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전화통화를 예고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대북 체제 보장을 축으로 한 '한반도 평화 페달'이 가속하는 형국이다.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으로 두 정상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통화까지 성사된다면 비핵화 방안을 구체화해 나갈 '포스트 북미정상회담'은 '순항' 모드로 접어들 공산이 작지 않다.
청와대도 북미 정상 통화 가능성을 '아주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하면서 실제로 두 정상 간 통화가 현실화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문 대통령이 북미 정상 간 핫라인 구축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촉구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5·26 남북정상회담 이튿날인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남북미 간 핫라인 통화가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남북 간 핫라인이 개설됐고 북미 간에도 그런 게 구축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미 정상 간 핫라인이 구축됐다면 문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외견상으로만 따지자면 문 대통령이 촉구하고 북미 두 정상이 이를 수용한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된 직후 북한의 갑작스러운 대미 비난에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를 전격 선언하면서 회담이 좌초 위기에 몰렸을 때도 문 대통령은 한밤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들을 청와대 관저로 불러들여 긴급회의를 한 뒤 북미 정상 간 직접 대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취소 선언에 유감을 표하면서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이 있은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김 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담화를 내고 북미정상회담 개최 희망 의사를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 역사적인 '센토사 선언'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고비마다 중재자로서 개입해 북미 정상의 판단에 영향을 주면서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등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왔다는 게 평가가 적지 않다.
북미 정상을 상대로 한 문 대통령의 '중재 효과' 배경에는 취임 후 4차례의 양자회담과 17번의 전화통화로 다진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유대 및 한미공조와 함께 김 위원장과 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쌓은 신뢰가 각각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소통방식은 이번 비핵화 협상에서 새롭게 자리 잡은 남북미 정상 간의 '직접소통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5일 "정상 간 합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실무협상을 하기로 한 톱다운 형식은 과거 비핵화 협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체제 보장안을 둘러싸고 더욱 복잡할 것으로 예상되는 '포스트 북미정상회담' 국면에서 문 대통령의 중재역은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제기된다.
북미 고위급 접촉이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북미협상을 실무에서 진두지휘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4일 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의 관계가 돈독하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긴밀히 협의해달라"고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도 (비핵화 과정에서) 좀 더 많은 한국의 역할을 부탁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5·26 남북정상회담도 김 위원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민감한 문제를 다뤄야 할 북미협상 2라운드에서 중재자이자 촉진자로서 문 대통령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