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등 야권 유력주자들의 '호남혈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호남은 역대 대선마다 야권의 향배를 쥐고 있는 대주주임은 부인할 수 없다. 호남의 지지를 받지 않는 주자가 야권의 제1후보가 된 적도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문 전 대표와 안 지사, 안 전 대표 등은 사활을 걸고 호남 구애에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호남 민심의 조용한 변화 움직임이 감지된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중도 하차 직전만 하더라도 정권 교체를 바라는 호남 입장에서는 가장 가능성이 큰 문 전 대표에게 마음을 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반문 정서가 완전히 가신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반 전 총장 등 범여권 주자가 상승세를 타는 것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정서가 작용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여권 주자들이 맥을 못 추는 상황이 되자 호남 민심도 조금씩 술렁이는 듯하다. 이젠 야권 주자 중 누가 나와도 여권을 제압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따라서 그간 정권교체라는 명분 아래 문 전 대표를 지지하던 계층의 마음이 관망세로 서서히 돌아서는 분위기다. 안 지사나 안 전 대표, 나아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게도 눈을 돌려보자는 생각이다.
실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지지율 변화 추이를 보면 문 전 대표는 지난달부터 2월 2주차까지 호남 지역에서 37.4%→36.7%→31.3%로 지지율이 조금씩 하락한 반면, 안 지사는 같은 기간 호남 지지율이 5.8%→9.5%→18.2%로 급상승했다. 여기엔 문 전 대표가 영입했던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5.18 광주항쟁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지역의 반발을 부른 것도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상황이 이렇자 문 전 대표 측은 다급해졌다. 호남을 지켜야한다는 판단아래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선대위 책임자를 거의 전원 호남 출신으로 채우며 호남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남 목포 출신 전윤철 전 감사원장과 광주 출신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전남 고흥 출신인 송영길 의원을 총괄본부장으로, 전남 장흥 출신인 임종석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는 등 핵심 참모라인에 호남 출신을 앉혔다.
문 전 대표는 19일 전북 전주시를 방문해 "총선 때 민주당이 희망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정신차려라' 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엔 전북 도민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겠다"고 보다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그는 ▲임기 초 새만금 매립 작업에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참여 ▲전주 혁신도시에 교육·보육·의료·복지 시설 등 확충 ▲전주 혁신도시 금융중심지로 발전 ▲전북 탄소산업 메카로 발전 ▲전북 농생명 산업 수도로 발전 등 당근도 제시했다.
반면 안 지사는 호남을 빼앗아 와야 한다. 문 전 대표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남의 반감이 적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러브콜에 한창이다. 안 지사는 전남 신안 출신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후원회장으로 영입한데 이어 지난 11일과 12일 전남 목포와 광주를 1박2일로 방문해 호남 주민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안 지사는 12일 광주 서구 5·18 민주화운동 학생기념탑을 방문한 후 5·18에 관련됐다는 이유로 고교 입학 후 6개월만에 제적된 과거를 들어 "제 출발정신은 광주정신이기도 하다"고 호소했다. 전날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 현대사 민주화 운동의 산역사다. 민주당의 역사를 이어나가고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의 새 지평을 연다고 다짐한 저에게는 고향이자 영원한 출발선일 수밖에 없다"고 향수를 자극했다.
여기에 원래 호남이 텃밭이었던 안철수 전 대표가 다시 뛰어들었다. 안 전 대표는 호남을 다시 찾아와야 할 입장이다. 안 전 대표는 13일부터 1박2일간 광주와 전주를 방문해 호남의 지지를 당부할 방침이다. 특히 전남 순천출신인 안 전 대표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는 4일부터 1박2일간 광주를 방문, 지역민심 끌어안기에 나섰다. 김 교수는 오는 17일에도 3박4일간 전북을 찾아 도내 주요지역을 돌며 구애에 나설 예정이다.
이들 외에도 이재명 성남시장과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등 다른 야권 주자도 호남혈전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처럼 대선이 다가오면서 야권주자들의 호남쟁투가 가열되고 있으나 아직도 현지 민심의 선택은 안개 속이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