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넘게 아시아 축구를 양분하며 숱한 명승부를 펼친 한국과 일본. 신태용(46)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이 31일(한국시간) 도하에서 당한 충격적인 역전패는 한일 축구 역사에서 두고 두고 회자될 것이다. 올드 팬들이 이번 '도하의 비극' 만큼 원통하게 생각하는 한일전이 있다. 1967년 9월 도쿄에서 열린 1968멕시코시티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이다.
한국은 반드시 이겨야했던 일본과 경기에서 3-3으로 비기며 올림픽 티켓을 내줬다. 종료직전 김기복(72) 한국실업축구연맹 부회장이 때린 회심의 중거리슛이 크로스바에 맞고 나와 눈물을 삼켰다. 일본은 이듬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일전 축구로 떠들석했던 1월의 마지막 주간이었던 29일, 대한축구협회에서 당시 대표팀 주역이었던 김정남(73) OB 축구회장, 크로스바 슛의 주인공 김기복 부회장을 만났다.
◇혈투 끝 3-3
김기복(좌) 김정남(우)의 선수시설 모습 IS포토
멕시코시티 올림픽 최종예선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자유중국(대만), 베트남, 레바논, 필리핀이 참가했다. 풀리그를 벌여 1위만 멕시코로 갈 수 있었다.
한국은 모든 것이 불리했다.
일본은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위해 오래 전부터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대회 장소도 일본의 심장부 도쿄였다. 일본은 당대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라 불렸던 가마모토 구니시게(72)를 앞세워 탈아시아를 부르짖고 있었다. 김기복 부회장은 "도쿄에 도착해 공항에서 호텔로 버스를 타고가는데 일본 사람들이 죄다 손가락 세 개를 흔들었다. 일본이 3-0으로 이긴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로 일본의 자신감이 대단했다"고 기억했다.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3연승을 거두고 4차전에서 맞붙었다.
사실상의 결승이었지만 한국이 더 절박했다.
일본은 그 전에 필리핀을 15-0으로 이겨 골득실이 +21, 한국은 +7이었다. 한일전 뒤 마지막 대진은 한국-필리핀, 일본-베트남이었다. 한국은 일본과 승점이 같다면 마지막 경기에서 일본이 베트남을 이긴다고 가정할 때 필리핀을 15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한국은 일본에 무조건 이겨야 했다.
1967년 가을 동대문구 이문동 중앙정보부 운동장에서 당시 대표팀 주축이었던 양지팀축구단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김기복 부회장(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4번째), 김정남 회장(10번째)의 모습이 보인다. 축구자료수집가 이재형씨 제공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국은 전반 13분과 37분 잇따라 골을 내줬다. 타임머신을 거꾸로 돌린 듯 31일 도하에서 신태용팀이 2-0으로 일본을 리드했던 것과 정반대 경기가 49년 전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김 부회장은 "진짜 3-0으로 지는 건가 싶어서 아찔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도하에서 일본이 불굴의 정신력으로 2골을 따라붙은 것처럼 한국도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이회택과 허윤정이 후반에 내리 득점을 작렬해 동점을 만들었다. 김정남 회장은 "한일전에서는 늘 실력 이상의 무언가가 발휘된다"고 했다.
일본에는 가마모토가 있었다.
김기복 부회장은 가마모토에 대해 "장신이고 빠른 발, 헤딩도 좋은 포워드로서 다 갖춘 선수였다. 일본에서 영웅 대접을 받을 만한 실력의 소유자였다"고 인정했다. 한국은 가마모토를 봉쇄하기 위해 최고의 수비 콤비였던 김호를 스토퍼, 김정남을 스위퍼로 세워 이중 마크했지만 후반 25분 결국 세 번째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김 부회장은 "어렵게 2-2가 됐는데 곧바로 2-3이 됐다. 축구 흐름상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주저 앉아야 정상이다"고 했다.
하지만 한일전이었다. 그냥 질 수 없었다. 한국은 2분 뒤 허윤정의 득점으로 기어이 균형을 맞췄다.
◇통한의 크로스바
1967 멕시코 예선 한일전 사진 설명 : 일본 도쿄에서 열린 멕시코 올림픽 아시아예선 한국과 일본의 경기. 대한축구협회 제공
종료직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통한의 크로스바 슛이 나온다.
당사자인 김기복 부회장의 회고다.
"3-3이면 지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결사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이회택이 치고 나가는 걸 일본 수비가 막았는데 볼이 내 앞으로 흘렀다. 정면에 전광판 시계를 보니 이미 45분이 지났다. 바로 옆 심판을 힐끗 봤더니 휘슬을 입에 막 갖다대려 했다."
김 부회장 앞은 텅 비어 이었다. 치고 나가면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 부회장은 한 번 더 드리블하면 심판이 휘슬을 불어버릴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평소 킥에 자신있었던 그는 페널티 박스 밖에서 중거리슛을 때렸다.
왼발에 공이 맞는 순간 '이건 골이다' 싶었다.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일본 골문으로 날아갔다. 김 부회장은 슛을 날린 뒤 냅다 골문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한국을 외면했다. 볼은 골대를 강타한 뒤 쇄도하던 김 부회장 뒤로 떨어져버렸다. 심판은 기다렸다는듯 휘슬을 불었다.
한국 팬들에게 한으로 남은 김기복 부회장의 벼락같은 슛은 일본에게는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김 부회장은 "선수 은퇴하고 일본에 가서 명함을 주면 그 때 올림픽 예선을 기억하는 일본 사람들이 많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필리핀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 한국은 필리핀과 마지막 경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필리핀을 15골 차 이상으로 이기면 올림픽행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은 희한한 전술로 맞섰다.
김정남 회장은 "킥오프를 필리핀이 먼저 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에게 볼을 툭 차 주더니 11명이 자기 골대 안으로 들어가더라. 정말 황당했다"고 기막혀 했다. 김기복 부회장도 "내가 볼을 몰고 가는데 11명이 다 뒤로 물러났다. 프리킥을 차는 것처럼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몇 발 물러서 슛을 때리고 그랬다. 세계 축구에서 그런 전술은 없었다"고 허탈해했다. 한국은 필리핀을 상대로 5골 밖에 넣지 못했다. 일본이 베트남을 1-0으로 이기면서 멕시코행 티켓을 땄고 한국은 골득실 차로 2위로 밀렸다.
필리핀은 일본전에서는 정상적으로 경기를 해 15골을 허용해놓고 왜 한국을 상대로만 극단적인 수비를 펼쳤을까.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의문이다. 김정남 회장, 김기복 부회장도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도 궁금할 뿐이다"고 말을 아꼈다.
◇한일전의 역사는 도돌이표
가마모토의 일본은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열도를 흥분에 빠트렸다.
일본의 선전은 한국에 큰 자극이 됐다. 김 부회장은 "일본의 동메달을 보며 좌절감을 느끼기보다는 일본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44년 뒤 2012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한일은 또 맞붙는다. 홍명보(47)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0으로 승리하며, 한국축구 사상 첫 동메달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처럼 한일전의 역사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는 도돌이표다.
때로는 승리의 환희를, 때로는 패배의 아픔을 줬던 한일전은 31일 거짓말같은 역전패를 당한 신태용팀에게도 좋은 교훈이다. 김 부회장은 "한일전 패배는 끝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좋은 경쟁 상대다. 서로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왔다. 신태용 감독도 이번 패배를 밑거름 삼아 리우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둬줬으면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