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정기적으로 상납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이병기 전 국정원장 측이 첫 재판에서 뇌물로 준 돈이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남 전 원장의 변호인은 2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 전 원장의 변호인은 "특활비 중 매달 5천만원은 본래 청와대 몫으로 할당된 특활비라 생각해서 안봉근 요구에 따라 전달을 지시하긴 했지만 이헌수 기조실장이나 이재만 비서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특히 "할당된 특활비가 청와대의 국정운영 관련 예산에 쓰인다고 해서 제공한 것이지 뇌물로 준 게 아니다. 대가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서도 "국고손실죄는 신분범죄로서, 회계사무를 집행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피고인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재무관인 이헌수 실장과의 공모관계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씨와 공모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의 변호인도 "사실관계는 대부분 인정한다"면서도 "종전 관행에 따라 청와대의 예산을 지원하는 일환으로 매달 집행을 승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국익을 위해 청와대에 예산을 지원하면 대통령이 당연히 국가와 국익을 위해 정당하게 사용할 것으로 신뢰했다"고 부연했다. 검찰의 판단처럼 대통령에게서 각종 편의를 받을 목적으로 예산을 지원한 게 아니라는 논리다.
또 "이런 정도의 청와대 예산 지원은 허용되는 것으로 생각했고 부당하게 전용돼 횡령에 해당할 것으로 생각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원장의 변호인은 다만 "국민 세금인 특활비를 지출하면서 세밀한 법적 검토를 하지 못하고 목적에 부합하는 엄격한 지출을 하지 않은 점은 깊이 뉘우치고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어떤 사법 판단도 달게 받을 것"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남 전 원장은 재임 시절인 2013년 5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을 통해 원장 특활비로 배정된 40억원에서 매달 5천만원씩 6억원을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및 뇌물공여)를 받는다.
이 전 원장도 재임 시절 이 전 기조실장에게 지시해 매달 1억원씩 총 8억원을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로 기소됐다.
남 전 원장은 'VIP(대통령) 관심사항'이라면서 현대기아차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재향경우회 산하 법인에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25억원을 지원하게 한 혐의(국정원법상 직권남용 및 강요)도 받는다.
남 전 원장 측은 이 혐의에 대해서도 "경우회를 지원하라고 지시하거나 강요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전 원장의 추가 기소 가능성 등을 고려해 넉넉히 내년 1월 22일 2차 공판준비기일을 잡았다.
이 전 원장은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에게 1억원을 뇌물로 건네고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에게 매달 특활비를 500만원씩 전달한 혐의와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날 최 의원에 대한 신병 확보 여부를 지켜본 뒤 내년 1월 초께 이 전 원장을 추가 기소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