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아티클 바로가기 프로그램 목록 바로가기

어느 심판의 심경 토로 "요즘은 야구장이 두렵습니다"

입력 2013-07-01 08:04
크게 작게 프린트 메일
URL 줄이기 페이스북 X

어느 심판의 심경 토로 "요즘은 야구장이 두렵습니다"


프로야구가 또 심판 판정 때문에 시끄럽다. 지난달 29일 대구 경기에서 선동열(50) KIA 감독은 '4심 합의 판정 번복'에 불복해 선수들을 그라운드에서 철수시켰다. 이튿날인 30일 선 감독은 "심판들도 각성해야 한다"고 작심한 듯 쓴소리를 했다. 심판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야구위원회(KBO)심판위원은 30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요즘은 경기장 가는 길이 두렵다"고 했다.

"나는 프로야구 심판입니다. 푸른 그라운드, 그 위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포함돼 있다는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 심판복을 입은 후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야구가 참 좋습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 속에서 꼬박 네 시간을 버티는 날도 있고, 파울 타구나 투수의 강속구에 얼굴을 맞을 때도 있지만 심판직을 향한 열정은 변하지 않네요.

그런데 요즘 들어 경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야구장 가는 게 무섭다, 두렵다'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최근 프로야구에 불고 있는 판정 논란 때문입니다. 지난달 15일 LG-넥센전 2루 오심이 시작이었죠. 조종규 심판위원장이 넥센 더그아웃을 찾아가 고개를 숙인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3일에는 심판이 새로 바뀐 투수 교체 규칙을 숙지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심판이 오심을 했거나 규정을 몰랐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심판은 명예직입니다. 팍팍한 출장 일정과 고단한 생활이 반복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깨끗하고 분명한 판정을 내린다는 자부심으로 삽니다. 그러나 '오심 심판', '자질 부족'으로 낙인찍힌 심판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비난까지 감내하고 있습니다. 연봉이 줄어들고, 고과 점수가 깎이는 것보다 더 큰 아픔입니다.

악재가 겹쳐서 오더라고요.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KIA전에서 '4심 합의 판정 번복'이 있었지요. 문제가 된 배영섭의 노바운드, 원바운드 캐치 여부는 야구규칙에 따라 판정 번복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오심을 했는데 바로 잡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실수를 해도 손가락질을 받고, 실수를 바로 잡아도 욕을 먹는 상황…. 누구의 어필도 받아들이지 않고 처음 판정에 따라 밀어 부치는 게 옳은 걸까요. 감히 말씀드립니다. 관중들은 돈을 내고 경기장에 오십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경기는 계속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처음 심판이 됐을 때 선배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는 경기장에 나갈 때마다 기도를 한다. '오늘도 무사히'라고." 택시 기사들이 운전대 옆에 붙여두는 문구입니다. 심판들도 똑같습니다. 오심없이 경기를 무사하게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제 동료들은 요즘 경기장에서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이상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판정 말고도 출장 불가 선수까지 경기에 나오면서 신경써야 할 일들이 더 늘어났습니다. 오심이나 실수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 드립니다. 하지만 심판도 사람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스포츠도 100%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정정당당한 승부, 완벽한 판정을 향해 땀을 흘리는 심판들의 노력을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서지영 기자 saltdoll@joongang.co.kr
광고

JTBC 핫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