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둘러싼 대립이 극으로 치닫는 모양새입니다. 부산과 대구의 자존심 싸움처럼 돼가면서 주민들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덕도와 밀양, 두 후보지의 주민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습니다.
밀착카메라 고석승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이곳은 부산의 번화가인 광복동 거리인데요.
지금 신공항 유치를 기원하는 집회가 한창 열리고 있습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상태인데요.
시민들은 '신공항은 가덕으로'라고 써있는 응원봉을 들고 각종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부산 지역 여야 정치인들까지 총출동한 이날 집회에서는 지역 기업인과 시민 단체 관계자들의 삭발식까지 펼쳐졌습니다.
[임인택/부산 청학동 : (밀양은) 산을 한 세개를 깎아야 된다고 그러던데 입지로 봐서는 가덕도가 최적지 맞아요. 그리고 부산에 있던 공항이 부산에 있어야지. 왜 또 저쪽으로 올라갑니까.]
밀양을 지지하고 있는 대구의 분위기는 격앙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시내 여기저기 각종 구호가 담긴 신공항 현수막이 눈에 띕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한 버스정류장 옆에 내걸린 현수막입니다.
'한마음으로 신공항을 건설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공항 관련 현수막이 지금은 이렇게 대구 시내 곳곳에 걸려있습니다.
전통시장, 야구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신공항 관련 시민 단체의 유치 운동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대구 시민 대다수도 밀양 유치를 주장합니다.
[여영필/대구 비산동 : 가덕도 그건 못 써. 왜 그러냐. 거긴 바다를 메워야 되고 밀양은 산만 한두 개 깎아내면 OK. (가덕도가 되면) 죽는 거야. 나리가 죽는 거야.]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부산 가덕도를 찾아가 봤습니다.
부산 끝자락에 위치한 조용한 어촌 마을이 지금은 연일 신문과 TV 뉴스에 등장하는 동네가 돼버렸는데요.
상당수 주민들은 공항 유치에 부정적인 입장이지만 제대로 하소연도 하지 못한 채 냉가슴만 앓고 있습니다.
[가덕도 후보지 주민 : 부산시에서 염원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또 찬물을 끼얹는 것도 아니고. 가슴앓이를 해야 되는 거라. 진짜 저같은 경우는 잠도 안 옵니다. (신공항 유치돼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겠나 싶어서요.]
또 다른 후보지인 경남 밀양 하남읍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이곳은 보시는 것처럼 논과 밭이 대부분인 평범한 농촌 마을인데요.
공항 후보지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정작 마을 주민들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밀양 후보지 주민 : 밀양 (시내에) 내 집을 사 놨어요. 거기로 간다고 생각하고 있어. 도시 가서 좀 편안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렇지.]
가덕도와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날 수 없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밀양 후보지 주민 : 여기 공항 들어오면 안 됩니다. 여기는 안 와야 돼. (마을) 청년들이 어디 가서 살라고.]
전문가들은 '과열된 분위기에 휩쓸려 입지 선정이 정치적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허희영 교수/한국항공대 경영학과 : 전문가 의견은 지금 다 매몰돼있습니다. 오로지 지역 간의 대결 프레임에 갇혀 있는데요. 원점으로 돌아가서 영남권에 공항이 왜 필요한가. 거기서부터 접근하면 해법이 있거든요.]
신공항이 꼭 필요하다지만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갈등을 조장하고, 지역주민들이 사생결단 식으로 유치전을 벌이는 것은 분명 뭔가 잘못됐습니다.
정치적 논리나 지역감정 대신 공정한 심사와 깨끗한 승복이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