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JTBC는 오늘(19일)부터 5·18 민주화 운동의 사진 속 인물들을 차례로 돌아보는 시간도 준비했습니다.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민군이 있는 도청을 진압하기 직전까지 이 사실을 광주 시민들에게 알린 사람이 있습니다. 1980년 5월 27일 도청에서 새벽 방송을 한 박영순 씨입니다. 박씨의 삶은 그날 이후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여성국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그해 5월 박영순 씨는 전남도청 근처 광주여고에서 가야금을 가르쳤습니다.
수업을 끝내고 나와 총성을 듣습니다.
[박영순/5·18 당시 전남도청 마지막 방송자 : 차량이 한 대가 왔어요. 빨리 방송 좀 해야 되는데…그 얘기 듣고 바로 제가 올라타버린 거예요.]
그렇게 평범한 삶은 송두리째 바뀝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27일 새벽엔 도청에서 마지막 방송을 하다 군에 체포됐습니다.
[박영순/5·18 당시 전남도청 마지막 방송자 : 아, 차라리 죽여 줬으면…그런 생각이었죠.]
1년으로 감형돼 출소했지만, 더는 꿈 꿀 수 없었습니다.
[박영순/5·18 당시 전남도청 마지막 방송자 : 학교 다닐 적에는 꿈도 많고…나와서 할 수 있는 게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결혼한 뒤 도망치듯 광주를 떠났고, 박영순 아닌 박수현이란 이름으로 살아냈습니다.
[박영순/5·18 당시 전남도청 마지막 방송자 : (5·18을) 좋은 뜻으로 얘기를 안 했잖아요. 제 이름 대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2015년, 재심을 받습니다.
[박영순/5·18 당시 전남도청 마지막 방송자 :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제 40년 인생이 보상받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잖아요.]
40년이 지난 오늘 박씨는 말합니다.
[박영순/5·18 당시 전남도청 마지막 방송자 : 제대로 역사적인 사실을 좀 아시고 평가를 해주셨으면…저희들은 바라는 것은 그런 것밖에 없습니다.]
(영상그래픽 : 박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