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12월 9일
1971년 12월 9일
베트남 '청룡부대' 1진 귀환
"내 조국아, 왔노라!"
부산항 입항 그 순간을
그때는 '개선'이라 했다
6일간의 항해…
국군 장병은 어디에서 왔는가?
20㎞ 해변
세계적 휴양지 다낭
당시는
베트남전의 격전지
1965년 전투부대 파병
'첫 철군' 1천명 귀환
* 1965년 10월 9일 청룡부대 남베트남 상륙
8년 6개월의 파병기간
연인원 32만이 싸웠다
* 1964년 9월 11일(의료진 파병)~1973년 3월 23일(철군 종료)
한때는 주둔병력이
미군보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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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말 남베트남 주둔 연합군(총 6만7392명)
-국군 3만7438명 (55.6%)
-미군 2만9655명 (44.0%)
-기타 : 호주(128명), 뉴질랜드(53명), 필리핀(49명), 태국(38명), 대만(3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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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파견이 없었다면
주한미군 2개 사단을
베트남으로 빼갔을 것"
-1967년 대선 박정희 후보 대전 유세
'잘 싸웠던' 국군 전투수당
남베트남 군대보다 적었다
* 당시 전비는 미국이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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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전투수당' 비교>
-한국군 이병 : 51.11달러
-남베트남 사병 55.79달러
-미군 이병 235.15달러
* 자료 : 베트남 전쟁(박태균,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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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전장의 월급'
82%를 조국으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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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 수당 및 송금 총액(1965~1973)
-수당 지급 : 2억 3556만 달러
-본국 송금 : 1억 9511만 달러 (82.8%)
-현지 소비 : 4084만 달러(17.3%)
* 자료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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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부친 '달러'가
당시 외환보유액의 40%
하지만… 월남전 파병 이후
남북 군사충돌은 10배 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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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남북 군사충돌
-1965~66 : 한해 30~40건
-1967 : 400건 이상
-1968 : 500건 육박 (북 특수부대, 청와대 기습 '1.21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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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어두려 했던 주한미군도
결국 사단 병력 본국 철수
* 1971년 주한미군 제7사단 한반도 철수
그렇게 돌아온 '청룡부대'
그 시절을 뭐라 규정하든…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다
베트남전 전사·순직 5099명
그리고
그 땅에서 죽은 모든 넋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