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계엄군이 다시 나타났다
"총을 들고 나와라, 투항하라"
당시 계엄군 경고방송
포위된 '시민군' 157명
(중고생 29명)
그리고
도청 방송실에 남은 한 대학생
[박영순/당시 마지막 가두방송 진행자 (당시 21세) : 아 이제는 죽었구나. 거의 울먹이다시피 방송을 했어요.]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당시 도청 옥외방송 내용
1시간 만에 끝난 진압작전
도청에서만 '시민군' 15명 사망
열흘간의 항쟁은 막을 내렸다.
[영화 '화려한 휴가(2007년)' 중 : 사랑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앵커]
보신 것처럼 40년 전 그날, 광주는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광주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80년 이후에 태어나서 2020년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송승환 기자입니다.
[기자]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어 보니 1980년 5월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였던 당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광주를 찾은 한 시민이 40년 전 시민군에게 쓴 손편지입니다.
3년 전 김지현 씨는 광주 시내 19곳에 5·18 엽서와 우체통을 설치했습니다.
김씨는 서른여섯, 5·18 이후 태어났습니다.
[김지현/문화기획자 (오월안부프로젝트) : 엽서를 쓰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엽서의 이미지를 보고 5월 광주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받는 분들도]
스물여섯 이하영 씨는 유튜브 채널 '오월식탁'을 운영합니다.
주먹밥, 설탕국수 같은 광주 음식에 반해 시작했습니다.
[이하영/문화기획자 (장동콜렉티브) : 광주 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났던 곳,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 그렇게만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생각을 바꿔준 건 80년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서숙자/할머니 (오월식탁) : 주부들이, 어머니들이 집에서 밥을 해 가지고 와서 주먹밥도 해오고 이렇게 큰 양푼에다가 밥을 퍼서 차에 올려주고 그랬거든요.]
5·18 정신이 현재와 닿는 지점도 고민합니다.
[이하영/문화기획자 (장동콜렉티브) : 특정 지역, 세대,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이 넘쳐나고 있는데, 저희는 5월 정신을 많이 떠올렸었거든요. 다른 사람을 돌보려 했던 마음이랄지 여전히 유효한 가치잖아요.]
박은현 씨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오르골로 재해석했습니다.
[박은현/문화기획자 (그라제) : 5·18이란 역사가 무겁고 그러다 보니까. 초반에 아이들 관심 유도할 때 굉장히 좋았고…]
박씨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더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게 된다면 5·18의 의미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박은현/문화기획자 (그라제) : 다양한 세대나 다른 인종이나 다 거기서도 겪고 있을 부조리한 지점이 있을 거잖아요. 방법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료제공 : 5·18기념재단)
(영상그래픽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