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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 아닌 학살"…군 문건 속 5·18 '참혹한 정황들'

입력 2017-10-18 21:48 수정 2017-10-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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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희생자들에 대한 얘기, 그 실상은 들을수록 늘 놀랍고 충격적입니다. 저희가 1부에서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참혹한 과잉진압, 그리고 암매장 의혹을 당시 피해자들의 목소리로 전해드렸습니다. 관련 정황은 군 내부 문건에서도 드러나는데 정치부 유선의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여성이나 노약자를 무차별 공격했다." 당시 피해자 가족들의 진술은 여러 번 나왔습니다마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오늘 보고서에 들어있었던 것이죠?

[기자]

네, 앞서 리포트로 전해드린 5·18 사망자 검시 결과 검토 의견 문건을 보겠습니다.

부검을 진행한 165명, 일부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조사를 했는데 14세 미만이 8명, 50세 이상이 11명 숨진 것으로 나와 있고,

[앵커]

14세 미만이면 어린 아이인데.

[기자]

네, 여성이 칼에 찔리고 배와 머리에 총을 맞았다, 대검에 찔리고, 둔기에 머리를 맞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보고서에 보면 너무 잔인한 내용이 많아서 저희가 차마 직접 소개를 못 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앵커]

방송에 소개해드리지 못할 정도로 잔인한 살상 내용이 많이 있어서…그런데 이게 그동안 돌고 돌았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부검 결과로 모두 확인이 됐던 것이지요.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군의관, 그리고 의사들이 작성한 문건입니다.

하지만 당시 군은 이런 내용을 모두 거짓이고 유언비어로 몰아갑니다.

지난주 전해드린 5·18 문건 조작부대, 이른바 '511분석반'의 문건인데요.

당시 경찰이 이렇게 진술합니다. 광주에 주둔했던 경찰인데, "여자 2명의 옷이 찢어져 속옷만 입었다. 계엄군이 그 뒤에서 대검으로 밀었고, 여자들의 얼굴에 피가 흘렀다"고 진술했는데, 511분석반이 이건 유언비어고 과잉진압의 근거가 되니까 고치라고 지시합니다.

[앵커]

부검 결과에도 나타난 걸 모두 거짓으로 꾸며냈던 건데, 입증할 자료가 더 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이번엔 당시 보안사가 호남 출신 장교들을 조사한 문건을 보겠습니다.

계엄군이 몽둥이로 과격하게 때리고, 군홧발로 밟았다. 다 때려죽인다고 말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또 군에서 사망자를 85명으로 집계했지만 사실은 300~400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는 문구도 있습니다.

[앵커]

사망자 수가 훨씬 많을 수도 있다는 거죠.

[기자]

네, 실제로 당시 계엄군이 조사한 사망자 수, 지금 광주시, 또 시민단체가 집계한 사망자 수가 지금도 다 다릅니다.

오늘 시작된 암매장 조사를 통해서 시신이 추가로 발견된다면 5·18 사망자 수를 전면 재조사해야 합니다.

[앵커]

바로 그 암매장 관련해서도 의심스러운 문건이 있죠?

[기자]

네, 이번에도 511분석반 문건입니다.

20사단의 한 대대장이 11공수부대에 4~5구의 시체가 가마니로 덮여있었다고 진술했는데, 이게 그대로 국회에 제출이 되면 사망자 수가 달라지니까 고치라고 지시합니다. (사망자 수가 늘어난다는 얘기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합니다.

최근 5·18 당시 광주교도소 교도관이 "가마니로 시신을 옮겨 암매장하는 걸 봤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당시 상황과 일치합니다.

[앵커]

가마니에 덮여있었다는 시신들은 당연히 시민들을 말하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가마니와 관련해서 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이번에는 당시 보급기록현황 문건을 보겠습니다.

5월 24일에 20사단에 공마대, 그러니까 빈 가마니 1만 장이 보급됩니다.

다른 부대로도 수시로 가마니가 넘어옵니다.

5월 26일에는 3만5000장이 긴급 공수됐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날은 계엄군이 도청에 강제 진입한 바로 전날입니다.

물론 계엄군이 가마니에 모래를 담아서 진지를 구축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가마니가 너무 많습니다.

[앵커]

과거 조사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다뤄지지 않았습니까?

[기자]

일부 다뤄지기는 했는데, 제대로 조사되지는 못했습니다.

1995년 검찰 조사 기록에 나옵니다.

5.18 당시 33사단장이던 전주식 씨의 진술조서입니다.

검사가 곡괭이 50개와 곡괭이자루 150개는 왜 준비했느냐고 물었는데, 곡괭이 자루는 시위 진압용인데, 곡괭이는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앵커]

개인적으로는 제가 79년도에 입대해서 80년에는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기는 했습니다마는, 다른 지역의 군에서도 사실 오늘 나왔던 여러 가지 참혹한 얘기들이 마치 유언비어처럼 돌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유언비어라고 교육을 받았죠. 그런데 저도 37년 만에 부검 결과를 확인하게 되는군요. 유선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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