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으로 도움도 안 되는데 강제성을 띤 국민연금법은 폐지 또는 선택 가입으로 하는 게 도리라고 봅니다. 강압성을 띤 납입금은 돌려주는 게 맞다고 봅니다."
"내가 힘들게 여러 일을 해서 번 돈인데 여기서 또 강제로 떼어간다 하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이래서 어느 세월에 방 한 칸 집이라도 살 수 있는 날이 올지요. 폐지가 안 된다면 차라리 선택제로 해주실 순 없는 건가요?"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을 강화하려면 보험료율을 현재 9%에서 11∼13.5%로 올리고, 의무가입연령(60세→65세)과 수급연령(65세→67세)을 상향 조정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편을 해야 한다는 국민연금제도개선위원회의 정책자문안이 나오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쏟아진 불만들이다.
더 많이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 등 부담은 늘고 혜택은 줄이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이런 제안에 대해 '내 노후는 내가 스스로 책임질 테니 국가는 간섭하지 말라'는 저항이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 국민연금 개편은 없을 것이라며 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강제가입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하루라도 빨리 탈퇴하고 싶다는 이런 요구는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2004년 여름 '국민연금 8대 비밀'이 터지는 등 국민연금 논란이 벌어질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국민연금'을 키워드로 넣고 검색하면 국민연금 탈퇴 요구는 숱하게 뜬다.
왜 그럴까? 왜 강제로 가입해야 할까? 자율 가입하면 안 되는 걸까?
20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법에 따라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국민은 국민연금 의무가입 대상이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이 싫어하는데도 의무가입 제도를 시행하는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모든 분이 개인적으로 노후준비를 하기 어렵고, 고령화에 따른 노후문제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공적 차원에서 사회보장제도인 국민연금으로 최소한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가입하고 싶은 사람만 가입하도록 하면 국민의 기본적 소득보장이라는 연금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강제가입이 아니라 임의, 자율가입하도록 하면 소수만 가입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 소수도 연금수급 때까지 가입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게 돼 결국은 연금제도를 운영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란 것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수십 년 동안 보험료를 내야 하는 장기보험이다. 그런데 국민 개개인의 삶의 과정에서는 교육비, 사업 밑천, 빚 청산 등을 위해 급전이 필요한 경우가 발생한다. 의무가입이 아니어서 그때마다 돈이 필요한 가입자에게 낸 보험료를 되돌려주게 되면, 누구에게나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장애나 사망, 누구나 맞게 되는 기나긴 고령 시기를 대비할 주요한 미래노후수단을 잃고 말 것이라는 설명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노후, 사망, 장애 등 미래 위험에 대비한 국민연금 같은 공적 사회보험제도는 의무가입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선진국 노인들이 빈곤의 위협 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사는 것은 오랫동안 의무적으로 적용해온 공적연금 덕분이라고 국민연금공단은 강조했다.
이미 오래전에 국민연금의 강제가입과 보험료 강제 징수 규정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받았다.
17년 전인 2001년 2월 23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당시 김모씨 등 116명이 국민연금제도의 위헌성을 확인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건에서 "위헌으로 볼 수 없다"며 전원일치 의견으로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국민연금은 반대급부 없이 국가에서 강제로 징수하는 조세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으로, 국민의 생활보장과 복지증진을 기하는 공익목적의 제도이기 때문에 헌법 취지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헌재는 특히 "강제가입 및 징수 행위가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일부 침해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회보험의 성격과 노년층·저소득층으로의 소득 재분배 기능 등에 비춰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해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기본권도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제도를 통해 국민 개개인의 사회적 위험을 국민 전체 또는 사회 전반으로 분산시키는 공익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시 김모씨 등 116명은 국민 개인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가입을 전제로 하고 있고 징수된 보험료 액수만큼 나중에 되돌려 받지도 못하는 연금제도가 재산권과 행복 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1999년 6월 헌법소원을 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