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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박물관 개관…500년 조선왕조 기록 110년 만에 오대산으로

입력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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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고 전교하다”
광해군일기 35권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이 한 줄. 추창민 감독은 이 행간에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속 비밀스러운 두 명의 왕을 상상해 냈습니다. 작은 일조차 빼곡하게 적힌 실록은 '왕의 남자', '올빼미'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 내부 〈사진출처=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 내부 〈사진출처=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500년 역사가 담긴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오대산 사고본이 11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던 실록과 의궤를 원소장처인 평창군 오대산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 내부 〈사진출처=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 내부 〈사진출처=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12일 개관하는 조선왕조실록박물관은 실록 75책과 의궤 82책, 관련 유물 1,207점을 보관하게 됩니다. 실록의 원본을 상설 전시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박물관은 실록을 어떻게 만들고 보관했는지를 소개합니다. 왕실 행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자세히 그린 '그림 보고서' 의궤도 전시합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은 여러 버전이 있습니다. 기록을 중요시하고 훼손을 막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입니다. 임진왜란 때 전주를 제외한 모든 사고가 불타버린 뒤 태백산·마니산 등 왜적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실록을 꼭꼭 숨겼습니다.

그러나 조선이 망한 뒤 일제의 손에서 벗어날 순 없었습니다. 780여권에 달하는 오대산 사고본은 일제시대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습니다. 간토대지진 때 대부분 소실돼 일부만 남았습니다. 그중 27책이 1932년 현재의 서울대학교인 경성제국대학으로 돌아왔고, 나머지 47책은 2006년에야 반환했습니다.

중종실록 오대산사고본에 동경제국대학(위), 경성제국대학(아래) 낙인이 찍혀 있다.

중종실록 오대산사고본에 동경제국대학(위), 경성제국대학(아래) 낙인이 찍혀 있다.

2017년 '효종실록' 한 권이 경매에 나왔을 때 오대산 사고본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던 건 '동경제국대학'이라고 찍힌 도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대산 사고본을 통해 험난한 역사의 굴곡을 거쳐 돌아온 환수 문화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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