변치 않았습니다. 국내외 석탄을 향한 우리나라의 돈은 지난해보다 줄어들기는커녕 도리어 늘어났죠.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에 '진심'인 대한민국
독일 우르게발트는 해마다 석탄 관련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선정해 GCEL(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업들의 리스트만 공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기업에 '누구의 돈'이 '얼마나' 투입되는지도 발표하죠. 이 GCEL에 포함된 기업에 투입된 한국발 자금은 2021년 386억 2100만달러, 우리 돈으로 하면 약 49조 2600억원에 달했습니다. 돈이 들어가는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됐습니다. 채권 등을 통해 투자에 나서거나 대출 등을 통한 금융지원을 하는 경우로 말이죠. 두 가지 방법 모두, 전년 대비 액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투자기관 가운데엔 국민연금이 여전히 '독보적 1위'였습니다. 지난해보다 14억 7100만 달러 늘었죠. 우리 돈 약 15조 5천억원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이는 전년보다 약 1조 7천억원 늘어난 셈입니다. 전 세계 모든 연기금 가운데 GCEL 기업 투자 규모가 세 번째로 많았죠. 약 9조 6천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보유하고, 5조 9천억원 규모의 주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분명 탈석탄 선언을 했음에도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에 '진심'인 대한민국
기후솔루션은 “국민연금이 명확한 탈석탄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선언은 했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탈석탄 투자의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국민연금의 투자 대부분은 채권과 주식투자로 이뤄져 있다”며 “현재 신규 석탄발전사업에 대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투자를 제한한다는 방침에 국한된 탈석탄 선언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말과 실제가 다른 모습은 또 다른 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납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석탄금융백서를 발간했습니다. 백서엔 '석탄에 발목 잡힌 돈'이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2021년 6월 기준, 국내 금융기관의 운용자산 가운데 석탄 관련 리스크에 노출된 자산 규모(석탄 자산 익스포져)는 86조원에 달했습니다. 공적 금융기관의 돈이 약 40조원, 민간 금융의 자금은 약 46조원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20년 6월 당시 67조 9천억원보다 약 18조원 늘어났습니다.

익스포져 규모 Top 5에서 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모두 공적 금융기관이었습니다. 먼저, 그 규모가 가장 큰 기관은 산업은행입니다. 18조원의 자금이 '석탄 리스크'에 노출됐는데, 이는 산업은행의 총자산 가운데 7%에 달합니다. 또, 국민연금의 9조 7천억원이, 수출입은행의 5조 5천억원이 석탄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세 곳의 익스포져 규모만 합쳐도 전체의 38%가 넘습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에 '진심'인 대한민국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사회 및 경제 시스템의 변화는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는 자산가치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은행이 실시한 '기후변화 이행 리스크를 고려한 은행부문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감축, 탄소중립 등 글로벌 차원의 행동으로 인해 2050년 우리나라의 GDP 손실 규모가 최대 7.4%(연평균 0.25%)에 이른다는 내용입니다. GDP 손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탄소 집약 산업의 주가 하락, 부도율 상승 등으로 국내은행의 BIS 비율(자기자본비율)도 2050년 최대 5.8%(연평균 0.19%)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죠.

이처럼 잠재적 위험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투입한 금융기관도 위험하지만, 당장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바로 그 위험에 빠진 '직접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2000년 기준 900여곳이었던 이 명단은 2021년 기준 1032곳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은 총 7곳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핵심이자 향후 에너지전환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한전은 리스트 제일 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철강 수출의 핵심이자 2차 전지, 수소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포스코, 풍력 터빈 및 수소 터빈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대기업인 두산중공업이 뒤를 이었죠. 이러한 수식어만 보면 '석탄 퇴출'이라는 리스트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기업들이지만 여전히 '석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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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전의 경우 최근까지도 석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앞선 연재를 통해 한전의 호주 바이롱 석탄 광산 개발에 대해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8천억원 넘는 돈을 투입하고도 석탄 한 톨 캐내지 못한 사업 말입니다. 처음엔 시민단체가 반대했습니다. 이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지역사회가, 호주 정부조차 반대했죠. 호주의 독립계획위원회가 탄소배출과 수질 문제 등을 이유로 이 사업을 최종 불허한 것이 2019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해 연말, 한전은 결국 행정소송에 나섰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석탄 탄광을 개발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럼에도 한전은 석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법원까지 재판을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은 2021년 10월이었습니다. 한전 스스로 해외 석탄 사업을 더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대한민국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중립을 법으로 명시하고, COP26에서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해외 석탄 투자 중단'을 공표했던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지난 10일, 호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금전적 손실과 더불어 국제적 평판에도 큰 금이 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호주 환경단체 '락 더 게이트'의 닉 클라이드 대변인은 “한전이 법정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더 강화한 기후 정책을 발표해왔다”며 한전의 이러한 움직임을 비판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기후 리더십'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일까요. 그것도 '해외 석탄 투자 중단'을 내세워서 말입니다. 석탄 관련 자산을 '좌초 자산'이라고 부르는 현실에 대해 이 연재를 통해 말씀드렸던 것이 지난 2020년 7월 6일의 일이었습니다. (참고: [박상욱의 기후 1.5] “적자 본다”는 데도 손 못 떼는 석탄, 왜?) 그리고 당시 연재는 다음과 같은 기대로 끝났죠.

우리나라가 전 세계 석탄화력계의 '큰손'이라는 점은 참으로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 덕(?)에 한국은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이라는 별명을 여전히 버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대통령이 직접 '그린 뉴딜'을 언급하면서 국제사회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런 모순적인 행보가 우리나라의 '국격'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바로잡히길 기대합니다.

2022년 2월, 그 자산이 실제 '좌초'해 수천억원대 금전적 손실로 다가오는 사례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십조원의 돈은 여전히 석탄에 '물려' 있습니다. 더 이상 '국격'을 운운하는 것조차 사치일지 모르겠습니다. 기후 리더십도, 국격도, 경제적 실익도 모두 리스크에 노출된 상황이니까요. 부디 2022년 세계 석탄 퇴출 기업 명단에선, 2022년 한국석탄금융백서에선 약간의 '면목'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박상욱의 기후 1.5] 석탄에 '진심'인 대한민국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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