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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딸' 38년 돌본 엄마의 간병일지엔 남모를 고통

입력 2022-12-19 21:09 수정 2022-12-1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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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5월 발달장애 딸을 어머니가 살해하고 스스로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38년을 돌봐온 딸이 암 선고까지 받자 함께 세상을 등지려고 한 겁니다. 존속살해도 범죄입니다. 하지만 JTBC가 입수한 '간병일지'에는 매일매일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려야 했던 어머니의 고된 시간이 담겨있었습니다.

여도현 기자입니다.

[여도현 기자]

'데파킨 용량 바뀐후 2019년 12월 짧은 경기 10번 힘빠지는 경기 6번', 3년 전 60대 이모씨가 30대 딸의 상태를 적어놓은 일지입니다.

'2020년 1월 7일 악을쓰며 짧게 강하게' 약을 바꾼 후 상태를 꾹꾹 눌러 적었습니다.

[이모 씨 아들 : (의사선생님이랑) 약을 조제할 때 말씀나누시고 효과가 있는거 그대로 가져가고 효과가 없는거는 빼거나 줄이고…]

간병은 이씨가 26살일 때 시작됐습니다.

1984년 돌이 갓 지난 딸이 뇌병변에 지적장애 1급 진단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2020년 5월 21일 날밤새고 5월 22일 낮에도 안잠' 증상을 시간단위로 기록하고,

[이모 씨 아들 : 항상 누나 침대 옆에 간이로 침대를 만들어서 붙어 주무셨어요. 그래야만 누나가 일어나더라도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밤낮도 잊었습니다.

[당시 아파트 경비원 : 대소변도 못가리니까 시도때도 없이 빨래하가지고. 새벽 1시고 2시고. 그집 사정 알면 또 민원을 안해요.]

지난 1월 날아든 딸의 대장암 진단서.

[이모 씨 아들 : 누나를 살려야겠다는 그 의지만큼은 꽉 잡으셨고…]

하지만 38년간 딸을 돌봐온 이씨의 굳은 의지도 꺾였습니다.

[이모 씨 아들 : 혈소판이라는 수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항암이 중단되고 (온 몸에) 멍까지 봐버리니까 거기서 많이 무너지셨어요.]

결국, 지난 5월 딸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습니다.

[이모 씨/영장심사 당시 (지난 5월) : 너무 미안해요. 같이 살지 못하고 보내게 돼서…]

검찰은 징역 12년을 구형했습니다.

[이모 씨 아들 : 엄마는 누나를 위해서 평생 살았고 누나랑 엄마는 한몸이었어요.]

법원 선고는 다음달 19일입니다.

[앵커]

이 사건의 유무죄의 판단은 법원의 몫이지만 38년동안 딸을 돌본 이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우리 사회는 뭘 하고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는 발달장애 부모에 심리 상담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씨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어서 정종문 기자입니다.

[정종문 기자]

딸의 장애를 공부하려고 이모씨가 만든 노트 한켠에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스트레스'가 적혀 있습니다.

아래로 '상호 작용의 어려움' '육체적 고통' '절대적 시간 부족'이 써 있습니다.

하루 중 센터에 맡기는 4시간을 뺀 20시간이 이씨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사건 당시 살던 아파트 경비원 : 오후 3시반쯤 오면 딸이랑 한 바퀴 도는데 사람이 생기가 하나도 없이 참 불쌍한 아줌마야…]

지방에 있던 남편, 결혼한 아들 결국 딸과 둘만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회적으로도 고립됐습니다.

[이모 씨 아들 : 세상에 누나하고 본인만 남으신 것 같다고]

수면부족과 불면증을 겪었지만, 정부가 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를 상대로 한 휴식지원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진 못했습니다.

[인천 연수구청 관계자 : 발달장애 가정에 돌봄서비스나 휴식지원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와 같은 경우는 기준도 만 18세 미만의 심한 장애 가구가 해당이 돼요.]

또 심리상담지원 프로그램도 지원 받지 못했습니다.

전국의 발달장애인은 20만명이 넘지만, 심리상담을 받는 부모는 1년에 7~800명에 불과합니다.

[윤종술/장애인부모연대 회장 : 우리나라의 제도는 주로 신청주의입니다. 이용자가 스스로 알아서 찾아서 신청하라는 거거든요. 제도가 뭐있는지 모르니까 신청을 못하는 것이지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일이 올해에만 10번 일어났습니다.

(영상취재 : 공영수 / 영상디자인 : 박경민 / 영상그래픽 : 박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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