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번주 토요일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날이죠. 당시 광주에 있었던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 씨, 보안부대 수사관이었던 허장환 씨가 39년 만에 한 증언에 또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계엄군 발포 직전 전두환 씨가 광주로 와서 사살 명령을 내렸다고 국회에서 말을 했는데요.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시민을 가장한 계엄군 부대가 있었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먼저 유선의 기자입니다.
[기자]
김용장 씨는 80년 5월 21일 전두환 씨가 광주에 와서 한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21일은 첫 번째 집단 사격이 있던 날입니다.
[김용장/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 : 이것 또한 제가 (백악관에) 보고한 내용입니다. 오자마자 K57 비행단장실에서
회의했습니다. 회의 참석자는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 보안부대장…]
회의 참석자로 지목된 이재우 505 보안부대장의 직속부하였던 허장환 씨는 전 씨가 그 회의에서 사살명령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허장환/5·18 당시 보안부대 수사관 : 그 사격은 제가 직접 목도했습니다. 전두환은 사살명령을 내린 겁니다.]
80년 5월 21일 오후 1시에서 1시 30분 사이, 전남도청 앞에서는 계엄군의 집단·조준사격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11시, 국방부에서 회의를 한 전씨는 헬기를 타고 광주에 왔고 정오 무렵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 사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전두환 신군부가 이런 강경 진압을 위해 시민을 가장한 계엄군, 이른바 '편의대'를 보냈다고도 했습니다.
[김용장/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 : 격납고로 찾아가서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나이는 20 혹은 30대 젊은이들이었고, 짧은 머리에 일부는 가발을 썼습니다.]
계엄군이 보낸 편의대가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그것을 명분으로 계엄군이 사격을 하는, 이른바 시나리오에 따른 진압이었다는 것입니다.
북한군 침투설은 말할 가치도 없다고 했습니다.
[김용장/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 : 북한군 600명이 미군의 첨단 감시망을 피해서 들어오는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저는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보고는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상디자인 : 곽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