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법원의 '대표 판사'들이 모여 사법개혁의 방향을 논의하는 '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19일 시작됐다.
전국 규모 판사회의가 열린 것은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관련 재판 진행에 간섭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이후 8년 만이다. 이를 계기로 사법부 내 '개혁 불씨'가 불붙을지 주목된다.
전국 법원에서 선발된 대표 판사들은 이날 오전 10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 사법연수원 3층 대형 강의실에 모여 이성복(57·사법연수원 16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를 의장으로 선출하는 등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이 판사는 과거 '촛불 파동' 때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을 맡아 신 전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핵심적 역할을 했던 개혁 성향 인물이다.
참석자는 임용 29년 차로 서울동부지법원장을 지낸 민중기(58·1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부터 올해 2월 법원에 들어온 차기현(40·변호사시험 2회) 서울중앙지법 판사까지 총 100명이다. 회의에선 '부장판사', '법원장' 등의 직함을 쓰지 않고 '판사'로 호칭을 통일했다.
이중 의장을 보좌할 간사로는 송승용(43·29기) 수원지법 부장판사, 김도균(47·27기) 사법연수원 교수(부장판사), 이연진(35·37기)·박경열(41·37기) 인천지법 판사 등 4명이 선출됐다.
회의 공보를 맡은 송 부장판사는 "약 10명 정도가 발제할 예정이며 안건마다 표결할 것"이라며 "결의가 된 내용은 오늘이나 내일 중 대법원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모(39) 판사의 사표 파동 등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촉발된 이번 회의는 의혹 사건 재조사, 책임 규명, 재발 방지책, 판사회의 상설화 등 4가지 안건을 순서대로 논의한다.
사건 재조사에 대한 토론에선 '판사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할 경우 보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놓고 토론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회의 상설화 방안은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행정·인사권에 대해 일선 판사의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를 만들려는 취지다. 다만, 일각에선 상설화된 판사회의가 사실상 '판사 노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는 차분하게 진행됐지만, 이따금 문밖으로 박수 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점심시간 휴정한 회의는 오후 2시 15분 재개되며 회의 중간인 오후 3시께와 회의 종료 후인 오후 6시께 언론 브리핑을 할 예정이다.
앞서 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고위 간부인 이규진(55·18기) 전 상임위원이 이 판사를 통해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법관인사 개혁' 관련 세미나를 축소하도록 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전 위원은 올 초까지 연구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판사들이 조사가 미진했다고 반발하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달 17일 법원 내부망에 '현안과 관련해 판사들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해 회의가 열리게 됐다.
이번 회의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다양한 법관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과거 박시환 전 대법관 등 진보 성향 판사들이 만든 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의 후신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낸 김명수(58·15기) 춘천지법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기도 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