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감독의 울산은 지난 3일 '2017 KEB하나은행 FA컵' 정상에 올랐다. 결승 1차전 부산 아이파크와 경기에서 2-1로 승리한 뒤 2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1, 2차전 합계 1승1무로 우승을 차지했다. 1983년 울산 창단 뒤 첫 FA컵 우승 그리고 김 감독 최초의 우승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우승의 영광보다 실패했던 과거를 먼저 떠올렸다. 2015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한 뒤 FA컵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하지 못했고 이듬해에 중도 사퇴했다. 이런 과정을 실패라고 정의했다. 그는 '실패한 감독'을 믿어 준 구단과 선수 그리고 팬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하루 뒤인 지난 4일 울산 일산해변에서 일간스포츠와 단독인터뷰에 응한 김 감독은 지도자 인생뿐 아니라 축구 인생 전체를 돌아봤다.
선수 김도훈은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였다. K리그에서 각종 득점 기록을 갈아 치운 폭격기. 또 1999년 한국 대표팀의 처음이자 마지막 브라질전 승리 결승골(1-0 승)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공격수의 인생을 산 것처럼 보였다.
김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말하는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거듭된 실패 속에서 더 단단해졌다. 발전하는 법을 배웠다.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던 이유다.
지금의 김도훈을 존재하게 만든 가장 큰 힘, 바로 '실패'다.
◇프로팀 입단 연기
연세대를 졸업한 김도훈은 군 입대를 결정했다. 1993년 상무에 입단한 것이다.
프로가 아닌 상무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프로에 가서 존재감을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상무에 간 것이 내 축구 인생의 전환점이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 나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월등하게 잘하지도 못 했다. 드래프트에 지원했다면 어떤 팀도 갈 수는 있었겠지만 프로에 자신이 없었다. 상무에서 2년 동안 몸을 만들고 성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말 운동을 열심히 한 기억이 난다. 유도와 레슬링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처럼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했다. 그러자 공격수로서 발전할 수 있었다. 실업대회에서 우승했고,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득점왕을 했다.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우크라이나와 데뷔전 오버헤드킥 골도 터뜨릴 수 있었다."
◇전북에서 주춤
상무에서 김도훈은 소위 말해서 '떴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공격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1995년 프로팀에 입단했다. 김 감독의 첫 팀은 전북 현대였다. 이곳에서도 성공은 없었다.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전북에 전체 1순위로 입단했다. 지금 전북은 명문팀이지만 당시에는 정말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 여인숙에서 잠을 자던 시절이었다. 어렵고 소외받던 선수들이 모인 곳이었다. 전북에서 악착같이 경기를 뛸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배웠다. 강하게 클 수 있었다. 그런데 전북에서는 유독 많이 다쳤다. 1년에 한 번씩은 큰 부상을 당한 것 같다. 데뷔 해에도 후반기에 크게 다쳐 친구인 전남의 (노)상래에게 많이 밀렸다. 그래도 2000년에 전북에 돌아왔을 때 K리그 득점왕, FA컵 우승 등을 일궈 냈다. 지금 전북이 명문으로 도약하는 데 있어 내가 조금은 도움을 준 것 같다."
◇비셀 고베의 아쉬움
1998년 일본 J리그 비셀 고베로 임대 이적했다. 이곳에서 사실상 김도훈의 전성기가 열렸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욱 크다.
"선배들이 J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놔 내게도 기회가 왔다. 시작은 좋았다. 1년 차 때 17골을 넣었다. 득점 상위권에 랭크됐다. 하지만 그 다음 해에 다쳤다. 10골에 그쳤다. 2년 계약이 그렇게 끝났다. 계약상 전북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제 J리그에 적응했고, 방법을 알았고 언어도 익숙해졌는데 돌아가야만 했다. 1년만 더 있었다면 더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J리그 득점왕에 한번 오르고 싶었다."
◇성남에서의 찰나
2003년 김도훈이 성남 일화(현 성남 FC)로 이적하자 성남은 K리그 최강의 팀이 됐다.
김도훈은 그해 성남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K리그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는 최초의 선수가 됐다. K리그 한 시즌 최다골(28골) 기록도 이때 세운 것이다. 이 기록은 2012년 데얀(36·FC 서울)이 31골을 넣으며 깨졌다. 성남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김도훈의 눈은 아쉬움으로 향했다.
"정말 좋은 시기였던 것은 맞다. 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다는 것이 아쉽다. 딱 한 시즌으로 끝났다. 2003년은 성남이 3연패를 한 마지막 해다. 이 멤버가 다음 해에 같이 갔다면 더욱 최강의 팀으로 군림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4년 11명이 팀에서 나갔다. 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에서 조연
대표팀 김도훈 하면 실패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오버헤드킥과 브라질전 결승골 등 몇몇 장면이 떠오르지만 대표팀 전체 인생을 봤을 때 성공적으로 볼 수 없다. 김 감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팀의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경험이 많이 없다. 기회도 많이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황)선홍이 형과 (최)용수가 대표팀에서 나보다 더 많은 활약을 해냈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대표팀 인생을 완전한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표팀에서도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대표팀의 아쉬움을 K리그에서 만회하고자 더 독을 품고 했다. 그 결과, 리그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프랑스월드컵 참패
김도훈은 1998 프랑스월드컵 실패의 중심에 섰다.
조별리그 1차전 멕시코전, 2차전 네덜란드전에 선발 출전했고, 참패를 막지 못했다. 공격수로서 골도 넣지 못했다.
"나를 향한 비난은 모두 인정했다. 내가 골을 넣지 못했고 팀이 졌기 때문이다. 힘든 시간이었다. 멕시코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네덜란드전에서는 옆그물을 때렸다."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차범근(64)을 향한 '마녀사냥'이었다.
"차 감독님이 노력한 것이 많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정말 처참했다. 선수로서 감독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가 안 좋으니 소문도 많이 났다. 나에 대한 나쁜 이야기들도 들렸다. 나는 상관이 없었다. 한국 축구의 영웅인 차 감독님을 보호하지 않고 희생양으로 만든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지금 지도자가 된 김 감독. '차붐'이 선수를 먼저 생각하는 진심에 감동했다. 그가 지금 자신의 선수들에게 전하는 진심이다.
"프랑스월드컵 당시 차 감독님이 집중 포화를 맞았다. 본인이 가장 힘들었겠지만 선수들을 먼저 챙겼다. 작년에 차 감독님과 식사 자리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월드컵 이야기가 나오면서 감독님이 내게 '(김)도훈아, 네가 많이 힘들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뭉클했다. 차 감독님은 지금까지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두고 있었다."
◇한일월드컵 시련
2002 한일월드컵의 최종엔트리 탈락은 김도훈 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다. 거스 히딩크(71) 감독은 김도훈을 외면했다.
"정말 힘들었던 시기다. 나는 2002 한일월드컵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홈에서 하는 경기고 1998년의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리그에서도 분위기가 좋았다. 골도 많이 넣고 있었다. 하지만 탈락했다.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고통이 심했다. 내가 히딩크 감독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소문 등이 돌기 시작했다. 그런 일은 없었다."
지금은 상처가 아니다. 되돌아보면, 또 지도자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면 다른 결론이 도출됐다.
"지도자를 하면서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다. 팀의 성공을 위해 손해 보는 선수는 언제나 나오기 마련이다. 결과가 좋을 때는 선택이 옳은 것이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문제가 된다. 2002 한일월드컵은 성공적이었다. 따라서 히딩크 감독의 선택이 옳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의 좌절과 실패를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었다."
히딩크 감독이 전해 준 교훈은 결국, '감독 김도훈'의 큰 자산이 됐다.
"나 역시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다. 팀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 내가 확실히 선택해야 하고 선수들도 받아들여야 한다. 훈련장에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내 판단이 항상 옳지만은 않다.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이 내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줬으면 좋겠다. 이런 선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내 판단이 틀린 것을 인정하고 그 선수를 경기에 출전시킬 것이다."
◇공격수 후계자의 부재
선배 공격수로서 한국 축구 공격수 계보를 이을만한 선수들의 맥이 끊기고 있다.
모든 클럽팀, 대표팀에서도 공격수 부재가 가장 큰 문제다. 왜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일까. 김 감독은 유소년에서 문제를 찾았다.
"(이)동국이 뒤를 잇는 공격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공격수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것도 있어야 하지만 오랜 기간 훈련이 필요한 포지션이다. 요즘 유소년과 학원스포츠를 보면 선수들이 공격수를 선호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유소년 지도자들이 너무 빨리 미래 포지션을 확정하는 측면이 크다. 공격수 자질을 가진 선수들을 발굴하고 꾸준히 발전시키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 유행이 바뀌었다. 우리 때만 하더라도 최순호, 황선홍 등을 보면서 공격수 꿈을 키워왔다. 지금은 박지성이 롤모델이다. 해외 진출을 위해서라도 공격수보다는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용이한 점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또 K리그에서도 외국인 선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외국인과 한국 공격수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어린 선수들에게 공격수에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코치로서 미흡
김 감독은 2005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바로 성남 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강원 FC 코치, U-19 대표팀 코치 등을 지냈다. 코치로서는 아쉬움이 더욱 크다.
"코치 생활을 오래 했다.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 역할에 충실했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미흡한 부분이 많다. 성남, 강원, U-19 대표팀 등 각각 다른 고충이 있었다. 좋은 팀에 좋은 전력을 갖춘 팀에도 있어 봤고, 도민 구단의 환경적인 어려움도 경험해 봤다. 대표팀에서 토너먼트의 어려움도 느꼈다. 이런 모든 경험들이 지금 감독 생활을 하는 데 기반이 됐다. 코치로서 실패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토대로 다음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공격 축구 실망
한국 대표 공격수 출신의 감독이 공격 축구에 성공하지 못했다.
시민구단 인천 감독으로서 공격 축구는 힘들 수 있다. 역습에 집중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우승을 노리는 '명가' 울산에서는 공격 축구가 필수다. 울산팬들이 바라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 시즌은 실망스럽다. 울산은 리그에서 42골을 넣었다. 상위 스플릿 꼴찌이자 K리그 전체로 봐도 울산 뒤에 3개 팀뿐이다.
"많은 골을 넣지 못한 것은 인정한다. 공격력도 약했다. 그렇지만 아직 실패로 단정 지을 순 없다. 울산의 첫 시즌에 과도기를 거쳤다고 생각한다. 1년 만에 힘든 부분이 있었다. 공격 시도는 많았지만 결정력이 낮았다. 공격 축구는 지속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일이다. 울산은 그렇게 해야 한다. 난 공격수 출신이다. 공격 축구를 하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점차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도전적으로 나갈 것이다."
◇ACL 악몽
올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는 악몽이었다.
전북이 ACL 출전권을 박탈당해 갑작스럽게 출전한 ACL이다. E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에 0-4로 완패를 당하기도 했다.
"급하게 ACL을 준비한 것도 있다. 조직력을 갖추기 전에 참가한 대회여서 흔들렸다. 하지만 내년에는 달라질 것이다. 확실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큰 대회는 약점을 감출 수가 없다. 바로 약점이 노출된다. ACL을 위한 스쿼드를 구성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해서 나가는 대회다. 우승을 목표로 삼고 나설 것이다.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여 줄 선수들을 모을 것이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실패가 쌓은 산이 성공으로 변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확실한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은 김 감독. 그가 그리고 있는 '성공한 지도자'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성공을 한 번 했으면 또 다른 성공을 위해 도전하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 열정이 중요하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님처럼 열정을 놓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감독이 성공한 지도자라고 본다. 열정이 없어지면 물러나야 한다. 열정을 돋우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있다. FA컵 우승의 기쁨은 끝났다. 내년 구상에 들어갔다. 다음 행복을 위해 도전할 것이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지도자가 성공하는 지도자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것이다. 그래서 내게 성공은 영원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