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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플러스 3회]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와 '빅토르 안' 사이

입력 2014-02-23 23:30 수정 2014-03-0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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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소치 동계올림픽이 잠시 후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데요. 이번 올림픽 최고 이슈 중 하나는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 안현수였습니다. 빅토르 안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한번 3관왕을 차지하면서 황제의 귀환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빅토르 안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는데요. 조국을 떠나 러시아로 향한 쇼트트랙 황제 이야기, 탐사플러스가 심층취재했습니다.

[기자]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극기를 들고 환호했던 안현수.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 국기를 흔드는 빅토르 안이 됐습니다.

[러시아 1TV : 빅토르 안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금메달을 땄습니다.]

[빅토르 안/러시아 쇼트트랙 국가대표 : 이렇게 홈에서 러시아 팬 분들에게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어서 너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500m, 1000m, 5000m 계주 3관왕에 1500m 동메달까지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따내며 쇼트트랙 황제는 8년 만에 다시 우뚝 섰습니다.

[이준호/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 심석희 선수는 절대 스피드가 있을 때 안쪽을 잡아 타지 못하고 박승희 선수는 코스 자체가 약간 안쪽을 잡고 타는 스타일 그런데 안현수 선수가 그 두 개를 합친 것 같거든요. 역경을 겪으면서 금메달을 따고 무엇인가 보여줘야 하는 독심까지 합쳐졌으니까 그런 선수를 어떻게 당하겠습니까.]

빅토르 안은 이제 러시아 영웅입니다.

[발레리아 샤벨로바/러시아 : 빅토르 안은 한국인이었지만, 지금은 러시아인이고 우리 대표팀의 영웅입니다. 화이팅!]

[올가 바쉬나/러시아 TV 기자 : (빅토르 안이) 2018년 한국(평창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면 기쁠 겁니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민현주/경기도 양주시 :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다 보니까 아쉬운 게 있어요.]

[장동국/경기도 수원시 : 어쩔 수 없이 러시아로 갈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것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죠.]

아쉬움 속에서도 빅토르 안 개인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정윤수/스포츠평론가 : 러시아를 응원하고 한국을 응원 안 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이 여러 이유가 어찌됐든 간에 자기 삶을 어떻게든 돌파구를 열고 찾아가보려는 한 개인을 성원하는 거죠.]

러시아에서 시작된 빅토르 안 후폭풍은 한국 대표팀의 부진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부메랑이 돼 돌아왔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이후 12년만의 남자 쇼트트랙 노메달 충격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 러시아에 귀화한 안현수 선수는 쇼트트랙 선수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선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감사원은 빙상경기연맹에 대한 예비 감사에 착수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올림픽이 끝난 직후 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비난이 폭주하면서 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는 한동안 접속 불가 상태에 빠졌습니다.

[앵커]

박진규 기자, 빅토르 안, 안현수 선수가 2006년 동계 올림픽에서 3관왕을 했죠. 이후 러시아로 떠난 게 2011년이니까 5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기자]

빅토르 안이 밝힌 가장 결정적인 귀화 이유는 한국에선 마음 편히 운동을 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무릎 부상부터 소속팀 해체까지 이어지면서 시련이 계속 됐는데요, 이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짚어봤습니다.

+++

빅토르 안의 아버지, 안기원 씨는 국내에서의 무관심과 냉대가 가장 아쉬웠다고 말합니다.

[안기원/빅토르 안 아버지 : 여기 있을 때 안현수 시대는 끝났다. 다치고 나서 재활하면서 힘들게 운동하는데 '쟤는 이제 안돼'. 이런 얘길 들었을 때 많이 속상했고, 지도자, 연맹 사람들까지도 '쟤 선수생활은 끝났어' 그러면서 관심도 안 갖고 무관심한 게. (속상했죠.)]

2006년 토리노 올림픽 이후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빅토르 안은 20007년 12월, 역대 최고 대우로 성남시청에 입단합니다.

하지만 이 때부터 빙상연맹과의 갈등이 본격화됐다고 전해집니다.

[이준호/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 안현수와 연맹이 등을 돌렸던 가장 기본적인 것이 실업팀을 들어가면서부터일 거예요. 성남시청에 들어가게 되는데 연맹과 약간 집행부에 계시는 그 분 파벌이 아니었죠. 거기를 가길 원치 않으셨죠.]

현재 빙상연맹 최고 실세로 꼽히는 인물과 빅토르 안이 서로 등을 돌리게 됐다는 겁니다.

[이준호/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 한 분의 너무나 강한, 그 분의 천하가 돼버리니까 누구도 그 분의 눈 밖에 벗어나면은 큰일나죠.]

이후 2008년 1월 태릉선수촌 훈련 도중 뜻하지 않던 무릎 부상이 찾아왔습니다.

[정용철/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 : 부상만 해도 안현수 다치면 안되는 거에요. 미끄러질 수 있잖아요. 미끄러지는 걸 대비해서 펜스에 쿠션을 해야 하는데 그게 다 얼어 있었어요. 그럼 당연히 (무릎이) 나가죠.]

4차례나 계속된 무릎 수술과 기나긴 재활훈련.

빅토르 안은 2009년과 2010년 계속해 대표팀 문을 두드렸지만 부상 후유증에 선발전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속팀 성남시청 해체가 이어졌고 신음하는 쇼트트랙 황제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이준호/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 : 실업팀이 너무 모자라요. 어느 정도 인원이라는 게 있고, 현수를 처리 못할 정도로. 현수 정도면 처리할 수 있어야죠.]

[정용철/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 : 우리는 금메달만 보고 한 선수의 영웅담만 보지 선수들이 처해있는 상식 이하의 현실에 대해서 비겁하게 눈을 감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빅토르 안은 2011년 4월 마지막 대표 선발전을 끝으로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낸 러시아로 향하고 맙니다.

4위까지 뽑히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5위를 했습니다.

빅토르 안은 처음엔 러시아행을 완강히 거부했다고 합니다.

[안기원/빅토르 안 아버지 : 제가 현수 설득 시키는 데 1년 걸렸어요. 현수는 안 간다고 그랬어요. 제가 다 연결한 거예요. 러시아 연맹 회장님하고도 제가 연결돼서 한 거죠.]

아버지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결정한 러시아행이지만 빅토르 안은 출국 2개월만에 스스로 귀화를 신청했습니다.

[안기원/빅토르 안 아버지 : (귀화하는) 그 결정은 현수가 했어요. 저는 해라 마라 관여하고 싶지 않고, 현수가 원하는 대로 러시아 가서 맘껏 하라고 했지.]

러시아는 쇼트트랙 황제를 만족시켰습니다.

[빅토르 안 (지난해 4월 당시) : 제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배려도 굉장히 많이 해주고, 치료적인 부분도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멀리 봤을 때 제 몸 상태도 그렇고 나를 더 신경 써줄 수 있고, 나를 그래도 믿고 해 줄 수 있다는 거에 되게 큰 요인을 한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생각을 (귀화) 결정을.]

이후 착실히 기량을 끌어올린 빅토르 안은 제 2의 전성기를 활짝 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체육계가 안현수를 빅토르 안으로 만든 거라고 진단합니다.

[정용철/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 : 환경 자체가 열악한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바꿀까 고민보다는 이 선수가 안되면 대체 가능한 다음 선수 치고 올라오는 애들 뽑아서 집어넣고.]

그리고 빅토르 안으로 인해 체육계 구조 전반에 대한 개혁의 기회가 왔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체육계는 개혁의 화두에 불이 붙다가도 당장 좋은 성적이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슈가 묻혀버리는 상황을 반복해왔습니다.

[정윤수/스포츠평론가 : 안현수 선수도 잘 했으면 좋겠지만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좀 따고 이런 훈훈한 이야기로 그칠 얘기가 아니다. 이 문제는 한국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들어낸 사건으로 봐야 하는 것이지.]

떠나는 결정은 어려웠지만 이후 한국에 대한 미련은 빨리 털어내게 됐다는 빅토르 안의 말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빅토르 안 (지난해 4월) : 타지에 나가서 힘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귀화 결정이) 쉽진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여기서 해보고 싶었고 (귀화) 그런 결정을 하고 나서는 여기에 대한 미련이 많이.]

[앵커]

이번 일을 계기로 반짝 관심에 그치지 말고 우리 체육계에 근본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할텐데요.

[기자]

빅토르 안의 사례처럼 선수를 내쫓듯이 다른 나라에 보내는 일이 또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죠.

[앵커]

네. 박진규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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