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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대신 '염치' 찾은 손자…전우원, 5·18 영령들에 사죄

입력 2023-03-31 18:19 수정 2023-03-3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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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광주를 찾아 5·18 유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했습니다. 전 씨 일가 중 처음이죠. 전두환 씨를 5·18의 주범이자 학살자라고 발언했습니다. 5·18 단체들은 우원 씨의 사과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앞으로도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했습니다. 박준우 마커가 '줌 인'에서 관련 소식 정리했습니다.

[기자]

[전두환 씨 (유튜브 'KBS 다큐'/1984년 1월 17일) : 새 역사를 향해 떨쳐 일어선 제5공화국이야말로 폭력의 배제, 평화와 정의가 그 행동 지표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본인은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제5공화국을 열었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 비폭력과 평화 그리고 정의를 외쳤지만 그의 시대는 이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이미 집권 전부터 민주화 운동을 벌인 수많은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헌정 질서를 파괴했죠. 그러고도 오히려 폭동이란 이름으로 5·18 희생자들을 매도했는데요.

[전두환 씨 (유튜브 'SBS 뉴스' / 2003년 2월) : 광주는, 그거는 총기를 들고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지만 살아 생전 그의 태도는 딱 3마디로 요약됐습니다. 무엇보다 '비양심'이 트레이드 마크였는데요.

[전두환 씨 (1989년 12월 31일) : 5월 22일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령부의 작전 지침이 지휘계통을 통해… {양민학살이 자위권 발동이야?} {시나리오 쓰고 읽기만 하면 그만이야, 읽기만 하면?}]

5·18 민주화운동 이후 9년 만에 열린 국회 청문회, 전두환씨는 귀를 닫고 오로지 '자위권 발동'만을 되뇌었습니다. 그 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1996년에야 처음으로 법정에 서게 되는데요. 1심에서 내란과 내란목적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죠. 대법원은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는데요. 뒤늦은 역사의 단죄로 여겨졌지만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전씨가 사면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된 겁니다. 확정 판결을 받은지 불과 8개월만이었는데요. 교도소를 나오는 전씨, 그야말로 '뻔뻔' 그 자체였습니다.

[전두환 씨 (유튜브 'YTN 돌았저' / 1997년 12월 22일) : 모두 수고하십니다. 이 먼 데까지 오셔서 고맙습니다.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회고록을 내기까지 했습니다. 회고록에는 그의 '파렴치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1980년 5월 광주 상공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증언을 거짓이라고 반박했죠.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았지만 반성의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전두환 씨 (2019년 3월 11일) : {발포 명령 부인합니까?} 왜 이래.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 없으세요?} … ]

수없이 많은 사죄의 기회가 있었지만 줄곧 거짓과 핑계로 일관해온 독재자 전두환.

[전두환 씨 (2019년 11월 7일 / 화면제공: 임한솔 당시 정의당 부대표) :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광주 학살에 대해서 모른다, 나는. {왜 모르세요. 직접 책임 있으시잖아요.} 내가 왜 직접 책임 있나. {발포 명령 내리셨잖아요.} 내가 왜 발포 명령을 내렸어. 내가 이 사람아 발포 명령 내릴 위치에도 있지 않는데 군에서 명령권 없는 사람이 명령을 내려? 너 군대 갔다 왔냐?]

결국 지난 2021년 11월, 5·18 유가족들에게 끝내 단 한 마디 사과 없이 자택에서 숨을 거뒀죠.

그 후 약 1년 4개월이 지난 오늘, 그의 손자 전우원씨가 광주를 찾았습니다. 죽은 할아버지를 대신해 5·18 유가족들에게 사죄했는데요.

[전우원/전두환 씨 손자 : 저의 할아버지 전두환 씨는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고 학살자임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정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전두환 일가의 사죄는 이번이 처음이었죠. 지난 40여년간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는 순간이었는데요.

[전우원/전두환 씨 손자 : 저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저 또한 너무 추악한 죄인입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들 사이에 숨어 항상 제 죄를 숨기고, 그들이 죄를 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저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이 사실을 항상 외면한 채 살아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뻔뻔'했지만 손자는 '꿋꿋'했습니다. 전씨 일가는 우원씨를 외면했지만 우원씨는 나홀로 참회를 결심했는데요.

[전우원/전두환 씨 손자 (지난 28일) :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요?} 저를 미치광이로 몰아가거나, 아니면 진심으로 아끼거나, 한국에 가지 말라고 하거나, 아예 연락이 없거나, 갖가지인 거 같습니다.]

우원씨는 어렸을 적 가족의 세뇌 교육도 폭로했습니다. 5·18은 북한의 소행이자 폭동이란 가르침을 받았다고 밝혔죠. 전두환씨를 합리화하고 치켜세우기 급급했다고 하는데요.

[전우원/전두환 씨 손자 :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대화 주제를 바꾸거나 침묵을 하거나 아니면 제가 예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5·18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이고, 북한군들의 소행이고, 저희 가족들은 피해자고… 오히려 광주에 용기 내서 싸우신 시민분들이 정말 위대하신 천사들이고, 영웅이신데 오히려 그분들을 되게 안 좋게 얘기하시던 거 같습니다. {발포 명령을 그쪽 할아버지가 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내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집에서는 그런 말씀 전혀 없으셨다는 얘기신가요?}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아버지고 본인이 천국에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원씨는 할아버지나 다른 가족과는 달랐습니다. 역사를 바로 보고 잘못을 뉘우치는 '염치'가 있었는데요.

[전우원/전두환 씨 손자 : {1980년 5월 18일 광주 일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십니까.} {그리고 당시 5·18 학살의 주범은 누구시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대학살의 현장이라고 생각을 하고 비극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주범은 누구도 아닌 저희 할아버지 전두환 씨라고 생각을 합니다.]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광주시민들을 빛과 소금이라고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전우원/전두환 씨 손자 : 군부독재 속에서, 두려움 속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용기로 군부독재에 맞섰던 광주시민 여러분들 영웅이고 정말 저희 나라의 빛이고 소금이신 모든 분들을…]

전두환 씨의 대통령 퇴임 때 낭송된 헌정 시에선 전씨를 빛과 소금으로 찬양했죠. 그때와 묘한 대비를 이뤘는데요.

[전두환/당시 대통령 (1988년 2월 24일) : 그 자리 물러남으로 이제 님은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전씨는 이날 5·18 민주화 묘지를 참배하기도 했습니다. 첫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와 12세 나이로 계엄군 총에 맞아 숨진 전재수군의 묘, 행불자 묘역을 차례로 들렀는데요. 시종일관 숙연한 자세로 5·18 유족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사망한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를 안고 위로를 건네기도 했는데요.

[김길자/고 문재학 열사 어머니 : 아이고, 여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상상이 안 갑니다. 너무 오랫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이, 이 사과가 이 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이렇게 이렇게 전두환의 손자인데 이렇게 왔다'고 반갑게 맞아주라고 말도 하고, 언제나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일각에서는 이런 우원씨를 신중하게 지켜봐야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우원씨의 뜻은 높이 사지만 진정성이 있는지는 앞으로 행보 지켜본 뒤 판단할 일이란 건데요. 하지만 5·18 단체들은 대체로 우원씨의 양심 고백과 사죄를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5.18의 온전한 진상규명으로 이어지길 희망하고 있는데요. 고 조비오 신부 조카 조영대 신부도 환영했습니다. 우원씨와 직접 만날 의사도 있다고 합니다.

[조영대/고 조비오 신부 유가족 (CPBC '김혜영의 뉴스공감' / 어제) : 손자 전우원 씨가 광주를 찾아 가족을 대신해서 사과를 해왔다는 것은 갑자기 뭔 일인가 하며 의아해하기도 했지만 동기야 더 알아봐야겠죠. 그래도 그 손자가 사과 해왔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꺼이 만날 것이고요. 또 어떻게 해서 이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좀 묻고 싶고요. 그러면 이제 진상규명을 위해서 앞으로 어떻게 협조해 줄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원씨 역시 유족들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몇 번이고 사과할 뜻을 내비쳤던 바 있죠.

[전우원/전두환 씨 손자 (지난 29일) : {이번에 광주를 찾으신 이후에도 5·18 단체와 유가족들과} {계속해서 접촉을 이어가실 계획이실까요?} 네, 마음이 풀리실 때까지 필요한 만큼 계속해서 연락을 드리고 싶고 연락을 받아주실 때, 마음을 열어주실 때 감사히 생각하고 축복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대화를 진행해가도록 하겠습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자기 정당화에만 몰두했던 전두환씨, '전 재산 29만원' 운운하며 추징금도 다 내지 않았는데요. 다 치르지 못한 역사적 죗값에 956억원이란 미납액까지 얹고 떠났죠. 반성 없는 죽음의 대가를 그 후손이 어떻게 치르는지 손자 전우원씨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오늘 '줌 인' 한 마디는 뒤늦은 반성과 용서의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전우원/전두환 씨 손자 :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더 용기를 내.} 감사합니다. {이 마음 잃지 말고 끝까지 용기 잃지 말고.} {항상 몸조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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