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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사람] "김정은, 어릴 때부터 스포츠광…승부욕 강해"

입력 2013-12-13 18:16 수정 2013-12-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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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과 피의 숙청 병행…전근대적 서구화
-유학파 독재자…자기 사고수준서 맘대로 통치

■방송 : JTBC 정관용라이브 (15:00-16:30)
■진행 : 정관용 교수
■출연진 : 안형환 전 새누리당 의원, 이가영 기자, 남궁욱 기자

◇정관용-이번 코너는 매주 금요일 꾸며드리는 주목 이 사람 코너입니다. 지난 한 주 사람들 시선 가장 많이 모았던 뉴스 주인공들 풀어보는 시간이죠. 방송기자 출신의 안형환 전 의원 어서 오십시오.

◆안형환-네, 안녕하십니까?

◇정관용-중앙일보 법조팀 이가영 기자, 어서 오십시오. 정치부의 남궁욱 기자 어서 오십시오.첫번째 인물 그냥 바로 판넬을 보도록 하죠. 피의 숙청, 김정은 그리고 장성택.지금 앞서 또 전문가들과 함께 숙청 배경이라든지 앞으로 북한의 진로 등등을 쭉 다 분석을 했으니까요. 철저히 여기서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특히 김정은에 대해서 지금 장성택 얘기는 많이 했는데 김정은은 생년월일도 명확하지 않다, 이름도 몇 번 바꿨다. 실제 그렇습니까?

◆안형환-생년월일이 물론 정부 당국도 제대로 파악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83년 1월 8일생 또는 84년 1월 8일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런데 이제 북한에서는 82년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 이유가 김일성이 1912년생입니다. 김정일이 1942년생입니다. 그 터울을 맞추기 위한 것이죠, 쉽게 말해서. 그다음에 2012년이 되면 만 서른이 되는 겁니다. 2012년이 북한이 말하는 강성대국을 완성하는 해.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 그게 또 서른 살에 맞추려고 하는, 뭔가 쉽게 말해서 맞추려다 보니까 그런 게 된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고요.

◇정관용-그러니까 북한의 주장은 82년이다 그건데 그 이유까지 설명하셨는데 82년이 아닌 건 확실해요?

◆안형환-현재 앞의 형, 형과의 나이 또 그다음에 스위스에서 베른 공립학교를 다녔어요, 김정은이.그때 썼던 나이를 고려하면 83년 내지 84년으로 추정이 된다 이거죠. 그다음에 김정일이 어렸을 때 김정일의 요리사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김정일의. 후지모토 겐지란 일본인 요리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김정은의 어렸을 때 지켜봐왔습니다. 이 사람이 쓴 책 같은 것을 본다면 83년생 또는 84년생이 맞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죠.

◆남궁욱-지금 나이 말씀하셨는데요. 이름도 사실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일단 처음에 국내 언론에서 알려지기는 김정운으로 알려졌었고요.

◇정관용-구름 운자 써서.

◆남궁욱-김정은으로 바뀐 다음에도 한자가 일본에 주재하는 북한 언론들 기자들이 처음에 쓸 때는 금은동 할 때 은자를 쓰다가 지금은 은혜 은자로 또 바꿨거든요. 그리고 또 스위스 유학시절도 잠깐 말씀하셨는데 안 전 의원께서. 스위스 유학 시절에는 박운이라는 가명을 썼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일단 이름이 정확지 않고 그리고 또 어머니도 정확지 않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이죠. 고영희한테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그래서 전체 아들 수로 보면 3남이고 어머니 고영희한테서 낳은 두번째 아들이다, 이렇게 알려져 있는데. 최근 북한 영화를 통해서 선전영화를 보면 이름이 바뀌었다고 또 나옵니다. 이게 왜 그런가 하면 고영희는 예술단 출신의 무용수로 알려져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출신을 감추고 가족 자체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것들이 다 바뀌고 있으니까 사실은 김정은이 누구다라고 정확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북한 바깥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정관용-호적등본을 떼볼 수도 없는 거고요.

◆안형환-고영희를 자꾸 이름을 바꾸고 한 이유가 고영희는 재일동포 출신입니다. 아버지를 따라서 일본에 살고 있다가 제주도 출신의 재일동포, 그다음에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간. 그래서 미모 때문에 북한에서 예술단이 됐고 또 그래서 그게 김정일의 눈에 들어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김일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었죠. 그렇기 때문에 어찌됐든 혈통이 북한 사람들은 백두혈통이라고 해서 굉장히 그 혈통을 강조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김정일은 김정일 정통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 김일성과 어머니인 빨치산 활동을 같이 했던 김정숙 사이에서 낳은 김정일, 그렇기 때문에 백두혈통이라고 강조하는데. 아니, 어머니를 딱 보니까 재일동포, 제주도 사람 하니까 이야기가 안 되거든요.그러니까 이것을 숨기려 하다 보니까 그런 이름이 나오는 거고 그렇게 되는 거죠.

◆남궁욱-리은실로 바꿨다고 하는데요, 어머니 이름을. 고씨에서 바꾼 이유가 추측이겠습니다마는 이것도. 사실은 제주도에 고씨가 많다 보니까 결국은 원래는 이쪽에 살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에서 온 이런 혈통이다라는 게 밝혀지기 시작한다며 골치아프니까 아예 이름 자체를 바꿔버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정관용-알겠습니다. 김정일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 어머니 다 빨치산 활동을 같이 했던 분. 그래서 다 추앙하고 내세울 수가 있는데 김정은은 아버지는 내세울 수가 있는데 어머니는 내세우기가 좀 어려우니 뭔가 거기에 바꿈이 있었군요. 그런데 아들로 치면 막내아들이잖아요. 물론 배 다른 형이지만 김정남이 있고 또 같은 배에 낳은 김정철이 있는데 어떻게 막내아들로 갔느냐. 이건 어떻게 분석을 해 봐야 될까요.

◆남궁욱-그 선택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앞서 말씀하신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주장에 따르면 자기가 평양에 머물면서 7살 때부터 김정은을 봤다. 그때부터 아주 또렷또렷했고 자신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악수조차 안 하려고 했었다, 이런 얘기를 증언한 바 있거든요. 그러면서 이미 10살 무렵에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목되어 있었다라고 후지모토 겐지는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외모부터 성형수술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마는 외모부터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면모가 있고 어려서부터 뭔가의 능력, 총기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 때문에 아버지가 일찌감치 선택을 해놨다는 게 북한 내부의 주장인 거죠.

◆이가영-실제로 이번에 보면 사실 만 서른, 우리로 치면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엄청난 일들을 지금 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보면 얼마 전에 야권 의원들도 나와서 얘기를 했는데 제가 볼 때는 단지 순식간에 됐다기보다는 오랜 기간 후계자 수업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그리고 최근의 어떤 언론 보도를 보면 형 김정철, 엄마가 같은 형 김정철이 이번 일을 뒤에서 상당히 도와줬다라는 얘기가 있어요.

◇정관용-그래요?

◆이가영-그래서 그러니까 김정남하고는 이미 아주 옛날부터 갈라서 있는 상태지만 아마 형과는 마치 옛날에 세종대왕이 왕이 되는 그런 과정처럼 서로 간에 이해관계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하여튼 그 기간에 굉장히 오랜 기간 북한에서 준비를 하면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됐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안형환-그러니까 위에 장남이 김정남이죠. 김정남은 성혜림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성혜림은 사실 망명설까지 나돌 정도로 북한 내에서 상당히 논란이 됐었던. 그다음에 성혜림은 사실 유부남이었던 사람이 김정일이, 아버지 김정일이 사실 남편을 이렇게 하고 뺏어온. 물론 그것도 공연단 출신입니다마는. 그래서 상당히 숨기고 싶은 부인이 성혜림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아래 김정남은 정통성이란 측면에서 좀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었고요. 그다음에 김정철은 성격이 형 김정은의 형 김정철은 성격이 좀 유약한가 봅니다. 음악 좋아하고 감성적이고 김정일 입장에서 보면 정치를 하고 정말 김씨 왕국을 이어받을 새로운 왕은 강해야 된다라는 차원에서 김정은이 아마 발탁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정관용-김정철은 북한 내부에 있습니까, 외국에 있습니까?

◆안형환-김정철은 북한 내부에 있죠. 그래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고모부 장성택을 제압하는데 본인이 권총 차고 했다는 이런 여러 가지 설이 나오는데 물론 북한 관련설은 확인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어찌됐든 아마 장성택이 권력을 잡았을 때 현재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죠. 장성택이 김정남을 굉장히 챙겼다, 그건 맞는 것 같습니다. 김정남이 일본 기자들한테 이야기를 할 때 고모하고 고모부가 매우 나를 챙겨줬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직접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걸 비춰볼 때 장성택이 챙겼던 건 맞고. 그렇다면 일각에서는 아마 장성택을 밀어낼 때 그런 이야기도 했을 수 있죠. 장성택을 밀어내고 김정남 옹립하려고 한다,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차원이라고 본다면 김정철이나 김정은 공동운명체죠, 배 다른 형에 대한. 그렇기 때문에 아마 같이 협조를 한다든지. 물론 조용히 살 수밖에 없겠지만 어찌됐든 같은 공동 운명체적 차원에서 그랬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관용-그리고 어쨌든 이번 숙청 이후에 김정남의 처신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보는 것 같아요.

◆안형환-지금 사실 김정남이 굉장히 활달한 사람입니다. 공항에서 특히 얼굴이 워낙 알려져 있다 보니까 일본에 들어가서 일본에서 검문까지 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일본에 몰래 애를 데리고 일본의 도쿄 디즈니랜드를 갔습니다. 갔다가 일본 수사당국에 딱 잡힌 겁니다. 그 정도로 자유분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미 전선에서, 후계자 전선에서 아웃된 상태였죠. 그렇지만 지금 최근에는 마카오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지금 어디, 행선지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고 그래서 이제 중국 정부에서 보호를 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설이 있습니다.

◇정관용-김정일은 김일성 아래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후계수업을 받지 않았습니까? 사실 권력내부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사이에서도. 그런데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아무런 수업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몇 분 말씀 들어보면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일찍 점 찍어놨던 모양이거든요.

◆남궁욱-처음 언론에 등장하고 전세계 언론에 등장한 게 2010년이거든요. 창건기념일에 맞춰가지고 주석단에 아버지랑 같이 나란히 나타난 게 첫 등장이었는데. 그러니까 그전의 행적에 대해서는 사실 더 정확히 알려진 게 없습니다. 그때 첫 등장하면서 바로 대장 칭호를 받으면서 시작을 했거든요. 그 이전에 대해서 모르다 보니까 이후에 만든 기록영화들이나 선전영화들에서 보면 16살 때 이미 할아버지의 영군술, 그러니까 김일성의 군을 어떻게 다루는지 영군술을 가지고 논문을 썼다. 그리고 탱크를 직접 몰 수 있고 포도 쏠 수 있고 이런 얘기들을 많이들 만들어내고 있어요. 그런데 친구들 증언에 따르면 스위스의 제네바나 베른의 국제학교 때 등록한 게 15살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리고 그 15살 시절에는 말이 없고 컴퓨터 게임과 미국 프로농구를 좋아하던 아이었다라고 기억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아이가 김일성의 영군술에 대해서 논문을 쓰기는 쉽지 않아 보이니까 이런 것들이 뒤이어 뒤늦게 맞춰지는 기록들이 아닌가, 지도자 교육이 어떻게 됐는지는 좀더 말을 하기 힘든 단계라고 보여집니다.

◇정관용-또 김일성과 비슷한 모습이기 때문에 일부러 살을 찌웠다, 성형수술했다 이런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안형환-글쎄요. 저는 성형수술까지 했을 거라고 믿기지는 않습니다마는 외모가 비슷한 건 맞습니다. 그리고 이제 북한에서 김일성은 신 아닙니까? 호칭을 보면 시청자 여러분.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입니다. 굳이 제1을 썼을까, 궁금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북한에는 현재 주석이라는 직은 없습니다. 왜, 김일성이 주석이었기 때문에 그 직은 영구, 운동선수 영구 결번하듯이 공석입니다. 그다음에 국방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국방위원장은 영구 결 직명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제1국방위원장을 붙인 거고요. 사실 김정은은 여러 정보를 분석해 보면 아마 북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마 남산초등학교 나왔을 겁니다. 남산초등학교, 북한에서는 이른바 당직자, 혁명 2세들 다니는 학교인데 그러고 나서 고등학교 과정을 스위스 베른에 있는 학교로 와가지고 거기서 2년 반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98년 7월에 와서 2000년 연말에 귀국을 한 것이죠. 귀국을 한 다음에 아마 김일성대학을 들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그다음에 김일성군사대학이 있습니다. 거기를 다녔다고 해요. 다녀가지고 일선에 의하면 하전사생활, 사병생활을 김정일이 시켜서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확인되지는 않습니다마는 그러면서 그때부터 수련을 밟은 것이죠. 그러니까 군사 경험을 한다는 것, 김정일의 집권 당시에 굉장히 김정일의 취약점이 뭐였나면 군사 경험, 군대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쌓게 해 준 걸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추측 과정을, 옆에서 아버지 하는 것을 봐왔다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성향 자체가 후지모토 겐지의 책을 보면 굉장히 잔인하다, 강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숙청, 이번에 그런 것도 김정은의 그런 성향이 충분히 드러난 케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형 같은 경우는 사실 머리도 김일성처럼 짧게 칩니다.

◇정관용-일부러 그렇게 한 거죠.

◆안형환-일부러 짧게 치고요. 그다음에 옷도 김일성이 입었던 것 같은 옷을 입습니다. 안경, 저번에 장성택 끌어낼 때 회의를 보니까 안경을 썼더라고요. 작년부터 올 여름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안경도 김일성이 안경을 쓴 것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현재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과 같다는 이미지를 줌으로써 환상, 어떤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관용-알겠습니다. 그런데 프로농구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미국의 로드먼은 북한을 걸핏하면 가는데 이번에 장성택 처형 있지만 로드먼이 북한 가서 한 농구 이벤트는 계획대로 한다고 하는 것 같아요.

◆남궁욱-농구랑 스키를 좋아한다고 그러는데 그래서 스위스에 있었으니까 스키를 탔었을 것이고 그 당시 방에 가면 마이클 조던이랑 시카고불스 전성기 때의 포스터나 유니폼들을 모으는 것들이 취미였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때 같이 뛰었던 스타들 중에 데니스 로드먼을 자꾸 북한으로 부르는 거고요. 그때 스키를 타서인지 마식령스키장이라고 북한에 대규모 스키장을 나라의 명운을 걸고 짓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어렸을 때의 영향인 건데. 어려서 그렇게 스포츠를 좋아하고 승부욕이 되게 강했다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고 친구들이 얘기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 때문에 이를테면 자신이 첫 등장하던 2010년 창건기념일에 그리고 이후에도 미사일 실험할 때도 CNN 기자들, 해외언론 기자들을 불러놓고 봐라, 보란 듯이 하는 그런 게 있는데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해외생활, 유학생활에서 나온 개방성이라고도 볼 수 있겠고요. 그렇지 않으면 스포츠를 좋아했다는 어린 시절의 모습에서 볼 때처럼 승부욕이 강해서 지기 싫어서 빨리 자신들의 성과를 선전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관용-김정은이 집권한 이후에 북한예술단의 공연 모습들이 좀 바뀌지 않습니까? 예술단원들의 복장도 현대화되고.

◆남궁욱-미키마우스도 등장하고 도널드덕도 등장하고요.

◇정관용-그러니까요. 그래서 상당히 좀 문화적으로는 서구적인 개방형 그런 게 강화되지 않겠느냐라고 기대했는데 이번에 이걸 보니까 물론 정말 장성택 일파가 권력 찬탈을 모의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고모부까지 저렇게 하는 잔인한 독재자의 모습은 확실히 갖고 있군요.

◆이가영-재판을 한 번만 하고 완전 무슨 전시의 즉결처형의 모습을 보여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로 신세대적인 해외에서 배우고 북한에 뭔가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줄 수 있겠다, 이런 기대가 조금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하지만 여전히 북한의 전근대적 모습, 이런 양면이 다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관용-북한을 통치하려면 또 저래야 되는지도 모르죠. 말씀하세요.

◆안형환-아까 마식령스키장을 지금 마식령에다가 엄청난 스키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원산 위쪽인데요. 그게 군인들은, 북한은 우리처럼 기증기 이런 기계가 아니니까 인간이 직접 힘으로 노동을 통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군인들 동원해서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걸 볼 때마다 북한에서 스키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이 대체 몇 명이나 될 것인지.

◇정관용-해외 관광 수입을...

◆안형환-그것도 목표로 한 것이겠지만 지금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문수물놀이장을 개막을 했는데 그 추운 날 북한이 얼마나 춥습니까? 개막식 한다고 물 속에서 촬영한 게 그렇게 TV에 나왔는데. 본인이 자기의 사고에서 그걸 추진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니까. 가장 우리가 지도자가 경계해야 될 게 나의 사고수준에서 판단하는 것, 대중을 떠나서. 북한의 체제가 마식령, 문수물놀이장 볼 때마다 본인이 즐길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본인이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북한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정관용-저런 관광자원 투자가 개방으로 연결되면 괜찮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연결 안 되면 정말 헛된 투자가 될 거고요.

◆남궁욱-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민들의 삶을 얼마나 알지 궁금한 게 스위스 베른이랑 제네바에서 최고급 국제학교를 다녔다는데 그게 한 학기, 1년 등록금이 1만 6000파운드인가 당시 그랬대요. 우리돈으로 따지면 약 3000만원 정도라는데요. 북한 인민들의 삶을 생각하면 3000만원짜리 학교에 다녔는데 잘 모르겠죠.

◇정관용-여기서 역지사지 토크 한번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세 분 모두한테 내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라면 앞으로 나는 뭘 하겠다. 한말씀씩 들어보죠. 안형환 의원님부터.

◆안형환-정권을 확실하게 자기가 대외에 정권을 장악했다는 그런 능력을 보여주려면 대남유화, 확실한 누가 보더라도. 그 전략을 한다면 김정은이 현재의 이미지를 확 바꿀 수가 있을 겁니다.

◇정관용-대남유화책.

◆안형환-그러니까 뭐 당장 남북 이산가족 상봉하겠다라든지. 그래서 본인이 적극적으로 그렇게 나온다면 현재 정말 독재자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관용-알겠습니다.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남유화책. 이가영 기자.

◆이가영-저는 고모 김경희 대장을 적극 활용하겠습니다.

◇정관용-어떻게 활용합니까?

◆이가영-결국 장성택이 처형되기 전에 너무나 많은 전문가들이 절대로 처형은 안 될 거다, 고모부이기 때문에. 그리고 김경희가 처형되는 것만은 막아줄 거다라고 했는데 또 일각에서는 사이가 안 좋아서 결국 김경희가 용인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아까 말한 백두혈통,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람이 김경희잖아요. 그리고 김경희가 북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이런 게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고요. 그런데 지금부터가 오히려 저는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정은에게 장성택은 지금 사실은 오히려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처단된 거라고 봐야 되잖아요. 그럼 이 이후에 더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김경희를 통해서 장성택의 죄상을 고할 수도 있고 이후에 김경희를 통한 여러 가지 정책을 통해서 북한이 안정돼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관용-그러면 정당성, 정통성 이런 걸 더.

◆이가영-더 확보하는 거죠.

◇정관용-남궁욱 기자도.

◆남궁욱-북한 체제를 향한 훈수를 두는 건 부적절한 것 같고 저는 제가 김정은이라면 JTBC랑 인터뷰를 하겠습니다.

◇정관용-그거 한번 추진해 보세요.

◆남궁욱-노력하겠습니다.

◇정관용-남궁욱 기자가 인터뷰를 꼭 추진해 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주목 이 사람 두번째 인물,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키워드는 나는 내시가 아니다. 이게 이정현 홍보수석이 직접 한 얘기입니다. 왜 이 얘기까지 나왔는지 남궁욱 기자가 간략히 정리해 주세요.

◆남궁욱-양승조 의원의 얘기가 나온 다음에 거기에 대해서 강력한 논평을 앞서 보신 영상처럼 주장을 했죠. 양승조 의원의 발언은 언어살인이고 대통령에게 위해를 가하라고 선동하는 테러행위다라고 규정을 했죠.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서 다양한 반응이 나왔습니다마는 그중에 인터넷 논객 진중권씨가, 진중권 교수가 내시 같은 사람들만 주변에 있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울먹거리면서 기자회견했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이정현 수석이 보통 이정현 수석이 자기 스스로 자기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보통 방어를 잘 안 해요. 대통령 건은 심의하지만. 그런데 그 건만은 참기 힘들었는지 기자실에 와서 이건 제 실명으로 해도 좋습니다. 첫번째,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둘째, 저는 내시가 아닙니다. 이렇게 그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정관용-아까 화면에 보니까 눈물이 좀 있는 것 같은데요.

◆남궁욱-그렇게 감정이 풍부한 수석입니다. 감정이 굉장히 풍부한 인물이고요. 그러다 보니까 얘기를 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질 때도 많고요. 아주 급속도로 다운이 돼서목소리가 촉촉해질 때도 있고 이런 변화가 무쌍합니다.

◇정관용-저도 이정현 수석이 국회의원도 했었고 해서 인터뷰를 해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스스로 말하다도 막 흥분하시는 이게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있더라고요. 청와대에서도 항상 그런 모습을 보입니까?

◆남궁욱-그렇게 막 흥분해서 언어살인 이런 기자회견 하고 난 다음에 다음 날 아침에 사실 이정현 수석이 매일 아침 7시 15분, 매일 저녁 6시에 춘추관 기자실에 옵니다, 백브리핑을 위해서. 와가지고 어저께는 미안하게 됐다, 괜히 그랬다라고 또 쉽게쉽게 사과도 합니다.

◇정관용-사실 이번에 장하나 의원 또 양승조 최고위원 발언 때문에 이정현 수석이 나왔습니다마는 이정현 수석은 사실 오래전부터 주목 이 사람에 꼽힐 만한 분이세요.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나 이런 것에서 대단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이가영-그렇죠. 이정현 수석은 어떻게 보면 새누리당쪽 그리고 박근혜 정부에서 호남을 대표하는 인사입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1985년에 자신의 고향이 전남 곡성이거든요. 정말정말 깡촌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자기 지역구에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광주시장이었던 구용상 씨, 전남지사를 지냈는데 그분이 당시에 화순, 담양, 곡성이 하나의 지역구였습니다. 거기에 85년에 민정당 후보로 입후보를 하게 됐습니다. 그때 이정현 수석이 광주사태 일도 있고 반성해야 된다, 정치를 잘해야 된다는 편지를 썼어요. 그걸 보고 구용상, 이후에 의원이 됐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민정당에 필요하다라고 해서 민정당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개인의 보좌관으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민정당 당료가 됩니다. 그래서 그 뒤를 쭉쭉 걸어갔던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이런 데로 걸어갔고요. 2004년에 광주에 한나라당으로 신청하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공천을. 그런데 항상 자기 지역구 고향인 광주 서구에 출마를 하게 됐어요. 물론 처참하게 패했습니다. 당시 당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떨어진 낙선자들을 불러서 위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열변을 토하면서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하십시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때 박 대통령이 듣고 깜짝 놀라서 한마디도 못하고 깜짝 놀라서 어쩌면 그렇게 말을 잘하세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당의 수석부대변인으로 데리고 오게 됐어요.

◇정관용-발탁되고.

◆이가영-그다음부터는 입이 커서 사실 메기 이런 별명도 좀 있고 했었는데요. 그다음부터 그냥 박근혜 입으로 불렸습니다.

◇정관용-그렇죠.

◆이가영-그리고 2007년, 2008년에도 대변인을 했었고 이후에는 대변인격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정관용-맞아요.

◆이가영-대변인으로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변인격이라는 자리를 오랫동안 했습니다. 2008년에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했는데 그때도 기자들이 박근혜 당시 대표 말을 받아적기 위해서 이러고 있으면 우리보다 더 열심히 받아적습니다. 혹시 틀리면 기자들한테 다시 알려달라고 하면서 그럴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한마디를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달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 이런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관용-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패한 이후에 다른 캠프에서 또 영입 제안이 있었는데 요지부동이었다면서요?

◆남궁욱-김문수 지사 같은 경우에는 경기도로 와라, 같이 일해 보자라고 했는데요. 저는 안 갑니다. 박 대통령이, 박 대표가 정치를 여기서 하면 저는 여기 있습니다라고 했고요. 말 열심히 받아적는 거 얘기했는데 당대표 하는 시절 동안에 박 대통령이 당대표를 하는 시절 동안에 수석부대변인이었는데 대표를 하면서 했던 말들을 전부 다 정리를 해서 나중에 책을 냈어요. 그걸 어록집이라고 내서 그걸 냈는데 나 혼자 공부를 하려고 냈는데 아까워서 몇 부 더 찍었다고 그러면서 기자들한테 돌렸거든요. 그런데 그 책을 그냥 꽂아두고 있지 않다는 게 더 놀라운 점이죠. 틈만 나면 읽고 이 사안에 대해서 대통령의 생각은 뭔지 예전 어록을 다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가영-그때 2007년에 경선 끝나고 정말 여러 군데에서 러브콜이 있었어요,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때마다 안 간다고 말을 하니까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이 어디라도 좀 가시라 그랬더니 자꾸 나한테 그러시려면 나 정치 안 할라요라고 전라도 사투리로 얘기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부친이, 선친 그러니까 이정현 의원의 부친이 박정희 대통령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해요.

◇정관용-대를 이어서.

◆이가영-그래서 2007년에 경선에서 떨어지고 났을 때 그 부친이 그랬답니다.어디 가야 되는 이런 얘기가 나오니까 내가 그렇게 존경했던 분의 딸을 옆에서 모셨던 것만 해도 영광이지 그 정도면 할 건 다 했다.

◇정관용-알겠습니다. 같이 의정생활 하셨잖아요. 보니까 두 분 말씀 들어보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나 또 일을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는 장점도 보이고 또 장단점은 어떻게 보셨어요?

◆안형환-말씀하신 것처럼 굉장히 성실하신 분입니다. 정말 대변인실에서 근무하면서 그때 스크랩을 해 놓은 게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할 정도로 아주 성실한 분이시고 또 충성심은 익히 사실 박근혜 대통령이 행복한 분이시죠, 저런 분을 밑에 두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성실함, 충성심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겁니다.

◇정관용-단점은 안 보이세요?

◆안형환-글쎄요. 굳이 단점이 있겠습니까? 흥분하는 것. 그런데 또 본인 사안에 대해서는 흥분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사안에서 흥분하니까. 그건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부하 직원으로서 또는 그럴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남궁욱-그 자리가 제가 이명박 정부 때도 청와대에 출입했었는데 그때는 또 그렇게 야당의 표적이 된 게 이동관 당시 홍보수석이었거든요. 홍보수석이라는 자리가 해야 되는, 수행해야 되는 역할이 있는데요. 둘 다 스타일은 다릅니다마는 야당의 표적이 되는 건 홍보수석이거든요. 그런 이유도 좀 있습니다.

◇정관용-알겠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청와대의 비서관들은 뉴스의 중심에 오는 건 별로 안 좋은 거니까요. 뉴스의 중심에 올 수 있는 일이 자주 있지는 않기를 저는 바라겠습니다. 오늘은 주목 이 사람 간략하게 여기서 정리하겠습니다. 세 분 수고하셨습니다.

◆안형환,이가영,남궁욱-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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