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를 이야기한지 50주가 됐습니다. 이렇게 기후변화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들을 이야기하는 사이, 우리나라도 탄소중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지난 수요일(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에서 말입니다.
"'그린뉴딜'에는 8조 원을 투자합니다. 정부는 그동안 에너지전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습니다.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여,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
노후 건축물과 공공임대주택을 친환경 시설로 교체하고 도시 공간·생활 기반시설의 녹색전환에 2조4천억 원을 투자합니다.
전기·수소차 보급도 11만6천 대로 확대하며, 충전소 건설과 급속 충전기 증설 등에 4조3천억 원을 투자하겠습니다.
스마트 산단을 저탄소·그린 산단으로 조성하고, 지역 재생에너지 사업에 금융지원을 확대하겠습니다."이날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 말입니다.
#깜짝_놀랄_선언대통령의 이러한 선언에 환경단체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이 환영은, 예상했던 결과에 대한 환영이라기보다, 깜짝 놀라는 감정이 함께 한 환영에 가까웠죠. 코로나 19와 경기부양에 관한 내용이야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내용이었지만 단순히 '그린뉴딜' 언급을 넘어 '탄소중립' 선언까지 나올 거라곤 내다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을 내놨습니다. 이현숙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국장은 "늦은 감이 있다"면서도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에 한국의 적극 동참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산업계가 진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국 탈석탄 시민사회단체의 모임인 '석탄을넘어서'도 한국의 탄소중립 선언은 의미있는 일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을 펼칠 것을 기대한다"고 반겼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분명한 목표로 밝혔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며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에너지 전환의 원칙도 확인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기후솔루션의 김주진 대표도 "우리나라가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설정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우선_반갑긴_하지만그간 우리는 '공허한 선언'을 너무도 많이 봐왔습니다. 여러 계획들의 발표, 의미있는 선언을 접하고서 "이게 근데 되겠어?"하는 회의의 목소리가 항상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미 2014년, 우리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2020 로드맵'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운 바 있습니다. 2020년, 기존 배출전망치보다 30% 감축한 5억 4300만톤의 온실가스만 뿜어내겠다는 계획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게 됐나요. 지금 우리의 2020년은 어떤 상태인가요.
당초 계획대로라면 이미 2014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그래프는 하향 곡선을 그렸어야 하는데…해마다 '역대 최대'를 경신하고 있죠. 당장 확정치가 발표된 2018년만 보더라도, 7억 2760만톤이나 됩니다. 목표치보다 1억 2320만톤 많은 양입니다. 2019년 배출 잠정치는 2018년의 배출량보다 소폭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목표 미달'이고요.
기존의 계획도 이렇게 지키지 못한 상황에서 한 발, 아니 몇 발은 더 나간 '탄소중립'이라니… 반가운 한편 우려가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말_뿐인_선언_될까당장, 대통령의 연설 속에서도 넘어야 할 산이 한참인 내용은 한가득이었습니다. 발언 별로 살펴볼까요?
(자료; 청와대)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여,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현재 정부의 에너지 계획에 따르면, 석탄발전은 당장 탄소중립 시점으로 지정한 2050년에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2050년에 '넷 제로' 상태가 되려면, 이미 그 시점보다 훨씬 앞서 탈석탄이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 시점을 2030년으로 제시하고 있고요. 하지만 현재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마련 중인 권고안조차 탈석탄 완성 시점을 2050년으로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기·수소차 보급도 11만6천 대로 확대하며, 충전소 건설과 급속 충전기 증설 등에 4조3천억 원을 투자하겠습니다."-시정연설 이틀 후, 문 대통령은 '미래차 현장'으로써 현대차 울산공장을 찾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보다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2025년까지 전기차와 수소차를 국내에만 총 133만대(누적) 보급하고, 53만대를 수출하겠다는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미 전기차는 15만대 넘게 보급됐죠. 최근 국내 유일 수소차 넥쏘의 1만번째 차량이 인도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목표는 앞으로 해마다 연평균 23만대 가량의 차량을 보급한다는 뜻입니다.
얼핏 많아 보이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좀 더 뜯어보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팔린 국산차의 판매량은 154만대를 넘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침체 등 여러 이유로 이보다 낮은 150만대를 한 해 도안 판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23만대라는 수치는 전체 판매량의 15%에 불과합니다.
(자료: 환경부) 환경부는 이미 2030년까지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에 대한 탄소규제를 정한 바 있습니다. 이 규제를 충족시키려면,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평균 이산화탄소배출량 140g/km)와 하이브리드 자동차(70g/km), 전기차 또는 수소차(0g/km)를 공히 3분의 1씩 판매해야 하고요. 대통령이 말한 판매량 목표보다 전기차와 수소차의 보급대수가 더 많아야 하는 거죠.
게다가 아일랜드는 2030년, 영국과 중국,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전면 금지할 계획입니다. '탄소중립'을 천명한 나라치고 탈석탄 시점과 탈내연기관 시점을 못 박지 않은 곳을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언급한 전기차 및 수소차 보급 목표가 지나치게 '겸손'한 목표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앞으로가_정말_관건상황이 이렇다보니 환경단체들은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에 환영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녹색연합은 "당장의 행동 없이 30년 후의 목표만 이야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말 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며 "정부가 '2030년 온실가스 50%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번 연설 전반에 대해 "여전히 성장주의에 머물러 있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며 "기후위기에 책임있게 대응한다면서 끝없는 성장을 약속하는 것은, 동시에 이룰 수 없는 두 가지를 주장하는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지금의 성장중심의 사회 및 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전환 없이는 현재의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린피스는 "이번 발표는 정치권과 산업계에 많은 과제를 남긴다"며 "탄소중립을 위해 발전부문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환과 수송, 건물 등 다양한 분야의 로드맵이 설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과 충실한 이행이 없이는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석탄을넘어서' 역시 "이번 선언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후솔루션의 김주진 대표 역시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대표는 "현재 매우 느슨하게 설정되어 있는 기존의 2030 목표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 필수"라며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즉시 중단하고, 기존 석탄발전소를 급속하게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도 조언했습니다. 해외 석탄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즉각 중단하는 것 역시 필수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조만간 우리나라는 유엔에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출해야 합니다.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이 그저 '말 뿐인 선언'에 그칠지,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죠. 제출되는 목표에는 기존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수준만이 담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 우려가 부디 우려에 그치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