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측의 국제법 차원의 대응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향후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20일 불거진 '레이더 공방'이 보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일갈등이 징용판결과 레이더 문제 등 양대전선에서 심화하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5일 일본 기업에 자산보전 조치가 취해질 경우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하는 방안에 대해 일본 정부가 검토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이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근거한 것으로, 일본 정부는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3국을 포함해 중재 조치를 요청하고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어 6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최근 일본 기업의 자산압류를 신청한 것과 관련해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대응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 성청(省廳·부처)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일본 측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최근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해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는 절차에 들어간 것에 따른 대응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미쓰비시중공업의 강제동원 피해자들도 기업을 상대로 협의를 요청한 뒤 내달 말까지 답변이 없으면 압류 절차를 통보할 방침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 정부가 각계의 의견을 수렴,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련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가고 있는 가운데 빨리 정부 입장을 내놓을 것을 압박하는 취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간접적으로는 최근 조난한 북한 선박 수색 과정에서 촉발된 한국과 일본의 '레이더 갈등'이 국제 여론전으로 치닫는 상황에, 한국에 대한 공세 고삐를 조여나가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그와 더불어 자국내 지지율 하락세 속에 레이더 갈등 및 강제징용 판결 등 양대 한국 관련 현안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보수·우익 성향의 지지층을 만족시키려는 속내가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만약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여 압류 조치를 내리게 되면, 일본 측은 정부 간 협의 신청을 거쳐 중재 수순을 밟아 나가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청구권 협정은 양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해 해결하며, 만약 이를 통한 해결이 어려울 경우 양국 정부가 합의하는 절차에 따라 중재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 만약 중재를 통해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 일본 측의 기본적 방침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조치는 모두 현실적, 국제법적으로 한국 정부가 받아들여야 정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 측이 원하더라도 절차가 곧바로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 정부로서도 일본 기업의 재산에 대한 법적 조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일본 측의 협의 신청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외교적 부담이 따르는 만큼 어떤 형식으로든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청구권 협정에 따른 본격적인 협의 신청을 받아들이면 사실상 대법원 판결 관련 공식적인 분쟁 해결 절차로 돌입하는 셈이 된다는 점도 우리로서는 고려할 부분이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앞으로 일본 측의 협의 신청이 오면 여러 요소를 고려해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측의 요청이 들어오면 먼저 충분히 관련 내용을 검토해 나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핵 문제 등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현안과 관련한 한일공조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양국 갈등이 국민간 감정싸움과 국제 여론전으로까지 비화하는 것은 이로울 것이 없다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호 주장할 것은 주장하더라도 소모적인 장외 공방은 자제하고 대화를 통해 오해를 푸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종문 한신대 교수는 "지금 서로가 치킨게임처럼 국내 여론 동향을 살피면서 상대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나가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며 "최근 양국 간 문제가 되는 레이더 사안 등을 패키지로 묶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아 돌파구를 마련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