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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혁의 B트레이닝] 운동선수가 마시는 술…'독'에 가까운 이유

입력 2019-08-2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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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혁의 B트레이닝] 운동선수가 마시는 술…'독'에 가까운 이유

1998년 5월 18일(한국시간) 미네소타를 상대로 메이저리그 역대 15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데이비드 웰스(당시 뉴욕 양키스)는 전날 마신 술기운으로 공을 던졌다고 한다. 웰스는 '알코올 커브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기교파 투수'라는 재밌는 말이 떠돌 정도로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주당 중 한 명이었다.

웰스처럼 술을 좋아하는 운동선수는 꽤 많다. 강도 높은 훈련과 경기 출전을 병행하는 상황에서도 술을 마신다. 그래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땀을 쏟아붓고도 술로 인해 그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술은 운동선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결론부터 말하면 술은 담배와 더불어 운동선수의 최대 적이다. 켄터키 대학의 경기력 향상 전문가인 그렉 와이트 교수는 "레드와인 등의 술 한 잔은 심장병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지만, 운동선수에게는 약간의 술도 훈련 효과에 영향을 줄 정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선 술은 근육 성장을 방해한다. 주기적인 음주는 체내 단백질 합성 능력을 떨어트려 근육 성장을 감소시킨다. 근력과 근육을 늘리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무거운 덤벨을 들고 땀을 흘리는데 음주는 이와 정반대되는 행동이다. 두 번째로 술에든 알코올 성분은 강력한 이뇨제로 우리 몸에서 탈수와 전해질의 불균형을 일으킨다. 이는 근육 경련과 햄스트링·종아리·복사근 등의 근육 부상 위험을 높인다.

세 번째로 운동선수에게 수면을 통한 회복은 매우 중요하다. 바로 근육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잠을 자는 동안 근육 성장에 필요한 성장 호르몬을 분비하는 데 술은 숙면을 방해해 체내 성장 호르몬 분비를 저하한다. 술은 성장 호르몬 분비를 최대 70%까지 떨어트릴 수 있다고 한다.

술의 문제점은 또 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체내 내분비 시스템을 통해 근육 성장에 필요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하지만 술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반대로 테스토스테론 분비 촉진을 방해한다. 웨이트 트레이닝 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은 그야말로 '독'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술은 그 자체로도 영양가가 전혀 없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에는 1g당 4㎈, 지방에는 9㎈가 들어가 있지만, 알코올은 1g당 7㎈다. 칼로리는 지방보다 오히려 낮다. 하지만 음식 섭취를 통한 지방은 우리 몸이 에너지원으로 쓸 수 있지만, 알코올은 우리 몸과 근육이 에너지원으로 쓸 수 없는 '빈 칼로리(empty calorie)'다. 그래서 술에서 오는 칼로리는 그대로 몸에서 지방으로 축적된다. 애주가 중에 배 나온 사람이 많은 이유다.

[허재혁의 B트레이닝] 운동선수가 마시는 술…'독'에 가까운 이유


이 외에도 술은 우리가 음식을 통해 받는 영양분의 체내 흡수 능력을 떨어트린다. 특히 비타민 B1·B2, 비타민B 복합체의 하나인 엽산, 아연 등은 에너지 대사에 필수적인 영양소들로 신체 활동이 많은 운동선수에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술은 이 영양소들의 흡수를 방해한다. 당연히 빨리 지쳐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구단의 영양사인 줄리안에 의하면 술은 순간 반응력·협응력·근력·파워·스피드·지구력 등의 운동 능력을 최대 72시간까지 떨어트린다고 한다. 술 마신 다음 날 퍼펙트게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웰스를 보고 술은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과 '농구 대통령' 허재는 소문난 주당이면서 각 종목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는 소수의 사례일 뿐 실제로 많은 선수가 술로 인해 경기력이 떨어져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325승을 기록한 그렉 매덕스는 시즌 중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2016시즌 내셔널리그 MVP 수상자인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는 자기 관리를 위해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한다.

직업 특성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운동선수에게 술 한 잔은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와 음악 감상, 책 읽기 등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이 커리어에 더 큰 도움이 된다. 운동선수라는 직업은 평생토록 할 수가 없다. 지금 잠깐의 즐거움을 참고 은퇴 후에 실컷 즐겨도 충분하다. 술로 얻는 즐거움은 일시적이지만 훌륭한 커리어를 쌓아 얻는 즐거움은 영원하다.

허재혁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트레이너
정리=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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