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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브리핑] '권양. 그리고 199명의 변호인'

입력 2018-02-05 21:55 수정 2018-02-0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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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권양… 온 국민이 그 이름은 모르는 채 그 성만으로 알고 있는 이름 없는 유명인사.
얼굴 없는 우상이 되어버린 이 처녀는 누구인가?"  - 1986년 11월 21일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이제는 고인이 된 조영래 변호사가 낭독한 이른바 '권양 사건'의 변론요지 중 한 구절입니다.

당시 '권양'이라 불렸던 그의 이름은 '권인숙'.
 

이토록 철저하게 모욕하다니…
차라리 그가 날 죽여주는 것이
훨씬 깨끗하고 고마울 것 같았다.

- 권인숙 수기 < 하나의 벽을 넘어서 >

그는 1986년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피해자였습니다.

수 없는 망설임 끝에 다신 되새기고 싶지 않은 그 순간을 꺼내놓았으나.

권위주의 정권은 사건을 은폐하려 시도했고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을 옥죄었습니다.

"어떻게 다 큰 처녀가 자기가 당했다는 사실을 남에게 내세울 수 있느냐"

지극히 보수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역시 한몫을 거들었지요.

권양… 공권력의 불의를 고발했던 22살의 권인숙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성씨와 성별로만 세상에 알려졌던 것입니다.

견고해 보였던 세상의 벽.

그때 그의 손을 잡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변호사들이 나서서 고발인이 돼야 한다"

변호사 조영래를 비롯한 199명의 변호인단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끈질긴 법정투쟁 끝에 가해자인 경찰을 구속시켰으며 마침내 1990년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기에 이릅니다.

서지현 검사가 추행을 당했던 그 시간.

그 자리에 함께한 검사들에 대한 참고인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피해자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가해자는 부정하고 목격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대다수의 성폭력 사건이라는데…그들은 보지 못했을까, 혹은 외면했을까, 아니면 보고도 그냥 두었을까…

32년 전의 권양, 아니 권인숙은 이미 십 년 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었습니다.

"나는 구시대의 인물이다"

이제는 세상이 좀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와 소망을 품고 있었을 그 말.

그러나 지금 그가 만나고 있는 세상은… 그가 만날 또 다른 권인숙, 서지현은. 그때의 자신과는 다른 모습일까…

32년 전 조영래 변호사가 며칠 밤을 새가며 써냈던… 당시의 그 변론문은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사회가, 우리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가"
-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변론요지서 (1986년 11월 21일)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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