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트윗 한 개가 기후학계에 큰 반향을 불렀습니다.
"무지막지한 대규모 한파가 온갖 기록들을 갈아치울듯 한데…대관절 지구 온난화에 무슨 일이 난거야?"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더니 웬 한파냐고 물은건 네살짜리 꼬마도 아닌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였죠.
"트럼프 행정부가 미 연방 명령으로 진행중인 기후변화연구를 묻어버리려 한다(힐러리 클린턴)"는 나름 젠틀한 비판부터 "그래서 기후'변화'라고 하는거다 멍청아"라는 네티즌의 뼈 때리는 비난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올해 1월, 그는 트위터의 글자수 제한을 거의 가득 채울듯한 트윗을 또 내놨습니다.
"아름다운 중서부에서 체감기온이 영하 60도(화씨 기준. 섭씨 영하 51도)에 이르면서 가장 낮은 기록을 세웠다. 앞으론 더 추워질 거라고 하고. 사람들은 밖에서 채 몇분도 견디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지구온난화에 무슨 일이 있는거냐. 제발 빨리 찾아와라. 우린 너(온난화)가 필요하다고!"
"대멸종이 시작됐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UN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행동'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한 그레타 툰베리에게도 트럼프는 조롱으로 일관했습니다. "밝고 멋진 미래를 꿈꾸는 무척이나 행복한 소녀"라고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한결같이 이런 주장을 해왔습니다.
"지구온난화라는 개념은 중국이 미국 제조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다", "뉴욕이 얼어붙게 춥고 눈이 내리고 있다. 우린 지구온난화가 필요해!" 등등.
그는 트윗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일, UN에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공식 통보했습니다. 물론 '최종 탈퇴'는 이로부터 3년 후인 2022년 11월 4일 이뤄집니다. 그 사이 미국에선 대선이 있고요.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국제사회 영향력이 큰 미국의 대통령이 온난화, 그리고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를 이렇게 대한다는 것은 분명 큰 걱정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비단 트럼프 대통령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말에 동조하고,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의 수도 상당한 거죠.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지금의 현상 분석도,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과학적인 예측도 모두 부정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신의 대상이 개인이나 정부의 정책을 넘어 객관적인 수학과 과학까지 번진 겁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1988년, UN 세계기상기구(WMO)와 UN환경계획(UNEP)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회원국은 195개 나라에 달합니다. IPCC에선 이들 회원국의 내로라는 과학자들이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에 따른 위험을 경고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IPCC가 내놓은 4가지 대표통도경로 (자료: 기상청) 문득 '시나리오'라고 하면 단순한 추측 내지 '가상의 현실'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계산된 '숫자들의 향연'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이렇게 될거야"가 아니라 각 시나리오별로 "이렇게 될 확률이 각각 몇 퍼센트야" 구체적 수치로 제시되는 거죠. 그렇다보니 이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A', '시나리오 B'… 이렇게 불리지 않고, RCP(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 대표농도경로)라고 불립니다. 우리의 노력에 따른 앞으로의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예상해 지구의 온실가스 농도를 예측하는 시나리오입니다.
RCP2.6은 우리가 아주 엄격하게, 지금 각국이 내놓은 저감대책보다도 더 온실가스를 줄였을 때의 상황, RCP4.5는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상당히 실현됐을 경우, RCP6.0은 저감정책이 어느 정도 실현될 경우, RCP8.5는 특별한 노력 없이 지금의 추세대로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경우 앞으로 지구의 온실가스 농도가 어떻게 달라질지를 계산한 결과입니다.
수치적 정당성이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각 시나리오들을 담은 보고서는 문장 단위로 전체 연구 참여자의 '만장 일치'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일일이 전체 과학자의 동의를 구하고, 만장일치로 동의를 받지 못 한 문장은 보고서에서 지워집니다. 과학자 개개인의 판단뿐 아니라 회원국들이 모두 동의해야 비로소 보고서에 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어떤 의문을 제기했고, 거기에 누가 어떤 답을 제기했는지 그 과정 역시 모두 기록됩니다.
IPCC가 내놓은 '지구 온난화 1.5도' 특별 보고서 (IPCC 홈페이지) 단순히 IPCC의 시나리오를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만화 속 세상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매트릭스'의 시나리오처럼 여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럼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댄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다음 취재설명서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KPF 디플로마-환경저널리즘 과정에 참여 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