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5·18 40주년 '발포 명령' 진실 파헤친다…'끝까지 갈 것'

입력 2020-05-12 18:47

5시 정치부회의 #국회 발제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5시 정치부회의 #국회 발제


[앵커]

다음 주 월요일이죠.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강산이 4번이나 바뀌는 긴 시간인데, 아직도 실체적 진실 모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왜, 어떤 이유로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 아직도 오리무중이고 물론 많은 의심을 받는 인물은 전혀 부인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12일)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앞으로 최대 3년 동안 활동하며 진실 파헤칠 예정입니다. 관련 내용 조익신 반장이 짚어봅니다.

[기자]

< 5·18 발포명령자 색출…'끝까지 간다' >

5·18 진상규명조사위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폭동, 사태, 소요 폭압자들이 붙여놓은 불온한 딱지를 떼고, 민주화운동이란 역사적 재평가를 받았지만, 아직도 그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시민들을 향한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 실제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그 날의 진실을 알고 있는 장본인, 바로 이분이 있습니다.

[전두환 씨 (지난해 11월 7일 / 화면제공: 임한솔 전 정의당 부대표) : (광주 5·18 학살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나는. 내가 이 사람아. 내가 이 사람아. 내가 발포 명령을 내릴 위치에도 있지 않은데 군에서 명령도, 명령권도 없는 사람이 명령을 해?]

전씨를 비롯한 당시 신군부는 자위권만 발동했을 뿐이라며, 발포명령자는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40년 동안 9차례나 조사를 벌였지만, 학살의 주범을 찾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번 조사위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3년입니다. 어쩌면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행히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 5·18 당시 시위대를 강경진압하라는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했던 사람, 안병하 전 치안감의 증언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전씨가 5·18전에 광주를 방문했다는 겁니다. 

[안호재/고 안병하 치안감 아들 (어제) : 아버님이 광주에 대한 실상을 이제 보고했죠. 그래서 보고를 받으러 전두환이 왔었고…]

헬기 사격도 발포명령자를 찾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전시에 쓰는 무장 헬기로 시민을 향해 기관총 사격을 가했다 아무리 전씨라도 이걸 자위권 발동이라고 말하진 못할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광주 재판에서 꾸벅꾸벅 졸던 전씨, 헬기 사격 부분 만큼은 똑 부러지게 말을 했습니다. 

[전두환 씨 (음성대역 / 4월 27일, 광주 재판 발언) : 만약에 헬기에서 사격했더라면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무모한 헬기 사격을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 중위나 대위가 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아마 전씨 입장에선 "왜 나만 갖고 그래" 불만일 수 있습니다. 지난 2017년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을 보면 그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전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폭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폭동은 폭동일 뿐"이라면서 말입니다. 이 말, 전씨에게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자위권 발동이라고요? "학살은 학살일 뿐"입니다. 살인을 저질렀으면, 그에 마땅한 벌을 받아야겠죠.

<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친일반민족주의' 투쟁? >

'반일종족주의'를 내건 그들이 또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외전을 들고나왔습니다.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이란 거창한 제목입니다. 책 표지는 바뀌었는데,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강제 징용은 없었고, 위안부는 성매매 산업에 종사한 여인들이었다는 겁니다.

[이영훈/이승만학당 교장 (어제) : 총독부 권력의 방조하에, 묵인하에, 협력하에 일본군이 순진한 우리 조선의 처녀들을 납치·연행해 갔다, 하는 이와 같은 통설입니다. 지난 반일종족주의 책에선 그것을 비판을 했습니다. 비판을 했더니 그 자체에 대한 반론은 없었고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연구자들조차도 그러한 야만적인 어떤 납치와 연행은 없었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당장 일본 지식인도 고개를 갸웃합니다.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CBS '김현정의 뉴스쇼' / 지난해 8월) : 어떤 형태로든 강제성이 있었다고 피해 당사자들이 생각하면 그것은 강제로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그 강제성 중에서도 '강간 센터'라고 표현이 되는 것처럼 정말 납치 같은 형태로 끌려가서 감금 상태에서 당한 식의 강제성도 있었고요. (따라서) 위안소에서 강제적인 여러 행위들이 있었다. 강제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영훈 교장은 식민지 근대화론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이 교장의 말만 들으면, 일본에 큰절이라도 해야 하나 싶습니다.

[이영훈/이승만학당 교장 (어제) : (일본은) 매우 체계적이고 치밀한 차별과 동화가 겸비된 식민지 지배정책을 취했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조선이) 일본 경제에 거의 완벽하게 통합된 가운데, 이른바 근대적 경제 성장의 경로가 개시되었고요.]

이걸 굳이 반박해야 하나 싶은데, 와다 하루키 교수가 역시 수고를 덜어줬습니다.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CBS '김현정의 뉴스쇼' / 지난해 8월) : 교육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을 병사로 만들 수도 없고 노동자로 만들 수도 없고 그러니 뭔가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좋았냐면 아니라는 것이죠. 식민지 지배를 당했어도 조선은 독립적인 역사를 가진 민족이었고 그런 민족에 대해서 부당하게 말살시키거나 동화시키거나 굴복시키려 한 것이 일개 민족에게 남긴 정신적, 문화적 상처라든가 그런 것은 지울 수 없는 것입니다.]

이영훈 교장은 슬쩍 숟가락 얹기도 시도했습니다. 최근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 사이의 불협화음을 틈타, 수요집회가 염치없는 짓이었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이영훈/이승만학당 교장 (어제) : (젊은) 세대들에게 증오심만 심어주는 부작용이 있지 않은가…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시위·집회나, 조형물 설치는 우리 한국인들이 국제적 예의와 염치를 잃은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숟가락을 얹더라도 순서가 좀 잘못된 듯합니다. 지난해 이용수 할머니가 했던 말, 벌써 잊어버리신 건 아니시겠죠? 이 할머니의 이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용수/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CBS '김현정의 뉴스쇼' / 지난해 8월) : 자기가 자기 눈으로 봤을까? 지 눈으로 보고 끌려가는 데 가봤는가? 내가 끌려가서 대만, 신주 가미카제 끌려가서 당한 나로서 눈으로 보이나? 똑똑히 봐라. 역사의 산증인 이용수가 지금 너한테 이 얘기를 하고 있다. 가미카제 부대도 가서 죽지 않고 살아온 피해자가 있잖아. 이렇게 보이잖아.]

이영훈 교장의 주장, 이젠 놀랄 일도 아닙니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아베 수상께 사죄드린다며 머리를 조아린 분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난 총선에서 이런 운동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국회 발제 이렇게 정리합니다. < 5·18 발포명령자 색출…'끝까지 간다' >

관련기사

'5·18 40주년' 진상규명조사위 발족…'안병하 평전' 출간도 '5·18의 기억'…245개 탄흔 남은 전일빌딩 내주 개관 전두환, 법정 나서자 달걀 날아들어…사죄없이 돌아가 정의연 "기부금의 41% 위안부 피해자 지원에 써" 해명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