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바나나 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였습니다. 지금 당장 집에서 만들 수 있는 모양 같지만 약 1억8천만 원에 팔린 설치미술가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꼽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기부품으로 받았는데, 정작 바나나는 없습니다.
어떤 얘기인지, 최하은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은색 테이프로 벽에 덜렁 붙인 바나나 하나.
'코미디언'이란 이름이 붙어 세계적 미술품 장터에 나온 이 바나나는 무려 15만 달러, 우리 돈 약 1억8천만 원에 팔렸습니다.
'악동', '풍자의 대가'란 별명을 가진 예술가 카텔란의 작품입니다.
한 행위예술가가 "배가 고프다"며 전시된 바나나를 먹어치우자 갤러리 측은 바나나는 발상일 뿐이라며 새 과일로 갈아 끼우기도 했습니다.
이 일로 오히려 유명해졌고 거리 위 노동자부터 글로벌 기업들까지, 저마다의 패러디를 쏟아냈습니다.
이 '가장 비싼 바나나'가 현대 미술의 중심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장됩니다.
한 소장자가 기부한 겁니다.
하지만 수장고에 놓이는 건 실제 바나나가 아닌 '진품 보증서'와 '설치 안내서' 종이 몇 장입니다.
"7일에서 10일 간격으로 바나나를 바꾸고 바닥에서 175cm 떨어진 곳에 붙인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이란 겁니다.
비단 바나나만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시되는 동안 여러 번 교체된 이 라자냐도, 음식이 아닌 다시 만드는 방법이 적힌 설명서로 팔렸습니다.
터져버린 풍선에 담긴 작가의 숨결, 악취를 풍기는 생선처럼 재료가 썩어 변하고, 때론 사라지는 그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예술의 경계, 또 가치란 무엇인지 100여 년 전, 뒤집힌 소변기가 던진 질문은 새로운 도전들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상그래픽 : 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