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학교 강당에는 기다란 줄이 열 개쯤 되는 형태로 물레가 줄지어 놓여 있었습니다.
모형이나 장난감이 아닌 진짜 물레…
그 물레 안에는 입학할 학교의 번호가 적힌 은행알이 들어있었고…
이제 초등학교 졸업을 눈앞에 둔 우리들은 각자 배정 받은 물레 앞에 앉아서 말 그대로 물레를 돌렸지요.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한 번.
그러면 은행알 하나가 물레 밖으로 툭 떨어져 나왔습니다.
'뺑뺑이 세대'물레는 그래서 '뺑뺑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우리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뺑뺑이 세대'로 불리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평준화 교육 …
1969년, 그러니까 꼭 반세기 전의 풍경이었습니다,
세상에… 아이의 미래를 결정지을 학교 선택을 물레와 은행알에 맡기다니…
지금은 물론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겠지요.
평준화는 그렇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확대됐습니다.
그리고 평준화 교육에 대한 찬반 논쟁은 그 이후 한 번도 쉰 적이 없습니다.
그 때문인지 평준화 교육은 대부분 겉으로만 외쳤을 뿐 어떻게든 그 속에서 비평준화는 싹텄습니다.
제가 들어간 중학교도 입학하자마자 IQ 테스트를 해서 우열반을 가르는…
누가 봐도 비인도적 교육을 감행했던 바,
그 우열반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형태를 달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우리 모두는 압니다.
평준화 속의 비평준화는 결국 학교 단위로 옮겨가서 외고니, 자사고니 하는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오늘 서울의 자사고 재지정 심사 대상에서 절반 이상이 탈락했지요.
지정이 취소된 학교들은 모두가 아우성이지만 그 아우성의 바닥을 들여다보면 결론은 또다시 '입시지옥'이었습니다.
자사고가 줄어들면 조금 더 평평한 교육이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결국 또 다른 형태의 비평준화는 어떤 형태로든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비낙관적 예측은 왜 자꾸 고개를 드는 것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회의 균등함에 대한 확신에 목말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 JTBC 드라마 < SKY 캐슬 >
드라마 속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라는 말은 비평준화가 가져다줄 일부의 미래를 향한 것이 아니라 평준화가 가져올 모두의 미래를 향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까 말씀드린 물레와 은행알…
1971년의 여의도 시범아파트 입주 때도 사용했고, 1979년에는 법원에서도 사건배당의 공정성을 위해 사용했다 하고, 심지어는 1998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썼다고 하니…
무려 30년간 '뺑뺑이'가 공정함을 상징한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평준화의 목표와 방법은 그리 틀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