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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TOC] '팩트'로 사는 남자, 김필규의 하루 보고서

입력 2015-07-02 15:53 수정 2015-07-0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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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론의 중심에는 보도국이 있다. JTBC <뉴스룸> 보도국에서 '팩트체크' 코너를 맡고 있는 김필규 기자는 '팩트'에 죽고 사는 남자다. 그 남자의 치열한 하루 보고서를 살펴보자. [글 김필규 기자]

[JTBC TOC] '팩트'로 사는 남자, 김필규의 하루 보고서
아침에 일어나 큰애 옷 입히고 밥 먹이고 학교 데려다 주었다. '팩트체커'의 첫 일과다. 와이프의 출근시간이 빨라지면서 내 몫이 되었다. 내 출근 준비도 하려면 정신없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 <뉴스룸> 개편 일이자 '팩트체크' 첫 방송 날이던 지난해 9월 22일 태어난 둘째는 이제 8개월이 됐다. 개편 첫날이라 분만 현장에 못 있은 게 마음에 걸리는데, 기특하게 별 탈 없이 잘 자라주고 있다. 팩트체크처럼 말이다. 아이템의 8할은 당일 발제다. 8분 정도 되는 구성물을 당일 발제하고 당일 취재해 당일 제작하려면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 없다. 이렇게 미리 아이템이 준비된 날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그래도 혹시 오늘 나온 핫 이슈가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출근 후 조간부터 챙긴다. 인터넷 포털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팩트체크는 기존에 나온 소식 중 잘못된 팩트를 잡아내는 코너다. 따라서 온라인상에서 '많이 본 뉴스' '댓글 많은 뉴스'가 주요 검증 대상이다. <20대 취업전쟁 여성 완승?…'통계의 착시'>(2014년9월 23일 방송)<'한국, 일 덜 하면서 돈은 더 받는다'…진실은?>(2014년 11월18일 방송) 같은 꼭지도 이렇게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었던 뉴스를 재 검증해 아이템으로 잡은 경우였다.

[JTBC TOC] '팩트'로 사는 남자, 김필규의 하루 보고서


[JTBC TOC] '팩트'로 사는 남자, 김필규의 하루 보고서
오전 9시에 시작하는 보도국 편집회의. 준비한 아이템을 이 회의에서 발제 한다. 그렇게 해서 채택된 이날의 아이템은 <팬티 차림으로 안마 요구…대법 "무죄" 왜?>다. 사무실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자신은 속옷 차림으로 여직원과 내기 화투를 치던 어느 캐피털 업체 사장이 다리까지 주물러달라고 요구하다 성추행으로 소송이 걸린 사건이었다. 자신의 다리를 여직원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더 이상한 요구를 하기도 했는데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전날 보도가 나가긴 했지만 왜 이렇게 상식과 어긋난 결과가 나왔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었다. '팩트체크' 팀원들끼리의 첫 회의는 오전 11시다. 임경빈 작가, 박수주 작가, 이진우 피디, 그리고 인턴 두 명(현재는 김정현, 설지연 학생)이 또 다른 '팩트체커'들이다. 여기에 그래픽디자인팀의 배장근 디자이너가 팩트체크의 핵심 경쟁력 중하나인 컴퓨터그래픽(CG)을 전담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하는 코너이다 보니 그날 아이템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다음 아이템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게다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체크하다 보니 하루에 접하는 정보량이 만만치 않다. 작가들의 헌신적인 활약이 없이는 방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JTBC TOC] '팩트'로 사는 남자, 김필규의 하루 보고서


[JTBC TOC] '팩트'로 사는 남자, 김필규의 하루 보고서
오전 회의에서는 취재할 포인트와 대략의 구성을 논의한다. 본격적인 취재는 점심 식사 이후부터다. 이날은 판결과 관련된 이슈인 만큼 특히 되도록 많은 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꼼꼼한 취재가 필수다. 판결문 원문을 확보해 몇 번씩 읽어 보고 성폭력특례법과 형법상의 관련 조항도 찾아놨다. 또 이번 판결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여론이 많았던 만큼 눈에 띄는 인터넷 댓글 반응을 확보하는 동시에, 시민들 반응도 직접 인터뷰해보기로 했다. 가끔은 직접 현장을 나가기도 하지만 그러면 항상 제작 시간에 심각하게 쫓기게 된다. 따라서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인턴 기자를 대신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

[JTBC TOC] '팩트'로 사는 남자, 김필규의 하루 보고서
취재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이제 기사의 틀을 잡는다. 그러고는 오후 4시쯤 한 차례 더 회의를 한다. 여기서 기사의 방향을 최종 조율하고 가장 중요한 그래픽 작업을 논의한다. 특히 각종 통계나 연구내용을 인용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이 과정에서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한 회에 들어가는 CG가 보통 10장 이상이다.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상당히 도전적인 이 과정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거기에 본인의 창의성까지 더하는 피디와 그래픽디자이너 역시 팩트체크의 핵심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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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에서 불이 나도록 기사 작성을 마치고 나니 오후 6시 30분. 앵커의 방송 준비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적어도 뉴스 한 시간 전에는 기사 내용을 컨펌 받는다(그러려고 노력한다). 기사를 한번 훑어본 손석희 앵커가 "오케이" 하면 기사 작성은 그것으로 끝이다. 방송 중에는 손 앵커가 무슨 돌발질문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스크립트를 읽는 손 앵커의 표정을 꼼꼼히 지켜본다. 관심 있게 봤거나 혹은 미소 짓거나 농담을 했던 대목을 표시해두고 예상질문을 뽑아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예측은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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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피디와 그래픽 디자이너는 방송에 필요한 영상을 손보고 CG를 만든다. 방송 전 한 번이라도 연습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빡빡한 제작 공정상 리허설은 사치다. 오후 8시쯤 되면 분장을 받으러 가고 작가들은 CG를 최종 점검한다. CG상의 오타, 오류는 치명적이다. '팩트체크'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당장 방송에서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방송 중 CG 오타가 발견됐을 때 앵커가 그 자리에서 지적을 한 적이 있었다. 망신이다.

[JTBC TOC] '팩트'로 사는 남자, 김필규의 하루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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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는 뉴스룸 2부에 들어간다. 조금씩 다르지만 방송 시간은 대개 밤 9시10분쯤이다. 5분 전 스튜디오에 들어가 마이크를 차고 대기하고 있으면 그날 출연하는 초대손님을 직접 볼 기회가 생긴다. 이날의 초대손님은 허영만 화백이었다. 평소 존경하던 인물을 직접 만나 인사하고 가끔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는 것도 팩트체크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이다. "다음은 팩트체크 입니다. 김필규 기자 준비해주세요" 부조에서 진행 PD의 목소리가 들리면 스테이지로 올라가고 손 앵커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당초 개편 때 팩트체크에 배정된 시간은 5~6분이었지만 어느 순간 평균 8~9분으로 늘어버렸다. 취재 내용이 점점 많아지고 구성상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도 하면서 어느새 인가 시간이 길어졌다. 처음 기획할 때는 이 코너가 과연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 비관적이었다. '팩트를 체크한다'는 콘셉트 자체가 논쟁적이고 상당히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기획 단계에서 미국 언론사의 팩트체크 코너를 참고했다. <템파베이 타임스>에서는 '폴리티팩트'라고 해서 정치인 등 유력인사의 발언을 검증하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워싱턴포스트>에도 팩트체크 코너가 있다. 폴리티팩트에서는 결과에 따라 '진실, 반만 진실, 대체로 거짓, 새빨간 거짓'으로 구분돼 있는 게이지를 붙인다. <워싱턴포스트>에서는 검증 결과에 따라 피노키오의 코 길이가 달라진다.

하지만 한국판 JTBC 팩트체크는 이를 그대로 따라 할 수 없었다. 방송이라는 매체 특성도 고려해야 했지만 무엇보다 매일 하는 코너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재를 정치인의 발언으로 한정 짓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넓혔다. 구성도 앵커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자료 조사를 맡길 인턴도 없었다. 회의실이 없어 라면 국물 떨어져 있는 휴게실에 옹기종기 모여 회의를 해야 했다(지금은 전담 인턴도 있고 심지어 사무실도 따로 받았다). 그리고 당초 비관적으로 봤던 것과 달리 어느새 팩트체크는 150회를 향해가고 있다. 가끔 뇌의 용량에 비해 너무 많은 정보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바로 전주, 심지어 바로 전날 무슨 아이템을 했는지 선뜻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벼락치기 공부의 폐해인지 과거에 취재한 정보가 새로 입력되는 정보에 밀려 그대로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그 동안 내보낸 방송 내용을 하나 하나 되돌아보면 보람도 있다. 한국저작권협회에서 감사패를 받기도 했고 한 시민단체의 '이달의 좋은 방송기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인터넷과 SNS상에서 팩트체크를 응원해주는 목소리도 많이 생겼다. 힘이 나는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부분은 여전히 어렵다. 누군가의 잘못된 '팩트'를 바로잡는다는 부담감 때문에, 또 앵커와 직접 이야기를 주고받는 포맷 때문에 대사 한 줄, 단어 하나까지도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방송 중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앵커의 돌발 질문도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요소이다. 실제 이날도 방송 말미에 손 앵커는 "어제 낸 숙제는 왜 안 풀어주느냐"고 불쑥 물었다. 전날 네팔 지진에 대해 다루면서 '최근 10년간 대지진이 일어난 곳'을 표시한 세계지도를 보여줬는데, 그 중 북한이 표시돼 있었다. "북한에서도 대지진이 있었느냐"는 손 앵커 질문에 명확히 답을 못했더니 "내일 다시 알아보라"고 덧붙였는데, 이튿날 방송에서 정말 물어본 것이다. 다행히 진상조사를 해놨던 터라 "북한의 점은 CG 제작상의 실수였고 최근 10년간 한반도에서는(규모 7.0 이상의) 대지진이 없었다"는 답을 즉시 할 수 있었다.

예전에도 "김 기자는 외동아들이냐?" "빨리 가서 설거지해야지." "오늘 아이템은 김 기자 개인 민원 아니냐?"는 등 돌발 질문이 많았다.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팩트체크,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이 말이 앵커의 입에서 나오면 그제야 긴장을 풀 수 있다. 방송이 끝난 뒤 자리 정리를 하고 보도국을 나서면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또다시 잠깐의 짬도 없이 빡빡하게 돌아갈 다음 날 일정을 생각하면 술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다. 술 마시자고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줄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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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맨 정신으로 집에 돌아가면 밤 11시 정도. 아파트에 들어설 때면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옆집 고등학생과 종종 마주친다. 하루 종일 뇌를 혹사하다 지쳐 돌아오는 모습이 나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에 와 혼자 캔 맥주라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잡으면 지난해 언론재단 프로그램으로 방문했던 워싱턴DC의 뉴스 박물관 '뉴지엄(Newseum)'에서 사 온 자석 문구가 눈에 들어 온다. "사람들이 팩트를 알게 하라. 그러면 국가가 안전할 것이다 (Let the people know the facts, and the country will be safe)."- 에이브러햄 링컨. 지금의 생활패턴은 수험생과 별 다를 바가 없지만, '시청자들에게 팩트를 알려주는 이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가' 다소 억지로라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힘을 내본다.

▶ 이날의 '팩트체크'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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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방송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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