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가족들 눈치가 보이는데 명절에는 친척들까지 있으니 더 부담스러워요.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서울 소재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김용범(27)씨는 설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다.
그는 이른바 '대학 5학년'이다. 2년 전 이미 졸업을 해야 했지만 하지만, 아직도 졸업 계획이 없다. 취업이 안 된 상태에서 사회에 나가는 게 두려운 탓이다.
'기업들이 졸업생보다는 재학생을 더 선호한다'는 통념 역시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또 다른 이유다.
그의 하루는 취업을 위한 일정들로 빡빡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영어회화학원에 간다. 이후 오전 10시부터 취업 스터디모임에 참여하고, 오후 1시부터는 2시간짜리 자격증 관련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면 한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영어책과 각종 자격 관련 서적을 끌어안고 취업을 위한 이른바 '스펙 쌓기'에 몰두하다 오후 12시께 애써 잠을 청한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다소 지친 듯 그는 "취업이 이렇게까지 어려울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며 "다른 사람과 대화할 시간도 없고, 웃음을 잃은 지 이미 오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인 그는 일찌감치 귀성을 포기했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그에게 설 명절은 특별하지도 반갑지도 않다지만 가족을 향한 그리움은 여전했다.
강씨는 "가족들이 보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도 부모님께 무작정 손을 벌리고 있는데 취업이 안 돼 부모님을 만날 면목이 없어 고향에 내려갈 수 없다"며 "걱정스러운 마음은 알겠지만, 친척들이 취업과 관련된 질문을 할 때면 곤욕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 2년여간 100곳이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최종 합격통보를 받은 적이 단 한 곳도 없다. 또 학과 동기 40여 명 중 취업에 성공한 동기들은 손에 꼽을 정도란다.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주말마다 편의점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는 빌린 학자금을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 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강씨는 "지금까지 대출받은 학자금만 해도 1000만원이 넘는데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지 생각하면 잠도 안 온다"며 "취직하면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취직도 안되고, 이제는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취업문을 뚫기 위해 학교를 선뜻 떠나지 못하는 청년 구직자들의 시름은 명절에도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