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머리가 째지고 다리가 터졌다' 부마민주항쟁 때 몸과 마음을 다친 피해자는 최소 2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람은 200여 명 정도입니다. 기록이 없어서 피해 입증이 어려운 데다가 보상이 턱없이 적어서 신청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배승주 기자입니다.
[기자]
유신철폐 독재타도가 울려 퍼진 1979년 10월 18일, 당시 14살 김효영 씨는 호기심에 거리로 나섰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불을 지르고 돌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매일 밤 끔찍한 폭행과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김효영/부마민주항쟁 피해자 : 두들겨 맞았죠. 머리가 10㎝ 정도 째지고 다리도 터지고…악몽에 잠을 1~2시간도 못 잡니다.]
다행히 최근 부마항쟁 진상규명위가 김씨가 당시 42일 동안 구금됐던 기록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폭행과 고문의 흔적은 없습니다.
[김효영/부마민주항쟁 피해자 : 자기 잘못을 말하지 않고 있거든요.]
더 막막한 경우도 있습니다.
항쟁 때, 친구들과 집에 있던 정혜란 씨는 갑자기 온 경찰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습니다.
[정혜란/경남 창원시 산호동 (부마민주항쟁 당시 25세) : 경찰들은 친구들이 있는지 모르니까 제 친구들은 어머니가 장롱 안에 막 숨기고… ]
정씨는 부마항쟁 배후세력으로 지목돼 5일 간 구금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기록이 없고 있다하더라도 30일 미만 구금이어서 보상 한푼 받을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실태 조사와 보상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화면제공 :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김탁돈 당시 국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