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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성보험 시장 변질 원인은 '돈놀이 탐욕'

입력 2012-02-06 07:45

보험시장 포화에 생·손보업계 영역 다툼 양상

삼성생명 파상공세…중소형사는 마지못해 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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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시장 포화에 생·손보업계 영역 다툼 양상

삼성생명 파상공세…중소형사는 마지못해 추종

보험(保險)은 '위험보장'이란 뜻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보험금이 필요해질 때에 대비해 보험료를 쌓는다.

그러나 최근 과열 양상을 빚는 저축성보험은 이런 본래 기능이 크게 왜곡됐다. 금융감독원이 서둘러 특별점검에 나선 이유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6일 "요즘 보험업계가 하는 건 보험이 아니다"며 보험시장의 변질 실태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저축성보험 과열…보험사 '금리차 따먹기'

보험시장의 왜곡은 저축성보험의 판매 급증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저축성보험은 보통 3년, 5년, 7년씩 만기를 정해두고 매월 보험료를 내면 나중에 복리를 적용해 보험금을 받도록 설계된다. 은행 정기적금과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위험보장 기능이 있는 정도다. 하지만, 보험상품으로서 간신히 구색을 갖추는 수준이다.

은행 정기적금이 고정금리지만, 저축성보험은 매월 금리(공시이율)가 새로 정해진다. 보험설계사들이 저축성보험을 팔면서 나중에 돌려받을 보험금을 예시할 때 '현재 공시이율이 계속 적용된다고 가정하면'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지금까지 저축성보험 시장은 장기상품 판매가 많은 생명보험사들이 차지했다.

생보사의 저축성보험 판매액은 2004 회계연도 20조5천억원에서 2006년 25조원, 2007년 28조3천억원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2010년에는 33조6천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30조원을 넘었다.

2008년부터는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에서 한계에 부딪힌 손해보험사들이 저축성보험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손보사의 저축성보험 판매액은 그 해 4조3천억원에서 2010년 8조8천억원으로 증가했다.

보험업계가 저축성보험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손쉽게 '돈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 수입을 운용한 수익률에 사업비와 영업 이윤 등을 고려해 공시이율을 정하면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을 따먹는 은행처럼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장성 상품을 잘못 개발했다가 손실을 뒤집어쓰느니 만들기 쉽고 보험사나 설계사로서 수입도 짭짤한 저축성 상품에 눈길을 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삼성생명이 과열경쟁 촉발

보험사들이 저축성보험 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자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려는 금리 경쟁에 불이 붙었다.

금리 경쟁의 신호탄을 올린 건 업계 1위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올해 저축성보험 공시이율을 0.2%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매월 수천억원씩 보험료가 들어오는 점을 고려하면 '0.2%'의 의미는 절대 작지 않다.

아니나다를까 다른 보험사들도 앞다퉈 금리를 올렸다. 삼성생명과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시장은 대형사가 보험료를 내리거나 이율을 높이면 중소형사는 따라가기 마련"이라며 "특히 삼성그룹 보험 계열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고 전했다.

삼성생명이 공세적으로 나선 데는 박근희 신임 사장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특별지시'가 있었다는 후문이 있다.

이 회장은 최근 박 사장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전체 상품) 점유율이 아직 40%밖에 안 되느냐"고 물으면서 실적과 관련해 "앞으로 억(億) 단위는 생략하고 조(兆) 단위로 보고하라"고 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삼성생명의 점유율은 갈수록 하락해 현재 25% 수준이다. 특히 저축성보험 점유율은 2010년 1월 23%에서 지난해 11월 19%로 쪼그라들었다.

한 보험권 관계자는 "이 회장은 아직 과거 수준(40%)에 머물러 있느냐고 물었는데, 실제 점유율은 과거보다 오히려 떨어져 박 사장이 굉장히 당황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보험권 관계자는 "삼성이 마음먹고 금리를 올리면 다른 보험사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라 올리거나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해서 중소형사 몇 곳 쓰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보험료 상승, 계약 해지 등 부작용 커

보험사의 금리경쟁이 심해질수록 소비자의 혜택은 커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보험연구원 이경희 연구위원은 "보험사의 건전성에 구멍이 뚫리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며 "저축성보험에서 금리 경쟁으로 줄어든 이익은 다른 부분에서 메워야 해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험권은 경쟁이 과열되면 '계약자 빼오기'가 횡행한다. '더 좋은 상품이 나왔다'고 현혹해 기존 상품을 해지하고 다른 상품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도 해지하는 만큼 환급금은 적어진다.

금감원은 손보사들이 저축성보험 경쟁에 가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질병이나 사건ㆍ사고 위험을 보장하는 손해보험의 기능이 부실해지기 때문이다.

손보사의 상품 판매 비중은 저축성 등 장기보험이 65%, 자동차보험이 23%, 순수 보장성보험이 12%에 불과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손보사에서 이 비중은 거꾸로 되는 게 맞다"며 "일본 동경화재는 보장성보험 판매 비중이 80%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예외적인 국가"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과열 경쟁의 부작용이 커 특별검사와 현장점검에 나섰지만, 자칫 '금리 담합'을 종용한다는 굴레가 씌워질 수 있어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대한, 교보 등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를 주도했던 대형사들이 이제는 담합을 핑계로 금리경쟁에 나서니 중소형사로선 죽을 맛"이라며 허탈한 심경을 토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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