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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삼국지] 오호장군 황충은 노장인가?

입력 2013-09-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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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삼국지] 오호장군 황충은 노장인가?`삼국지연의`는 촉한의 오호장군인 황충이 74세에 하후연을 베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황충은 유비나 관우나 비슷한 또래거나 그 이하로 추정된다.


촉한의 *오호장군 중 하나인 황충은 전국시대의 노장 *염파와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노익장으로 꼽힌다. '삼국지연의'에서 황충은 처음부터 머리가 허연 노장으로 등장한다.

적벽대전 이후 형주를 차지한 유비는 관우·장비·조운을 나누어 보내어 무릉·장사·계양·영릉 등 강남 4개 군을 정벌하게 한다. 관우가 장사를 공략하자 장사태수 한현이 완강하게 저항한다. 이때 등장하는 장수가 노장 황충이다. 한현의 부장 황충은 천하의 맹장인 관우와 일대일로 맞서 대등하게 접전을 벌인다. 심지어 화살로 관우의 얼굴을 맞힐 수 있었음에도 황충은 일부러 투구 끈만 쏘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이상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실이 아닐뿐더러 여러 가지 오류가 섞여 있다. 첫째 정사에는 유비가 관우·장비·조운 등을 보내 강남 4개 군의 항복을 받아내었다고 돼 있을 뿐 구체적으로 누가 어느 성을 공략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관우가 과연 장사군을 공략했는지조차 불분명하고 황충과 일대일 대결을 벌인 일도 없다.

'삼국지연의'는 이때 이미 황충의 나이가 육순이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 황충이 나이 육십이 넘어 관우와 대결을 벌였다면 그로부터 10년이 넘어 사망할 무렵이면 나이가 무려 70을 한참 넘기게 된다. 그래서 '삼국지연의'는 황충이 75세의 나이에 죽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여러 자료를 찾아보아도 황충이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에 관한 기록이 없다.

'삼국지연의'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황충은 서촉정벌전 당시 65세의 나이에 탁응·위연 등 젊은 소장파 장교들과 함께 유비군의 선봉에 서서 무려 3년 동안이나 맹활약을 했다. 이때 황충의 용맹의 삼군의 으뜸이었다 한다. 게다가 황충은 74세의 나이에 병사들의 선두에서 돌격을 감행해 하후연을 참수했다. 아무리 노익장이었다지만 상식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서촉과 한중 정벌전에는 당시 유비 진영의 최고 명장들인 장비와 조운·마초가 종군했다. 그런데 이런 맹장들을 다 놔두고 황충이 위연 등과 함께 선봉을 섰던 이유가 무엇일까. 통상적으로 돌격의 선봉은 군대 내에서 비중이 높지 않으면서도 젊고 용맹한 장수들이 맡는다. 이를 고려한다면 황충 역시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는 손책이 죽기 전 즉, 건안5년(200년) 이전에 이미 장수로 활약한 바가 있다. 황충이 유표의 조카 유반의 휘하에 있으면서 예장군 해혼을 자주 침략했으므로 손책이 태사자를 보내 제압했다. 이때 황충의 나이는 20~30대를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에 활약했다는 어떠한 기록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황충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유비나 관우와 비슷한 또래였거나 10년 정도 아래였을 것이다.

그러면 '삼국지연의'의 저자는 어떤 이유로 황충을 이처럼 노장으로 묘사했을까. 실제로 전성기의 황충은 충분히 노장이었을 수도 있다. 유비·관우와 비슷한 나이였다면 황충이 서촉과 한중에서 맹위를 떨칠 당시에는 이미 오십 줄에 들어섰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만년에 활약을 펼쳤기에 노장이라는 칭호가 붙었을 것이고 여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이야기꾼들이 과장을 덧붙이다 보니 무려 70대의 노장이라는 이미지가 생성됐을 것이다.

[불편한 삼국지] 오호장군 황충은 노장인가?황충을 오호장군으로 봉한 촉한의 수도였던 중국 사천성 성도의 남쪽에 자리한 낙산대불. 능운산을 통째로 파내 조각한 높이 62m의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영웅의 이면] 관우, 급히 황충에 대한 불만을 거둬들이다

유비가 한중왕에 즉위하고 관우를 전장군, 황충을 후장군에 임명했다. 관우와 황충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관우가 이를 쉽게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를 예상한 제갈량은 유비를 만류하려 들었다.

"황충의 명망이 평소 관우나 마초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급으로 발령을 내셨습니다. 마초와 장비는 가까이 있으면서 직접 그의 공을 보았기에 주상의 뜻을 이해할 것입니다만, 관우는 멀리서 소문만 들었을 뿐이므로 반드시 불만스러워할 것이 염려되니 불가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유비가 대답했다.

"내가 다 알아서 하겠소."

유비가 비시라는 관리를 관우에게 사자로 보냈다. 비시는 유장 시절 면죽현령을 지내다가 유비가 면죽을 공격했을 때 이엄과 함께 성을 들어 항복했던 사람이었다. 제법 담력이 있고 언변이 좋았다.

비시를 본 관우는 자신이 전장군이 되고, 황충이 후장군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는 과연 화를 벌컥 냈다.
"대장부는 끝내 늙은 병졸과 동렬에 있을 수 없다!"

관우는 유비가 수여한 관직을 거부하려 들었다, 비시가 설득했다.

"대저 왕업을 이룬 자가 사람을 임용하는 방식은 반드시 한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옛날 소하와 조참은 한고조와 어려서부터 친구였으나 진평과 한신은 망명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반열을 정할 때 한고조가 한신에게 가장 높은 지위를 주었으나 소하와 조참이 이로 인해 원망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한중왕이 일시의 공으로 황한승에게 높은 지위를 주었지만 경중에 있어서 어찌 군후와 나란할 수 있겠습니까! 또 왕과 군후께서는 마치 한 몸과 같아서 동고동락하며 화복을 함께 합니다. 어리석은 제가 보건대 군후께서 관직과 호칭의 높고 낮음과 작위와 녹봉의 많고 적음을 따져 염두에 두고자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는 일개 사자로서 명을 전달하는 사람에 불과하므로 군후께서 임명장을 받지 않으시면 그냥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단지 왕과 군후가 이와 같은 행동으로 인해 서로 사이가 벌어진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까 염려될 뿐입니다!"

관우가 발령을 거부하면 심부름꾼인 비시는 그대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다만 관우가 발령을 거부한다는 것은 바로 유비와의 결별을 의미했다. 이런 사소한 문제로 유비와의 오랜 인연을 깨겠느냐 하는 것이 비시의 논지였다. 관우는 곧바로 임명장을 받았다고 한다.


[거짓말 벗겨보기] 황충은, 전사가 아니라 자연사 했다.

'삼국지연의'는 황충이 유비의 동오정벌에 종군했다가 이릉싸움에서 죽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다. 황충은 유비가 한중왕이 된 이듬해인 건안25년(220년)에 죽었다. 반면에 이릉대전은 장무2년(222년) 발생했다. 2년 전에 죽은 사람이 전쟁에 참전한 셈이다. 의도적 조작의 결과이다.

'삼국지연의'의 작가는 유비가 관우가 죽은 즉시 원수를 갚기 위해 동오를 정벌했다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도원결의의 의리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유비는 관우가 죽은 후 2년이 지나서 동오를 정벌했다. 한중왕이 되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황충이 동오정벌에 참전했다는 것은 유비가 즉시 관우의 보복에 나섰다는 주장을 보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장치일 뿐이다. 청나라 때 황충의 무덤이 성도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그는 자연사했을 것이다.

풀이
*오호장군=관우·장비·조자룡·황충·마초
*염파=나이 여든에도 한 말 밥에 고기 열 근을 먹으며 조나라를 지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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