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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397. 영원우표

입력 2015-05-2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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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3일 후암선원 가족들은 정읍에 간다. 고 차일혁 경무관의 영원우표 발행 기념식을 정읍에서 갖기로 한 것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보훈처에서 우정사업본부와 함께 6·25 전쟁 영웅들의 숭고한 호국보훈정신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로 '영원우표'를 발행하는데, 선친도 전쟁영웅 10인에 선정되어 영원우표에 길이 얼굴을 남기게 됐다.

영원우표란 미국 등 우표 선진국에서 널리 발행하고 있는 우표로 영원한 전설로 불리는 인물을 영원히 추억하고 기억하는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설의 투수 최동원 선수의 영원우표가 발행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영원우표가 발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칠보발전소 탈환으로 선친께서 6·25 전쟁사에 기념비적 승전보를 울린 정읍에서 우표발행 기념식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6월 3일 정읍으로 기념식 장소가 결정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1951년 1월 6·25 전쟁 중 대한민국 유일의 수력발전소인 칠보발전소가 빨치산 2500여 명에게 포위됐다. 그들은 칠보발전소를 거점기지로 빨치산 세력을 확장시킬 계획이었다. 칠보발전소가 빨치산에 포위되어 남한 일대의 송전이 자칫 끊어질 상황이 되었지만 군은 후방으로 병력을 보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군은 전북도경 18전투경찰대대에 출동을 요청했다.

선친은 칠보발전소로 향했다. 105명의 대원을 데리고 출발한 18대대는 도중에 차가 고장 나 30명이 내려 싸울 수 있는 병력은 75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칠보발전소뿐만 아니라 그 일대 전체가 빨치산에게 모두 넘어간 상태였다. 2500대 75, 이 불가능한 전투를 선친께서는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사용, 승리로 이끌었다.

6·25 전쟁 중 위험하지 않은 전투가 있었겠냐마는 선친도 전투 중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었다. 선친이 있는 진지로 박격포탄이 날아와 떨어진 것이다. 대원들 모두 선친이 돌아가신 줄 알았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그 박격포탄은 불발이었다. 전쟁 중에는 생사의 순간이 오가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모름지기 천운이 따라줘야 한다.

후암 가족들에게 이번 정읍여행은 여느 여행과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흑산도 여행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무사히 다녀오겠죠? 그때 관광버스가 사고가 날 뻔해서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지난 4월 흑산도 여행 당시 30여 명을 태운 3호차 관광버스가 고개를 오르다 큰 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큰 사고가 난다는 것은 버스에 탄 사람 모두가 운이 나빴다는 얘기다. 만약 단 한 사람의 운 좋은 사람만 버티고 있어도 사고는 나지 않는다. 3호차가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차에 탄 사람들 중 누군가가 큰 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학로 후암선원에는 3호차 탑승객을 중심으로 기도가 한창이다.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기도에 나오고 있다. 그들 덕분에 정읍에서 열릴 영원우표 기념식도 무탈하게 잘 치러지리라 믿는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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