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금부터는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는 공간들로 가 보겠습니다. JTBC의 전신이자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사라진 TBC가 당시 광주를 잠입해 촬영했던 영상도 함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JTBC 스튜디오 바로 뒤에 위치한 옛 전남도청입니다. 광주 시민들이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맞섰던 곳입니다. 지금 신아람 기자가 나가 있습니다.
신 기자, 지금 있는 곳이 도청 안입니까?
[신아람 기자]
네, 본관 1층 안입니다.
코로나 상황이라서 발열 체크 등을 하고 이렇게 띠를 두르면 전시실로 꾸며진 도청 내부를 둘러볼 수가 있습니다.
집단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 계엄군이 오후 5시쯤에 빠지고 시민군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곳 1층엔 당시 도청 서무과가 있었는데, 시민군이 상황실로 썼습니다.
여기서 방송을 하면 바깥 스피커를 통해 상황들이 도청 안팎으로 전파됐습니다.
시민군은 이곳에서 27일 새벽까지 최후의 항전을 이어갔습니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있었던 시민군 임성택 씨가 이곳을 찾았는데요. 임성택 씨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임성택/5·18 당시 광주시민 : (계엄군이) 진격해 오면서 복도로 총을 난사해 버린 거예요. 제가 2층에서 계속 총격전을 하다 주위에 복도에 계신 분들 시신들을 많이 봤어요. 제 옆에 계신 분들도 돌아보면 쓰러져 계시고.]
[앵커]
지금 있는 도청 안에서도 상무관이 바로 보이지 않나요?
[신아람 기자]
저기 대각선으로 보이는 곳이 상무관입니다.
도청 일대에서 숨진 이들이 이곳 도청 본관과 회의실 통로 사이로 옮겨졌고 이후에 신원이 확인되면 상무관에 안치됐습니다.
제가 만났던 유족분에 따르면 상무관에 옮겨지지 못하고 다른 곳에 임시 매장됐다가 망월동 묘지에 묻힌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상무관은 60구 넘는 시신이 안치됐던 걸로 집계되고 있고요.
당시 관이 부족해서 무명천으로 시신들을 덮거나 부패를 막으려고 방부제를 뿌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JTBC는 당시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 관리하며 시민군의 일원으로 도청을 지킨 당시 10대 청소년이었던 시민 2분도 만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지은 기자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지은 기자]
새벽 5시 30분, 평소처럼 집을 나서는 오기철 씨.
[오기철/광주 시민 : 출근 버스를 몰기 때문에 아침에 항상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갑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지만, 늘 40년 전 악몽을 안고 삽니다.
1980년 17살 때의 일입니다.
[오기철/광주 시민 : 많은 사람들이 죽어. 죽어서 병원에 있고 인력이 부족해. 시체 쪽 보니까 사람 인력이 부족해.]
시신 수습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오기철/광주 시민 : (시신 보니까) 얼굴이 막, 머리가 막 (날아가고 없어.) 전남도청에서 입관을 했어요. (시신) 보관을 하라고 하면 상무관으로 이관하고…]
상무관은 계엄군 발포 사흘 만에 주검들로 꽉 찼습니다.
죽어 나가는 시민들 속에서, 어린 오씨는 그때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기철/광주 시민 : 죽기 전에 누가 우리(가 죽어 시신 수습할 때) 씻겨주지는 않을 테니 마지막으로 목욕하고, 시체 입히려고 쌍방울표 하얀 속옷 다 입었지. 참 미쳤지.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 ]
18살 여고생이었던 현숙 씨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23일 오전, 시신을 닦으러 버스를 타고 도청에 가던 길.
버스 안에서 관이 부족하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박현옥/고 박현숙 씨 언니 : '(같이 있던 시민군이) 무전기로 관이 부족하다, 빨리 구해와라'라는 말을 들은 거야. 그래서 미니버스를 타고 가다가 무참히 희생이 된 거예요.]
현숙 씨는 바로 계엄군이 무차별 사격을 해 17명을 사살한 '주남마을 버스사건'의 한 명이었던 겁니다.
당시 유일한 생존자 홍금숙 씨는 현숙 씨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홍금숙/'주남마을 버스사건' 생존자 : 엉덩이가 아파 죽겠다고, 엉덩이 아파 죽겠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엉덩이가 없다는 거야.]
[박현옥/고 박현숙 씨 언니 : 현숙이 꿈은 문학소녀였는데 동생의 마지막 길이 그렇게, 참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정도의 모습으로.]
희생된 이들의 당시 검시 보고서입니다.
수 발의 총상부터 칼에 의한 자상, 온몸에 입은 전신 타박상까지.
그날의 잔인함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VJ : 손건표 / 영상디자인 : 신재훈·배장근 / 영상그래픽 : 박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