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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나는 모자, 당신들은 신발입니다"

입력 2019-12-18 21:41 수정 2019-12-1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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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모자, 당신들은 신발입니다. 애당초 티켓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일등석, 일반석, 그리고 여러분 같은 무임승차자들. 순서는 신성한 엔진 앞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 영화|설국열차

애당초 티켓은 정해져 있었고 순서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

봉준호 감독이 긴 열차 한 대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얼핏 보기엔 평등한 것 같아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차단막이 존재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꼬리 칸에 위치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선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가혹한 처벌이 뒤따르지요.

19세기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 역시 보이지 않는 차단막, 즉 부조리한 계급의 문제를 작품 속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소설 < 어려운 시절 >에는 산업도시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이 담겨있는데, 작품 속에 자본가가 가진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동자라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황금수저로 자라수프와 사슴고기를 먹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먹을 수 없습니다."
- 찰스 디킨스 < 어려운 시절 >

디킨스는, 당시 자본가들이 갖고 있던 생각 즉 '노동자들은 그저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풍자했습니다.

그의 이 작품이 언급된 장소는 바로 2019년 대한민국의 법정이었습니다.

삼성의 노조 와해 공작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말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피고인들이 19세기 소설 속 인물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 2019년 12월 13일, 손동환 부장판사

표적 감사와 회유는 물론이고 해고와 위장폐업.

이미 6년 전  JTBC가 보도한 삼성의 노조 와해 문건은 비밀스럽고 집요했습니다.

첨단기술을 가진 21세기 한국의 대표기업이 '노동자들은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는 19세기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느냐는 법정의 질문에…

사람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또다시 떠올렸습니다.

"노동자라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단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황금수저로 자라수프와 사슴고기를 먹는 것이지요."

디킨스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19세기의 자본가는 언젠가 이루고 싶은 노동자의 소망이 실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합니다.

물론 그의 예언은 어느 정도 적중해서 지금까지도 모자와 신발 따위의 체념 섞인 공식이 운위되는 세상.

그러나 We go forward, "우린 앞으로 간다"고 했던 영화 속 주인공의 말처럼.

누군가는 선을 넘어 전진할 수 있을까…

이 '어려운 시절'에 말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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